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경자作 ‘황혼의 통곡’ |
지난해 8월 6일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난 ‘꽃과 여인의 화가’ 천경자 화백(1924 ~2015). 그녀는 추상미술이 대세이던 시대 왜색 논란을 딛고 독특한 채색화의 경지를 이룬 독보적인 화가였지만 동시에 글쓰기를 사랑한 수필가였다. 1979년 쓴 에세이 ‘자유로운 여자’에서도 종잡을 줄 모르는 바람의 특성을 예찬한 어록을 남겼다. 지난해 그녀의 추도식이 열렸던, 또한 1998년 분신과도 같은 작품이 흩어지지 않고 영원히 사람들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의지 아래, 작품 93점을 기증했던 서울시립미술관에서 1주기 추모전이 열린다.
전시 제목이 그녀가 썼던 감성 어록 ‘바람이 불어도 좋다. 어차피 부는 바람이다’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기증했던 93점이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공개될 뿐더러 개인 소장자로부터 대여한 작품을 통해 그녀의 미술사적 위치를 재조명하는 취지가 강하다. 또한 삶의 희로애락을 매순간 솔직하게 기록했던 그녀의 글과 사진, 기사, 삽화, 영상 등을 아카이브 코너에서 만날 수 있다.
뱀 35마리가 우글거리는 작품인 ‘생태’(1951)을 통해 스타작가 반열에 오른 천경자 화백은 뱀의 이미지에 대해 “그러나저러나 뱀은 분명히 매력 있는 동물”, “꽃이니 뱀이니 머리에 얹은 것도 한”이라고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라는 작품에 대해서는 “내 온몸 구석구석엔 거부할 수 없는 숙명적인 여인의 한이 서려 있나 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선명한 총천연색이 무서워 거칠게 헐떡거리는 심장을 움켜쥐고 깨어나선 새벽을 기다린다. 그 새벽과 함께 커피를 끓여 마시며 나 혼자의 아침 향연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곤 종일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릴 때에 한해서 나는 행복하다”고 ‘탱고가 흐르는 황혼’(1995)에 적었다.
천경자 화백은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 미인도 위작 사건’으로 절필선언을 했으며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국내 미술계와 연락이 끊긴 상태에서 지난해 돌연 작고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타계 후에도 ‘미인도’ 위작 논란이 다시 불거지며 공개를 하겠다는 국립현대미술관 측과 이에 반발하는 유족 측이 맞서고 있어 시끌시끌하다. 사후에도 조용할 날이 없는 천 화백. 이 참에 차분히 그녀가 남긴 작업을 음미해보면 어떨까.
대
[이향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