이 같은 시대적 흐름 속에 국내 인문학의 영역은 갈수록 줄어가고 있다. 대학의 모든 인력과 자원이 이공계에 몰리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인구론’(‘인문계 구십프로 논다’의 줄임)이라는 자조섞인 말이 나도는 게 새롭지 않듯 인문계를 기피하는 입시생들은 너도나도 이공계를 선택한다. 비단 국내의 문제만이 아니다. 학문과 산업의 최첨단을 달리는 미국의 실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급속히 재편되는 중이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의 대학 사회는 인문학 교육을 강화하고 있을까. 외교정책 자문가이자 언론인 ‘파리드 자카리아’가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내놨다. 그의 저서 ‘하버드 학생들은 더 이상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를 통해서다.
저자는 현 시기를 ‘세계화의 가속화’, ‘자본주의의 극단화’, ‘테크놀로지의 발달’ 세 가지로 정의한다. 기업과 조직 안에서 안정된 삶과 성공이 보장되던 시기가 종언을 구하고, 산업구조와 지식 지형이 하루아침에 변동하는 지금, 정치·경제·사회의 세력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했음을 그는 지적한다. 그리고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아 우리를 지켜줄 지식이란 과연 무엇인지 묻는다. 대학 공간을 넘어 전 사회가 당장 돈 안 되는 인문학이 왜 필요하냐고 반문하는 시대에, 그는 교양의 의미와 역할을 역으로 되묻는다.
현재 미국의 학문적 흐름은 재편의 과정을 겪고 있다. 한때 높은 인기를 구가했던 영문학이나 역사학의 전공자가 급감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교양인이 되기 위해 문사철(문학·역사·철학)과 씨름했던 하버드 학생들마저 이제는 인문학 공부를 통한 교양인 되기를 단념하고 있다. 설령 풍부한 교양 교육을 받더라도 사회에 나가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지내는 졸업자가 상당수다. 그런 추세를 타고 지난해 초순 오바마 대통령조차 인문학 전공생보다 경영학 등 실용학문 전공자들이 낫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서슴지 않았을 정도다.
저자는 작금의 만연한 교양 교육 경시 풍조는 실로 잘못된 것이며 근시안적인 교육관에서 하루빨리 탈피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그는 교양 교육이야 말로 글을 명확하게 쓰고, 자신의 의견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진정한 방법임을 강조한다. 그중에서도 그가 생각하는 교양 교육의 가장 큰 장점은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는 것. 이는 교양을 흔히 품위나 품격을 유지하고 타인과 나를 구별짓는 수단, 즉 문화자본으로 간주하는 세태를 넌지시 비판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계가 아무리 빠르게 변할지언정 그 변화에 적응해나가는 기초 양식은 단순한 테크놀로지 중심의 지식과 기술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인문학을 거름삼아 교양의 싹을 틔우고 ‘스스로 생각하는’ 교양인이 많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런 점에서 이어지는 대목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교양 교육의 지속적인 장점 중 하나는 우리의 시야를 넓혀준다는 것이다. 위대한 문학작품을 읽으면, 다른 곳에서는 평생 만나지 못할 사상과 감정 및 경험을 맞딱뜨리게 된다. 역사 책을 읽으면 다른 시대의 인물들을 만나며 그들의 승리와 고생으로부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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