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위상은 ‘스타크래프트’를 뛰어넘는다. 지난 19일 게임트릭스가 발표한 전국 PC방 게임 순위에서 ‘롤’은 177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국내 최장기 기록이다. PC방 점유율은 46%나 된다. 2명 중 1명은 ‘롤’을 한다는 얘기다. 언제부터인가 1020세대 문화를 논할 때 ‘롤’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게 됐다. ‘하드캐리(월등한 한 명의 리더십을 지칭하는 말)’ ‘갓 ㅇㅇ’(최고라는 뜻으로 접두어처럼 쓰임) ‘ㅇㅇ각’(추정 행위를 뜻하며 접미사처럼 쓰임) 등 인터넷 유행어도 ‘롤’이 진원지다.
PC 온라인 게임 절대 강자 ‘롤’이 국내 출시 4년을 맞았다. 지난 2011년 12월 12일 국내 정식 서비스된 롤은 신작 게임에 밀려 잠깐 2위로 내려간 적이 있지만 4년 가까이 1위를 수성했다. 미국의 작은 게임사가 개발한 비주류 장르 게임이 이토록 오랫동안 저력을 발휘할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게임 업계 판도를 바꾼 ‘롤’의 저력은 어디에 있을까.
롤은 전쟁을 막기 위해 각국이 소환한 ‘마법사’가 특정한 능력을 가진 ‘챔피언’들과 한 팀을 이뤄 연습 대결을 펼치는 리그를 뜻한다. 각 진영은 마법사 지휘 아래 적진을 함락해야 한다. 임무를 수행하며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롤 플레잉 측면과 거시적으로 게임을 지휘하는 전략 게임 특성이 두루 섞여 있다고 보면 된다. 이같은 게임 장르는 멀티플레이 온라인 배틀 아레나(MOBA)다. 국내에서 인기가 없었지만 롤로 인해 인기 장르로 부상했다.
롤의 강점은 팀워크에 있다. 일대일 대전 위주 스타크래프트, 캐릭터를 혼자서 장시간 육성하는 RPG 장르와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롤은 최소 3~5명이 필요하다. 암살자, 공격수, 마법사, 서포터 등 다양한 역할이 적재적소에 필요하다. 한 판에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30분. 짧은 시간에 팀원 역량과 전술을 쏟아부어야 한다.
구기향 라이엇게임즈코리아 실장은 “롤은 친구들과 하기 좋은 게임이다. PC방이 발달한 국내 환경도 롤과 맞아떨어졌다”고 했다.
팀웍 대결이 강한 특성이 e스포츠로 확산되는 고리가 됐다. 스타크래프트 부정 경기로 쇠락길에 접어든 e스포츠는 롤을 만나 부활했다. 라이엇게임즈가 주최하는 롤 스포츠 리그는 게임계의 월드컵이란 뜻에서 ‘롤드컵’이라 불리며 인기를 더하고 있다. 지난 10월 독일에서 열린 ‘2015시즌 리그오브레전드 월드챔피언십’은 한달간 누적 시청자가 3억3400만명에 달했다. 라이엇게임즈코리아는 국내에서 아마추어 대상으로 PC방 토너먼트도 운영한다. 전국 16개 지역 PC방에서 매주 토요일 롤 경기가 열린다.
유료 결제를 최소화한 ‘프리 투 플레이’(Free to Play)도 롤이 가져온 신선한 바람이다. 기존 게임업체는 아이템 유료 결제를 강화해왔다. 이 때문에 돈으로 인해 실력이 좌우되는 경향이 게임 생태계를 황폐화시킨다는 비판이 많았다. 그러나 롤에서는 아이템을 사서 실력을 보강하는 현찰 플레이가 불가능하다. 캐릭터 외양을 꾸미는 스킨만 유료 결제다. 스킨은 실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라이엇게임즈 설립자 브랜던 벡은 “비용 결제를 많이 한 사람이 유리하거나, 이기게 되는 게임이 아니라 정말 스포츠처럼 재미있게 즐길 만한 게임을 만들면 어떠할까 하는 생각을 거듭했다”고 밝힌 바 있다.
구기향 실장은 “공정성을 잃지 않은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향후 롤은 게이머 불편 사항을 실시간 해결해주는 게임 매니저(GM)를 강화하고, 여러 사업을 통해 롤 IP(지적재산권)를 확장해나갈 계획이다.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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