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5년 만이었다. ‘친구’(2001)의 아성을 뛰어넘은 청불영화(청소년 관람 불가)는 없었다. ‘810만 관객’이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잇단 도전들이 번번히 좌절됐다. ‘타짜’(2006·568만)가 그랬고 ‘추격자’(2008·504만)가 그랬으며 ‘범죄와의 전쟁’(2011·472만)과 ‘신세계’(2012·468만)도 그랬다. ‘19금 범죄 누와르’가 500만을 뚫는 건 그만큼 버거운 일이었다.
작년 연말, 한국 청불사(史)에 한 획을 그은 문제작이 등장했다. 그 해 11월 16일 개봉한 ‘내부자들’, 42일 만에 700만명을 돌파했다. 50분 분량을 추가한 감독판(디 오리지널)마저 12일 162만을 달성했으니, 도합 860만명(13일 기준)이다. ‘히말라야’ 뒤를 이어 박스오피스 3위임을 감안하면 900만명은 거뜬히 넘을 전망이다. 이쯤이면 연출자를 만나봐야 할 당위가 생긴다.
12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우민호 감독(45)을 만났다. 그는 “15년 만에 ‘친구’ 기록을 넘어선 작품을 연출했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애초 바람이 손익분기점을 넘는 거였다니 그럴 만도 했다. 사실 그의 전작 두 편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데뷔작인 ‘파괴된 사나이’(2010)와 다음작 ‘간첩’(2012)은 100만 수준의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연출자라면 더 잘 알지 않을까. 자기 영화가 흥행한 진정한 비결 말이다. 우 감독은 지난해 ‘암살’ ‘베테랑’과 이번 영화가 세 가지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첫째는 당연히 명품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이죠. 다음으로 정서적인 카타르시스를 준다는 것. 적어도 영화에서 만큼은 정의가 실현되니까요. 근데 정작 중요한 건 단순한 사회고발 성격에 머물지는 않았다는 점 같아요.”
‘사회고발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고백이 흥미로웠다. 그가 말을 이었다. “상업적인 요인까지 고려해서 ‘영화적’ ‘장르적’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려고 했죠. 단순 ‘리얼리즘’에 머물렀다면 이만큼 성공했을까 싶어요. 원작이 정치·경제·언론 간 권력 카르텔을 집중했다면, 저는 그 안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의 ‘내밀한 욕망’에 더 천착했거든요.”
거친 세상 아래 저마다 한움큼의 욕망을 품고 산다. 우 감독이 염두한 건 바로 이 부인하기 힘든 실존 양식이었다.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려는 욕망이 나쁜건가요? ‘내부자들’은 그런 욕망을 극단으로 치닫게 한 셈이죠. 관객분들께서 그런 인물들의 까발려진 욕망을 지켜보고, 자신의 숨겨뒀던 욕망을 솔직히 대입시켜 볼 여지가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공감하시게 된 건 아닐런지.”
그런 그가 영화인을 꿈꾸게 된 건 아득한 유년시절에 기인한다. 매주 토요일 밤, 아버지와 KBS 토요명화를 봤다. 아랑훼즈 협주곡의 ‘빰빠빠빠빰’ 소리만 TV 밖에 들려와도, 가슴이 뛰었다. 유독 범죄 누아르가 마음을 끌었는데, 스릴러계 대부 알프레드 히치콕부터 마틴 스콜세지 등 거장 감독들 작품을 두루 탐닉했다. 중앙대 영화학과 졸업한 뒤에는 ‘2002 부산국제영화제’로 신인감독 등용문 뉴 디렉터스 인 포커스(NDIF) 대상을 받았다. 하지만 입봉까진 8년이 걸렸다.
사실, ‘내부자들’ 전매특허가 된 안상구(이병헌)의 미역머리는 스콜세지 감독에 대한 오마주다. “영화 ‘케이프피어’(1991) 주연 로버트 드니로 스타일을 따온 거에요.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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