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뮤지컬 ‘시카고’의 가장 큰 매력은 거부할 수 없는 관능미이다. 무대 위에 오르는 모든 배우들은 몸매가 드러나는 검은 시스루 의상으로 관객을 유혹하는가 하면, 살인과 섹스, 배신이 난무하는 스토리 속 펼쳐지는 군무와 넘버들은 극을 더욱 매혹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시카고’가 자랑하는 관능의 중심에는 진득하면서도 스윙감이 넘치는 재즈 선율이 있다.
남편과 여동생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 둘을 살해한 벨마 켈리와 불륜남의 버림에 분노하여 정부를 살해한 록시 하트가 변호사 빌리 플린을 맡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시카고’는 고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뮤지컬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배경이 되는 곳은 1920년대 시카고 쿡 카운티 교도소, 살인죄로 수감된 록시와 켈리는 무죄판결을 받기 위해 한바탕 쇼를 벌인다.
2000년 국내 초연됐던 ‘시카고’의 평 이후 12번이나 무대화가 이뤄질 정도로 뮤지컬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평균객석점유율 90%, 최고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던 2014년 ‘시카고’의 멤버들이 다시 뭉친 2015년 ‘시카고’는 최고의 호흡을 자랑하며 톡톡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무대 위에서 배우들 못지않게 존재감을 뽐내는 주인공이 있다. 바로 무대 정 가운데 자리한 14인조 빅밴드이다. ‘시카고’의 무대에서는 화려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1000석이 넘는 대극장 무대이건만 그 흔한 회전무대도 없고, 색도 어두운 검정뿐이다. ‘시카고’의 삭막한 무대는 라이브 밴드가 선보이는 리듬감 넘치는 재즈 음악으로 가득 메운다. 금관악기가 들려주는 묵직한 선율과 스윙은 보기에도 섹시한 ‘시카고’를 더욱 관능적으로 만들어 준다.
본격적인 공연의 시작을 넘버이자, 대표넘버로 널리 알려진 ‘올 댓 재즈’(All That Jazz)’이 흘러나오면, ‘시카고’의 무채색 무대는 그제야 제 색을 내며 빛을 낸다. 빅밴드의 살아있는 재즈선율은 오민영 음악감독의 지휘에 따라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박칼린 음악감독의 뒤를 이어 ‘시카고’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오민영 음악감독을 만나 작품에 대한 만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시카고’에서 가장 좋은 넘버? 어떻게 하나만 꼽을 수 있나요”
오민영 음악감독의 ‘시카고’ 사랑은 매우 뜨거웠다. 그도 그럴 것이 연주자에서부터 시작해 부지휘자, 그리고 박칼린 음악감독의 뒤를 이어 현재의 음악감독이 되기까지. 2000년 초연부터 무대를 지켜온 오민영 음악감독은 그 누구보다 ‘시카고’의 대한 애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 ‘시카고’와 함께 하고 있는 오민영 음악감독에게 가장 좋아하는 넘버, 그리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넘버 하나만 꼽아 달라 부탁했다. 생각보다도 어려운 질문이었던지 “하나만 꼽을 수 없다”면며 한참을 고민하던 오민영 음악감독은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넘버 소개에 들어갔다.
“그때마다 좋아하는 넘버들이 바뀌는 것 같다. 사실 처음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넘버는 오프닝곡인 ‘Overture’였다. ‘빠바빰빰’이라는 전주가 들리면 ‘그래 이래서 ‘시카고’를 하는 거지’ 했는데, 또 언제는 마지막 넘버인 ‘Finale’이 좋더라. 반음을 재미있게 풀어낸 작곡가의 매력이 잘 들어가 있는 곡이지 않나 싶다. 벨마가 록시를 꼬시기 위해 부르는 ‘I Can’t Do It Alone’도 흥미롭다. 음악적 봤을 때 다양하게 기교가 사용된 곡은 아니다. 재밌는 것은 ‘쿵짝쿵짝’하는 음악 속에 모든 쇼를 풀고, 벨마의 과거 이야기까지 들려준다. 이 노래 하나에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음악적인 단어와 색깔을 많이 사용하지 않아도 이렇게 완성도 높게 잘 쓸 수 있구나 싶다.”
좋은 넘버가 있는 반면 다루기 까다로운 넘버도 있었다. 오민영 음악감독은 ‘시카고’에서 가장 어려운 곡으로 록시의 테마곡인 ‘Roxie’를 꼽았다. 정형화 된 리듬이 아닌 자유로운 느낌의 스윙리듬으로 이뤄진 곡인만큼 조금이라도 방심을 하게 되면 모든 호흡이 흩어 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Roxie’는 스윙리듬 속에 두 마디 패턴이 반복된다. 처음에는 이 스윙리듬을 맞추는 것이 힘들었다. 연주자마다 스윙리듬을 받아들이는 것이 다 달라 자칫 잘못하면 피아노랑 치는 것과 손으로 뜯는 것, 부는 것이 다 따로 놀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감독이 누구냐에 따라서도 들려주는 것이 바뀌는 넘버가 바로 이 ‘Roxie’다. 그냥 듣기에는 단순한 리듬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두 마디의 디테일을 맞추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정말 이 곡 하나만 얼마나 연습했는지 모른다.”
