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따르면 미국은 이미 변했다. 대선에서 트럼프가 이기든 지든 이미 미국이라는 나라는 세대적 전환을 통과했다. 그는 ‘트렉시트’(Trump+Exit)와 브렉시트가 모두 촘촘한 네트워크로 진화한, 전지구적 제국의 질서로부터 탈주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분석한다. 미국을 만든 신화는 부단히 노력하며 이룩한 ‘열린 국가’라는 정체성. 뉴딜과 유엔의 탄생을 거쳐 오바마 시대에 이르러 만개했다. 오바마 시대는 백인 중심 민족국가에서 다원주의 국가로 본격적으로 도약한 시기였다. 하지만 그 신화는 바닥에서부터 무너져내리고 있다. 막말을 일삼는 트럼프의 기세등등한 모습을 통해서 말이다. 이런 현상은 오바마의 경이로운 집권 후반기 실적과 버니 샌더스라는 사회주의자의 돌풍이라는 두 현상과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최근 미국의 현주소를 알려주는 통계수치가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에 따르면 의료 기술의 혁신에도 불구하고 최근 15년간 미국의 45~54세 백인 중년층의 사망률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OECD선진국 중 유일한 현상이다. 술과 약물중독과 스트레스, 자살 등의 이유로 10만명당 34명에 달하는 사망자수가 늘어났다. 같은 기간 히스패닉과 흑인은 각각 60명과 200명씩 사망률이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정신적 공황에 빠져있는 백인 남성들은 도널드 프럼프의 지지층과 정확하게 겹쳐진다.
이러한 신호들을 통해 저자는 “미국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고 진단한다. 미국을 이끌던 주류 세력이 황혼을 맞고 있다는 것. 돌이켜보면 미국의 400년은 누가 주인이냐를 둘러싼 투쟁의 역사였다. 토착 인디언의 땅에서 백인(WASP)의 땅으로, 다시 백인과 흑인의 땅으로, 백인-흑인-아시안-히스패닉의 공존의 땅으로 차례로 변화했다는 것. 이제 미국에서 저소득층 백인의 영향력은 퇴조하고 그 자리를 진보적 백인과 소수파 다인종 연합이 메운다는 것이 저자의 가설이다.
따라서 현재 미국 대선에는 세가지 세력이 충돌하고 있다. 먼저 퇴조하는 백인들의 절망적인 복고 운동이 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계층이다. 사회적 보수주의자와 화석연료 기반 기업도 여기에 속한다. 한편 샌더스의 지지자는 근대 진보주의 황금기에 대한 복고적인 꿈을 기억하는 이들과, 밀레니얼세대(1981년 이후에 태어난 성인들)로 이뤄진 과거와 미래 세대의 전략적 연합이다. 졸업 후에도 빚더미 속에서의 우울한 미래가 기다리는 미국의 대학생들은 90%를 넘는 열광적 지지를 급진적인 샌더스에세 보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새로운 리더인 오바마, 힐러리, 스페이스X의 일런 머스크 등을 지지하는 이들은 미국을 미래 기업국가로 진화시키고자 한다. 진보적 백인, 히스패닉 등 다문화·다인종 연합은 미국을 구글과 페이스북 등이 주도하는 ‘생태적 기업국가’로 변화시키고자 한다.
대선 현장을 쫓아 대륙을 횡단한 저자는 포틀랜드라는 도시에서 미국의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미국인의 일상에서 새로운 삶으로의 혁명이 일어났음을 발견한 것이다. 지금 미국은 더 나은 삶의 질과 생태 문명을 향한 사회운동이 어느때보다 활발하다. 미국 드라마 ‘포틀랜디아’를 통해 포틀랜드는 안정적이고 공동체가 살아있는 유토피아로 그려지고 있다. 이 도시에서 만들어진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잡지 ‘킨포크’는 이미 세계적 문화현상이 됐다.
미국 최초로 공개적 동성애 시장을 선출한 이 전위적 도시는 생태적 삶, 도시와 농업의 화해, 공동체의 복원, 경전철 등 미래형 교통 체계, 시민 개입주의, 동성애, 인디 음악, 아날로그 서점 공동체 등의 라이프스타일이 자리잡았다. 이 흐름은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뉴욕, 피츠버그 등 미 전역의 창조도시로 번져가고 있다.
청교도적 전통으로 건국된 미국 문명이 보수적 가치관은 밀레니얼세대를 통해 완전히 해체됐다. 저자는 오늘날 미국 진보주의의 약진과 샌더스 현상의 이면에는 이같은 진보적 세대가 잇다고 말한다. 또한 미국에선 독립적 생활을 하는 싱글 여성의 비율이 기혼 여성을 앞질렀다. 이들은 동일 임금, 유급 휴가, 기본소득 등 남녀평등에 기반한 가치를 내건 샌더스 시대로 나아가길 원했다. 그들이 원하는 정치인은 베이비붐 세대 출신으로 교외 중산층의 정서에 맞는 보수적인 클린턴이 아니었던 것이다.
토크빌, 그람시, 후쿠야마, 그린버그 등 학자들의 정치이론을 통해 미국의 현재를 분석하는 서술이 믿음직스러운 책이다. 다크나이트(오바마와 힐러리), 아이언맨(트럼프), 캣니스 에버딘(샌더스)과 같은 할리우드 영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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