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공연을 볼 때면 티켓가격이 눈에 안 들어와요. 작품에 치이고 배우에 치이면 나도 모르게 결제하는 거죠. 그러다 나중에 통장을 보면 뒤늦게 잔고가 없고, 그렇게 통장은 텅장이 돼 갑니다.”(회전문 관객 A씨)
한 작품을 여러번 본다는 뜻의 ‘회전문 관객’은 지난 2010년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됐던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부터 시작됐다. ‘빌리 엘리어트’는 스타가 없이 아역만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하는데 성공한 작품으로, 당시 관객들은 ‘빌리 엘리어트’를 보기 위해 수도 없이 LG아트센터에 발걸음을 돌렸었다. LG아트센터의 출입구는 ‘회전문’으로 돼 있는데, ‘빌리 엘리어트’의 반복 관람객들은 하루같이 회전문을 돌렸고, 여기서부터 ‘회전문을 돈다’라는 말이 탄생했다.
뮤지컬 마니아 사이에서 사용됐던 ‘회전문’이라는 용어는 이후 뮤지컬 ‘셜록홈즈’가 2012년 제 6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올해의 창작뮤지컬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당시 ‘셜록홈즈’의 자작사인 HJ Culture의 관계자가 상을 받은 후 수상소감으로 “팬들 사이에서 고가의 티켓을 수십 번 본다는 ‘회전문’이라는 말을 듣고 눈물이 났다. 팬들에게 의미 없는 ‘회전문’이 되지 않는 공연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던 것이다.
↑ 사진=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는 회전문 관객들. 이들은 왜 봤던 작품들을 계속 반복해서 지켜보는 것일까.
이에 한 회전문 관객은 “공연은 순간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공연기간이 길다고 하더라고, 내가 보는 그 날의 공연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단 한 번 밖에 없는 순간”이라고 말했으며, 또 다른 관객 역시 “시공간에서만 공유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공연이라는 것이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예술이기에 같은 공연을 보더라도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을 준다. 그 매력 때문에 같은 작품을 계속 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현장성은 마니아들을 공연장으로 인도하는 가장 주된 이유로 꼽혔다. 한 관객은 “저도 사람인지라 매일 공연티켓을 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속상한 것은 꼭 맨날 보다가 공연예매를 안 하는 날마다 이른바 ‘레전드’가 터진다는 것”이라며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회전문을 돌 때였다. 티켓팅에 실패한 날 ‘로키’ 공연 중 극장의 문고리가 고장 나는 사고가 났었다. 그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라면서도 이를 대처하는 배우들이 순발력이 코믹한 극의 분위기와 어우리면서 재미가 절정에 올랐다고 하더라. 하지만 나는 이를 못봤다. 이런 부분을 놓칠 수 없어 계속 보게 되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관객은 “그날, 그날이 다르기 때문에, 회전문 돌아도 매번 공연을 처음 보는 것만 같다. 시작 전에는 ‘내가 여기 왜 또 있지’ 싶다가도 막상 암전되면 가슴이 뛴다. 그리고 다 보고 나면 ‘역시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이야기 했다.
공연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회전문 관객, 이들이 회전문을 돌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해 대부분 배우로 시작한다고 밝혔다. 배우가 좋아 회전문을 돌기 시작했다고 밝힌 관객은 “처음에는 제가 좋아하는 배우를 중심으로 작품을 봤다. 작품을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공연을 보는 눈이 높아지고, 그러면서 다른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더라. 다른 배우들의 합이 궁금해 또 보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작품에 빠지게 되고, 정신차리보 보니 내 월급의 절반 이상이 공연관람에 투자되고 있더라”고 설명했다.
↑ 사진=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
회전문을 돌다보면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티켓 가격’이다. 이른바 회전문 관객들이 선호하는 자리가 VIP석으로 불리는 앞자리인데, 대부분 이 같은 자리는 대극장의 경우 평균 12만 원 이상, 중소극장의 경우 5만 원이 훌쩍 넘는다.
이에 대해 한 관객은 “본진에 치이면 가격은 둘째 문제다. 티켓 가격이 눈에 보이지 않고, 그냥 나도 모르게 결제를 하게 된다. 나중에 통장이 텅장(텅빈통장의 줄임말)이 되고 나서야 뒤늦게 현실파악을 하게 되는 데 그때는 이미 늦었다”며 “다음에는 좀 자제해야지 하면서도, 월급을 받게 되면 또 다시 반복된다”고 말하며 웃읐다.
또 다른 관객은 “솔직히 티켓가격이 너무 비싸다보니, 이를 무시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명품 옷이나 가방을 산다든지, 해외여행을 다닌다든지 하지 않는가. 저희는 이 비중을 줄이고, 대신 그곳에 쓸 돈을 공연에 투자하는 것 뿐”이라고 밝혔다.
물론 비싼 티켓 가격으로 인한 불만도 나왔다. 한 관객은 “반복 관람으로 인한 지출은 생각보다도 더 크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반복 관람 시 할인폭이 조금만 더 컸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30~40%까지 해 줬는데, 요즘은 많이 줄어들었다. 어떤 작품은 재관람 할인이 10%인 것도 봤다. 제작사들이 할인율을 낮추더라도 관객들이 볼 것이라고 생각하나보다. 물론 작품이 좋을 경우 ‘울며 겨자 먹기’로 보기는 하는데, 그저 공연을 돈벌이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고 불만을 토해냈다.
이 같은 의견에 동조한 또 다른 관객은 “할인율이 뒤늦게 제공되는 공연도 있다. 티켓 판매 실적이 저조하다 생각되면 그제야 할인 판매를 하는 듯하다. 그럴 때는 미리 좋은 좌석을 잡아놨다가 나중에 그걸 취소하고 할인된 금액으로 다시 예매할 때도 있다. 화가 나다가도, 어쩌겠는가. 더 좋아하는 사람이 손해 보는 수밖에”라고 서글퍼 하기도 했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