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꿈이 넘치는 것은 저 위쪽이죠. 여기는 그냥 현실 그 차제입니다. 화려한 세계와 붙어있어서 그런지 그 현실은 더욱 비참하게 느껴지죠. 그것이 바로 오케스트라 피트” (뮤지컬 ‘오케피’ 대사 中)
배우들의 화려한 연기가 펼쳐지는 뮤지컬 무대 바로 아래, 바쁘게 움직이는 이들이 있다. 바로 오케스트라가 자리 잡고 있는 구덩이 오케스트라 피트, 줄여서 오케피 속에서 활동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다. 뮤지컬의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무대와 객석 사이에 있는 지하 공간 오케피에 꼼짝없이 있어야 하는 단원들의 움직임은 아무도 보지 못하는 수면 아래에서 열심히 움직이는 백조의 발버둥과 흡사하다.
화려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현실 그 자체인 오케피. 오케피를 가득 채우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뮤지컬 작품 편성이 완료되고, 작품의 음악감독이 결정되는 동시에 모집이 시작된다. 음악감독에 의해 뮤지컬 오케스트라로 서게 된 단원들은 첫 공이 올라가기 전까지 24시간이 모자란 바쁜 연습을 거듭하게 된다.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오르기 앞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 있다. 바로 공연이 올라가는 극장 오케피 석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는 첫 리허설이다. 이날 정해지는 자리가 공연이 끝나는 순간까지 변동 없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첫 리허설 때 자리의 불편함을 해결하지 않으면, 짧게는 1개월 길게는 3개월 동안 그 오케스트라 단원은 불편함을 안고 연주를 할 수 밖에 없다.
만들어지기까지가 어려운 것이지, 무대에 오르고 나면 한 시름 놓을 수 있게 된다. 물론 실시간 라이브로 연주되는 만큼 나름의 긴장감과 고충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공연이 올라간 이후부터는 규칙적인 출근 시간이 정해지면서 나름 계획적인 하루 일과를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무대와 가장 가까이 있지만, 정작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공연장에서 무대를 감상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들이다. 허락되는 것은 두 귀로 듣는 것 뿐, 이들이 배우들의 얼굴을 보는 유일한 시간은 회식뿐이다. 다른 이들보다 대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회식장소에서 배우들의 배역 이름이 아닌 대사로 알아맞히는 일들도 종종 일어난다. 어찌 보면 배우들과 가장 가깝지만 가장 먼 존재이기도 하다.
배우들도 볼 수 없을 정도로 공연이 진행되는 3시간가량 오케피에 꼼짝 없이 갇힌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것에도 애로사항이 많다. 저녁에 먹은 음식이 잘못돼 배에 신호가 와도 중간에 공연장을 벅차고 화장실로 향하기 어려운 것이다.
생리적인 현상 외에도 어려움은 존재한다. 인터미션 시간 오케피 석을 기웃거리면서 말을 거는 관객들이다. 물론 많지는 않지만, 관객들이 다가와 오케피를 구경 할 때 민망함을 느낄 때가 왕왕 있다. 만약 오케피 석이 관객들에게 노출될 경우 이 같은 현상은 더욱 잦아진다. 오케피 석에 다가와 응원의 말을 남기는 관객도 있지만 시비를 거는 일부 관객들에 간혹 힘이 빠질 때도 있다. 그대로 시비를 거는 관객은 극히 일부고 대체고 오케피 석에 다가오는 관객들은 꽃이나 작은 선물들을 전달해 주며 응원의 말을 남기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오케피가 노출돼 있을 경우, 객석의 제일 앞 쪽에 있다 보니 뮤지컬 관객들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이다. 객석 1열의 경우 관객들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오케피석과 거리가 가까운데, 대부분 1열에 앉은 관객들이 한정돼 있고, 이들의 경우 반복해서 공연을 보는 덕분에 얼굴을 외우는 관객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한 번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묘한 친근감을 느끼는 사례도 간혹 나타나기도 한다.
우여곡절 많은 공연이 끝나면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다시 공식적인 백수생활로 돌아가게 된다. 한 공연이 끝나고 바로 다음 공연 일정으로 이어지면 좋겠건만, 각 작품마다 요구하는 오케스트라 편성이 다른 만큼 한시적인 휴식기에 접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뮤지컬 음악감독이 불러주기 전까지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휴식기가 며칠이 될지, 아니면 몇 달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