오민영 음악감독은 ‘시카고’에 대해 “한 번도 안 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한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배우에서부터 오케스트라 단원, 앙상블까지, 함께 했던 사람들이 뭉쳐서 만들어진 ‘시카고’인 만큼 합이 맞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카고’를 처음 시작했을 때가 생각난다. 초연 때 ‘시카고’의 음악감독이 외국인이었다. 재밌는 것은 당시 ‘시카고’이 오케스트라 연주자 대부분이 재즈가 아닌 클래식 전공을 했던 이들이라는 것이다. 저 역시도 클래식 전공자였다. 한국공연 만의 ‘시카고’ 음악을 만드느라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래도 그때 고생한 덕분에 음악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저 뿐만이 아니라 모든 연주자들이 음악을 즐기면서 일하고 있다. 워낙 오래 맞춰봐서 한 몸처럼 서로가 서로를 다 알게 된 것 같다.”
◇ 무대 위로 올라온 오케스트라, 어려운 건 연기 아닌 온도
‘시카고’ 오케스트라의 자리는 무대 아래가 아닌 무대 정중앙에 자리해 있다. 덕분에 객석에서 ‘시카고’ 라이브로 연주되는 오케스트라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감상할 것이 늘어난 반면, 늘 무대 아래에 있던 연주자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에 대해 오민영 음악감독은“저희 단원들은 재밌어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동선 하나 바뀌는 거 하나 재미있다고 한다. 물론 노출이 되는 만큼 신경을 쓰는 부담도 있지 나름의 장점도 있는 것 같다. 사실 대부분의 작품의 경우 위가 안 보이니 무대 아래에서 지루할 때가 많다. 그런데 무대 위에서는 배우들의 연기를 직접 볼 수 있으니 지루할 틈이 없다. 공연 중간에 연주자들을 보고 있으면 자기들끼리 재미있다고 웃고 있다.(웃음)”
오케스트라가 무대 위로 올라오면서 생기는 문제는 따로 있다. 사람들 앞에 섰다는 부담감도 있지만, 그에 앞서 조명과 습도로 인해 악기가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었다. 조명과 습도의 영향을 받는 악기로 인해 미묘한 균열이 생길 수 있고, 이는 공연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조명이 뜨겁다보니 악기 온도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있다. 특히 나무로 된 바이올린의 경우 건조하면 갈라질 때가 있다. 악기는 원래 온도와 습도가 균일하게 유지돼야 하는 것이 있는데, 공연장이라는 곳이 히터를 틀기도 하지 않느냐. 만약 균일하게 덥거나 추우면 괜찮은데 그날그날의 온도와 습도에 따라 달라지는 만큼 어려움이 많다.”
‘시카고’ 음악감독에는 오케스트라 지휘 외에도 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연기’다. 신문에 나온 자신을 자랑하는 록시에게 신문을 받기도 하고, 중간에 짧지만 배우를 향해 하는 대사도 있다. 오민영 음악감독은 이 짧은 연기 때문에 ‘시카고’를 하기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저는 진짜로 음지에서 일하는 스테프였는데 갑자기 ‘시카고’의 음악감독이라니…음악감독 자리를 권유하는 박칼린 선생님에게 ‘저는 연기 못하고 대사를 못 합니다’고 거절할 정도였다. 진짜 떨렸다. 처음에는 어떤 정신으로 했는지 모르겠다. 잘 나오던 목소리도 안 나오고 대사 까먹으면 어떡하나 걱정도 엄청 했었다. 제가 얼마나 떨었는지 보는 배우들이 와서 도와줄 정도였다. 조언을 하도 많이 해줘서 정신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연습만이 살길이라고, 습관과 반복, 연습을 거듭하다보니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되더라. 이제는 툭 치면 나올 정도다.”
아주 짧은 연기지만 덕분의 배우의 마음을 알게 됐다는 오민영 음악감독과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유쾌했다. 공연계에 뛰어든 지 어느덧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작품을 향한 오민영 제작감독의 애정은 무척이나 깊었다. 2015년 ‘시카고’ 뿐 아니라 창작뮤지컬 ‘아리랑’의 음악감독으로도 활약을 했었던 오민영 음악감독은 “그동안 해왔던 창작뮤지컬들은 결과가 썩 좋지 못해 재공연을 할 수 없었다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아리랑’은 이 같은 아쉬움을 상쇄해준 작품이다. ‘시카고’와 같은 라이선스도 좋지만 더 많은 창작뮤지컬들이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 재공연이 됐으면 한다”고 털어놓았다.
“저는 제 일이 좋다. 일을 하면서 지칠 때도 있지만, 음악감독으로 있는 지금 이 시간이 매우 즐겁고 신이 난다. 이 일을 위해서 난 뭘 더 해야 늘 고민한다. 매 순간 행복하고 ‘힘듦’마저 좋은 걸 보면 내가 참 공연을 사랑하고 있구나 싶다. 공연계로 오길 참 잘했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