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2015년 공연계는 크게 중동호흡기증후(MERS, 메르스) 사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상반기가 메르스로 흔들리는 공연계였다면, 하반기에는 이를 붙잡기 위한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가 나섰다. 침체에 빠진 공연계를 위해 공연티켓 1+1 지원 사업을 실시한 것이다.
이외에도 무대 위로 뛰어든 영상매체 속 스타들과, 스크린과 브라운관 속으로 뛰어든 대학로 배우들의 넘나듦, 그리고 월요일 휴무 공식을 깬 공연 등 다양한 양상들이 벌어지며 2015년 공연계의 풍경을 만들어 나갔다.
◇ 공연계를 강타한 메르스, 그리고 공연티켓 1+1지원
메르스가 휩쓸고 간 객석은 참으로 황량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크게 위축됐던 공연계는 채 기지개도 펴기 전 지난 6월 전국을 불안 속으로 몰아넣은 메르스 여파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빠른 전염성으로 인해 다중이용시설 중 하나인 공연장은 기피해야 할 곳으로 인식되면서 관객들의 발길이 줄어들었으며, 이는 재정위기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극장의 규모가 작을수록, 그리고 전염병에 취약한 어린이층과 노년층을 타깃으로 극일수록 이 같은 타격은 더욱 컸다.
실제 온라인 티켓 예매사이트에 따르면 메르스가 발생하기 전인 5월 마지막 주에 비해 6월 첫째 주 연극 예매율이 40% 포인트 가량 떨어졌고, 예매표 취소 사례도 이어졌었다. 공연취소를 한 곳은 관객뿐만이 아니었다. 관객 뿐 아니라 기획사 측에서도 메르스가 잠잠해질 때까지 공연날짜를 이후로 연기 혹은 취소하는 사례가 이어졌었다.
6월 공연예정이었던 트라이볼 클래식 시리즈, 트라이볼 재즈 페스티벌이 7월 이후로 늦췄으며, 서울 국제 도서전은 10월로,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는 오는 7월9일 개막이었던 공연을 8월로 연기됐다. 6월 첫 내한공연을 할 예정이었던 체코의 ‘파벨 하스 콰르텟’ 공연 역시 취소됐다가, 12월7일 파벨 하스 콰르텟LG아트센터에서 다시 올리게 됐다.
메르스의 악재를 정면으로 맞으면서 중소극단은 작품을 무대 위로 올리기 어려워졌다. ‘위드 수현재’의 두 번째 작품으로 선정됐던 ‘형제의 밤’의 연출자이자 제작사 으랏차차스토리의 조선형 대표는 “세월호 참사 이후 제 통장에 마이너스가 됐고 메르스 사건이 터지면서 너무나 힘들었다”며 “저희보다 더 어려운 극단들이 많다. 국가에서 진행되는 메르스 지원 사업이 정말 필요한 곳에 골고루 배분이 돼서 좋은 작품을 끌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에 이어 메르스 사건까지, 계속되는 공연계 악재에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가 나섰다. 추가경정예산 300억 원을 투입, 공연 티켓 한 장을 사면 한 장을 더 주는 ‘1+1’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 예술위에서 야심차고 적극적으로 실시된 공연티켓 1+1 지원 사업은 관객이 지정예매처인 인터파크에서 문체부와 예술위가 선정한 공연의 관람권을 한 장 사면 나머지 한 장 값은 정부가 보전해 주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중 공연티켓 1+1 지원 사업은 지난 8월18일 시범사업의 개념으로 티켓을 프리오픈하고, 총 99개 공연이 참여하면서 시작을 알렸다. 프리오픈에서 지적됐던 문제들을 재정비 한 이후 9월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열리는 공연들을 중심으로 1차 지원 사업을 시작했으며, 이후 10월 티켓사업 대상 공연을 430여 개에서 7백50여 개로 확대 적용하며 규모를 키웠다.
공연을 보지 않던 관객들을 공연장에 끌어들이면서, 침체됐던 공연계에 활기를 주고 있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공연티켓 1+1이지만, 이에 따른 지적도 있었다. 수많은 공연 중에서도 1+1 지원사업이 뮤지컬과 연극에 집중돼 있다는 점, 그 중에서도 인기 작품에 집중돼 있었다는 점이다.
공연티켓 1+1 행사가 한정된 예산으로 진행하는 한시적인 사업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지정된 300억 원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진행되는 이번 지원 사업은 잠깐의 이벤트성으로 관객을 끌어들일 수는 있어도, 분명한 한계점이 있는 만큼 근본적인 침체된 공연계를 활성화시키는 대책은 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 삼일로 창고극장 폐관, 문 닫는 소극장의 역사
↑ 사진=삼일로창고극장 |
지난 10월26일 정대경(56) 삼일로 창고극장 대표(한국소극장협회 이사장)는 “이번 달 말, 삼일로 창고극장이 40년간의 명동시대를 마감한다”고 폐관을 선언했다. 한국의 첫 민간 소극장 삼일로 창고극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2015년 소극장들이 잇따라 문을 닫고 있다. 올해 1월 상상아트홀과 김동수 플레이하우스가 문을 닫을 데 이어 28년간 대학로를 지켜왔던 ‘대학로 소극장의 상징’ 대학로 극장은 지난 6월 폐관해 충북 단양으로 극장을 옮겼다. 그리고 소극장 운동을 이끌었던 삼일로 창고극장마저 문을 닫게 됐다.
