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사과 |
이 시대는 ‘나’를 제외한 모든 존재가 타자로 전락하는 세상이다. 소설가 김사과(32)는 ‘나’란 존재에 타자를 더하면 세상이 된다는 삶의 방정식을 세운 뒤 악(惡)의 전염이란 주제로 세상을 세웠다. 제17회 이효석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김 작가의 ‘카레가 있는 책상’(계간 ‘자음과모음’ 2015년 겨울호)을 열어봤다.
어두운 고시원에서 인스턴트 카레만 먹고 사는 한 남자의 1인칭 소설이 펼쳐진다. 의지, 욕망, 관심, 두려움이란 단어를 자신의 심연에서 제거해버린 남성은 고시원의 이웃에게 카레 냄새를 풍긴다는 이유로 린치를 당한다. 타자를 향한 타자의 혐오는 다른 타자에게 전염된다.
격자같은 고시원 쪽방에 숨어살며 ‘인간혐오자’를 자임하는 ‘나’는 버블티 카페에서 만난 미모의 알바생을 스토킹하고, 범죄 욕구를 느낀다. 소설은 아슬아슬한 범죄의 줄타기로 매듭을 짓는다.
잠재적 악인, 인간혐오자, 사회 잉여와 같은 존재는 우리 주변에 분명히 있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 타자와 자아가 엮인 세상이다. 그래서인지 김 작가는 다음의 문장으로 세상을 정의한다. “여기는 정말로 이상한 곳이다. 아무것도 분명치가 않다.” 고시원의 디스토피아는 실재적인 이 세상과 다르지 않다. 서사가 온통 은유다. 골방에서의 1인칭 자기고백이란 키워드는, 이 소설의 먼 기원을 두 편의 해외 소설에서 찾게 만든다.
“부끄러운 일이 많은 생애를 보내왔습니다. 나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로 시작하는 다자이 오사무의 장편소설 ‘인간실격’, “나는 병자다. 나는 악인이다. 나는 매력이 없는 사람이다”로 출발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자적적 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떠오르게 한다.
혐오에서 파생된 사건의 대상이 자기가 아닌 타자로 뻗어나간다는 점에서 ‘카레가 있는 책상’은 현실적 함의를 담으며 진일보했다. “나는 인간이 혐오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혐오할 가치가 있다”와 같은 문장을 부정할 수만은 없어서다. “인간들은 저 이상적인 가치들을 만들어냈지만 단 하나도 제대로 실천된 것이 없다. 완벽한 인간은 존재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인간을 혐오한다”란 문장은 서슬퍼런 단면이다.
1인칭에서 시선을 비틀어 주체를 고시원에 틀어박힌 ‘나’에서 버블티 알바생으로 바꿔버리면 소설은 비극이 된다. ‘그녀’는 ‘나’에 의해 스토킹에 이은 성범죄의 표적이 될 예정이어서다. 15페이지 남짓의 짧은 단편에서 김 작가는 혐오의 전이, 악의 평범함, 우연과 필연의 관계 등을 포괄적으로 담았다.
심사위원 신수정 문학평론가는 “우리 사회를 불안으로 몰고가는 혐오 범죄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조금은 짐작 가능해졌다. 우리의 편견과 배제의 전략은 혐오를 낳고, 혐오는 다시 우리를 거대한 야만과 공포 속으로 몰고간다”고 이 작품을 평했다. 심사위원 이기호 소설가는 “김 작가의 소설은 박민규 소설가의 ‘갑을고시원 체류기’를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
1984년생인 김사과 소설가는 단편소설 ‘영이’로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2005년 데뷔했다. 장편소설로 ‘미나’, ‘풀이 눕는다’, ‘나b책’, ‘테러의 시’, ‘천국에서’를 썼고, 단편집으로는 ‘02’를 남겼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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