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그도 외롭다고 했다. “그 외로움, 무엇으로 푸냐”고 물으니, “뭘로 달래긴, 술이지”라며 멎쩍게 웃었다. 올해 나이 마흔 다섯에 접어든 황정민. 1990년 스물의 나이에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 단역으로 데뷔, 숱한 세월 배우의 길을 걸어온 그는 어느새 대중 영화계의 정점에 서 있다. 누가봐도 국가대표 중견 배우인데, 그런 그가 외롭다고 했다. 그것도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찾아온 외로움”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스탭들하고 같이 웃고 떠들면서 재밌게 지냈죠. 그런데, 어느 순간 나를 어른으로 보기 시작하더라구요. 돌아보니 선배가 돼 있고 형이 돼 있는데, 이제는 인사를 받아야 할 나이가 돼 버린거지. 먼저 다가가면 어른으로 바라보니, 거기서 비롯하는 외로움이 있는거죠.”
오는 16일 개봉하는 ‘히말라야’에서 그는 엄홍길 등반대장으로 분했다. 한날한시 개봉하는 최민식 주연의 ‘대호’와 호각을 겨루게 될 작품이지만, 정작 그는 “다 같이 잘 됐으면 좋겠다. 최민식 옹(翁)에게 감히...”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지난해 ‘국제시장’(1426만)에 이어 올해 ‘베태랑’(1341만)까지 연이은 대박을 터뜨린 그이지만, 흥행에는 연연치 않겠다고 했다. 그것은 오롯이 관객 몫이란다. “배우가 흥행에 신경쓰면 재미없어요. 떠난 배는 손을 흔들어줄 뿐이죠.”
우리들의 잃어버린 가치를 추적하는 이 영화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겨난다. 눈보라 휘날리는 설산(雪山)이 배경이지만, 보는 이들의 가슴은 시종일관 따뜻하다. 해발 8000미터 히말라야에서 망자가 된 박무택 대원의 한(恨)을 풀어주고자, 죽음을 무릎쓴 히말라야 원정을 떠난다는 내용이다. 엄홍길 대장의 실화에 기반해 산을 지향하지만, 담겨진 의미는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다. “산 보다 위대한 건 사람이에요. 산이 있으니 사람이 있는게 아니라, 사람이 있으니 산이 있는거죠. 그걸 말하는 영화에요.”
제작 과정은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배우·스태프 할 것 없이 촬영진 모두가 해발 4500미터를 올라갔다. 저마다 무거운 장비를 나눠 들고 꼬박 3일 동안 등반했다. 황정민은 “거대한 자연 앞에 인간이 얼마나 왜소한지 눈으로 경험하고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그 경험이 너무 가혹해서였을까. 5개월 남짓한 촬영이 끝나는 순간 후배들 앞에서 ‘꺼이꺼이’ 울었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등산복이라는 등산복은 다 갖다버렸다”며 껄껄 웃었다.
그는 영화를 위해 엄 대장을 수차례 만났다고 했다. 엄 대장으로 분하기 전 그의 실제 속내를 듣고 이해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엄 대장은 좀처럼 속내를 내비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내면을 이해하기 위해 술 먹을 때마다 속 얘기를 끄집어내려 애썼지만 번번이 실패했어요. 안 보여주는 거야. 그게 당신의 치부라는거에요. 그건 실제니까.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로 눈 앞에 드러나는 극한의 상황이니까. 인간의 한계에 도달하는 지점 말이에요. 줄에 메달렸어요. 끊지 않으면 내가 죽어. 어찌할 거에요. 그런 원초적인 부분에 있어서 굳게 입을 다무시더군요. 전쟁터 다녀오면 그 잔혹한 경험을 잘 얘기 안하듯이….”
험난한 촬영 속에서 그는 히말라야 12좌까지 올라간 여러 등반대장과도 대화를 나눴다. 도무지 이 힘든 일을 왜 자처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 명 한 명 물어볼 때마다 돌아오는 답변은 같았다. “그냥 좋아서 하는거지.” 황정민은 “우린 해답을 찾기 위해, 의미를 찾기 위해 등산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이 분들은 그렇지 않았다”며 “마치 내가 배우를 하는 이유와 비슷한 것 같다”고 했다. “사람들이 저한테 ‘배우 왜 하냐’ 많이 묻죠. 마찬가지에요. ‘그냥 좋아서 한다’고 답해요. 등반이나 연기나 그런 점에서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고, 그 이후로는 절대 안 물어봤어요.”
그는 배우로서 자신의 위치가 정상이라는데 동의하지 않았다. 그냥 한낱 구릉지에 불과하다고 했다. 정상인 것 같아도 올라가면 더 높은 산이 끊임없이 나타난다고도 했다. 진실한 삶에서 체득된 겸손이었다. “돌아보면 또 큰 산이 있고, 봉우리가 있는게 삶이죠. 제가 이 영화를 택한 건 정상에 올라가는 산악영화라서가 아니에요. 팀들과 한데 어우러지는 거, 정상을 우러러보는 게 아니라 정상 아래에 있는 주검을 보러 가는거. 애초의 노선이 달라요. 거기에 끌렸어요.”
그런 그가 갑자기 노래를 흥얼거렸다. 평소 즐겨 부르는 곡이라고 했다. 김민기의 ‘봉우리’였다.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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