삼일대로 9길 12에 자리 잡은 삼일로 창고극장은 열악한 1970~80년대 문화계를 견뎌오면서도 연중무휴 공연, 프로듀서 도입, 창작극 시리즈를 지켜온 장소로, 소극장 운동의 본거지로도 통했다. 1977년 배우 추송웅(1941~1985)이 모노드라마 ‘빠알간 피터의 고백’을 초연한 곳으로도 유명하며, ‘티타임의 정사’ ‘유리동물원’ 등 지금까지도 꾸준히 공연되고 있는 작품도 모두 삼일로창고극장 무대에서 초연됐다. 배우 박정자, 전무송, 유인촌, 윤석화 등도 이 무대를 거쳐 갔다.
공연법과 재정난으로 1980년대 중반부터 폐관·재개관을 거듭해 왔던 창고극장은 2011년 태광그룹 후원으로 기사회생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2013년 지원이 끊겼고, 330만원 임차료을 감당하기 버거워지면서 결국 문을 닫게 됐다.
그동안 소규모 공연장들은 임차료 상승과 공연계 침체로 재정난을 겪어왔다. 올해 상반기 터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운영이 더욱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연이은 소극장의 폐쇄는 단순히 소극장의 임차료 상승 문제로 취급하기 어렵다. 더 이상 스타 마케팅 등 관객의 취향에 맞추지 않으면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고, 상업성이 없는 순수예술은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 속, 지금의 문화정책이 소극장이 갖는 문화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함이 소극장 폐관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과 메르스로 타격을 입은 대학로의 공연예술계를 살리기 위해 소극장 임차료 1년 치를 선별 지원한다. 지원대상은 이화동, 동숭동, 혜화동 등 대학로의 300석 미만 소극장들 중 예술인이나 극단이 직접 운영하는 순수예술공연 중심의 소규모 공연장으로 국한된다. 서울형 창작극장으로 선정된 공연장은 최대 5000만원 범위 내에서 2016년 임차료를 지원받게 된다.
◇ 월요일 휴무 공식은 깨졌다
더 이상 월요일은 공연계의 ‘공식 휴일’이 아니게 됐다. 개막에 앞서 많은 작품들은 월요 쇼케이스를 통해 관객과 만나왔으며, 기존의 공식을 깨고 월요일에 공연을 올리는 작품들이 하나 둘 씩 등장한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뮤지컬 ‘데스노트’이다. 국내 뮤지컬 사상 최초로 일요일에 공연을 쉬고, 대신 공연이 없는 월요일에 공연을 올린 것이다. 뮤지컬계에서 최고의 티켓파워를 자랑하는 김준수와 홍광호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던 ‘데스노트’는 그동안 요일과 관계없이 매회 매진을 기록해왔고, 이를 통해 ‘데스노트’의 제작사 씨제스컬처는 유례없는 ‘월요일 공연’이라는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연극 ‘프라이드’ 역시 ‘월요일 공연’이라는 파격적인 선택을 한 작품 중 하나이다. 다른 작품들이 올라가지 않는 월요일에 공연을 올리고, 화요일은 쉬는 독특한 운영 방식을 보여주면서 눈길을 끌었던 ‘프라이드’는 마니아 관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높은 객석점유율을 보여주었다.
코믹컬 ‘드립걸즈’도 월요일 공연작에 이름을 올린 작품이다. 골드팀(안영미, 김미려, 박나래, 최정화)과 레드팀(허안나, 김영희, 안소미, 박소라) 블루팀(맹승지, 홍윤화, 홍현희, 이은형)으로 나눠서 올라가, 일반 공연에 비해 여유가 많은 만큼 월요일 공연이 가능해진 것이다.2012년 초연 때부터 ‘월요병탈출’이벤트로 공연시작 전 로비에서 관객들에게 맥주와 스낵을 선착순으로 증정하면서 월요일 공연을 올려왔던 ‘드립걸즈’는 2015년 시즌4에서도 그대로 이어가면서 관객들을 맞이했다.
뮤지컬 월요쇼케이스는 작년에 비해 눈에 띠게 증가했다. 쇼케이스는 주로 뮤지컬 하이라이트 시연, 관객들의 질의응답으로 진행된다. 세팅되지 않은 무대에서 배우들이 작품 넘버를 열창하고, 소개하면서 본공연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뮤지컬 ‘영웅’ ‘유린타운’ ‘드림걸즈’ ‘데스노트’ ‘베어 더 뮤지컬’ ‘로기수’ ‘쓰루더도어’ ‘아리랑’ ‘고래고래’ ‘젊음의 행진’ 등 수많은 작품들은 월요 쇼케이스를 선보여 왔다.
월요 쇼케이스는 공연을 즐길 수 없는 월요일, 공연의 하이라이트와 배우들을 만날 수 있다는 이점으로 공연계 빼 놓을 수 없는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이 같은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지켜왔던 ‘월요일 공연 휴무’ 공식이 깨진 이유 그 뒤에는 ‘마케팅’의 영향이 크다. 남들이 쉴 때 공연을 하면서 이른바 ‘틈새시장’을 노린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프라이드’의 관계자는 “좀 더 많은 관객들을 모시기 위해 고민하다가 월요일 공연을 시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