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한복판의 잡지 편집부에는 자신의 회고록을 낼 야심에 찬 편집자 딘, 쇼핑에 중독된 하버드대 출신의 켄드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무언지 모르는 인턴 마일즈가 있다. 그곳에서 글로리아는 존재감도 없고 관심도 받지 못하는 교열부의 장기근속자다.
“쥐꼬리만한 월급을 15년간 아껴서 산 아파트 한 채. 그 걸 축하하는 파티였어.”
어느 날 글로리아가 파티를 열지만 동료 딘 만이 유일하게 참석한다. 그녀의 아파트를 채워줄 다른 동료들은 오지 않는다. 이 사건을 계기로 1막 끝에 그녀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된다.
“위트와 아이러니로 이뤄진 연극은 교묘하게 풍자에서 스릴러로, 그리고 다시 스릴러에서 풍자로 이끈다,” 퓰리처 재단이 내린 평이다. 연극 ‘글로리아’는 30세의 나이로 오비상을 수상하며, 현재 미국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극작가 브랜든 제이콥스-젠킨스의 최신작이다. 얼마 전 퓰리처 상 드라마부문 최종심사에 오르며 다시 한 번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글로리아’는 반전을 겸비한 스릴러란 겉에 풍자라는 속을 갖췄다. 관객들에게 불편한 즐거움이란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잡지사라는 구체적인 장소로 구현됐지만 사실 연극의 배경은 세상 어디에나 있을 법한 우리의 직장이다. 경쟁이 치열하고 가식이 만연하며 무관심이 편재한다. 모두 내일 잘릴 것을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영원히 떠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한다. 이들에게 중요한건 오직 자기 자신의 성공과 탈출 뿐, 타인에게는 무관심하다. 옆 부서의 동료의 존재는 알지도 못하며 바로 옆자리 동료 이름조차도 헷갈려한다.
서로가 서로를 소외시키는 삶은 글로리아의 아파트처럼 텅 비어있다. 그들은 업무시간 내내 끝없는 험담과 수다로 공허함을 때운다. 이 불만과 기회주의로 가득 찬 잡담을 보다 보면 관객들은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바로 자신의 모습이다. 누구나 글로리아가 될 수 있다고 연극은 말한다. 삶의 절반을 차지하는 직장에서 마음 붙이지 못하고 관계 맺지 못하는 이라면 그 누구라도.
글로리아의 극단적인 선택은 아무 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2막과 3막은 그녀의 비극을 이용해 성공해보려는 동료들의 민낯만 들춘다. 존재보다는 생존에 급급한 모습들이다. 반성이나 깨달음 없이 끝나는 연극은 냉소적이다. 등장인물 중 로린의 무기력과 염세주의는 그나마 이런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의 담고있다. “저는 좀 더 존재하고 싶어요.” 그러나 말 뿐이다. 그 역시 적극적인 행동이나 변화를 모색하지 않는다. 그런 로린의 모습은 우리의 현실과 판박이라 씁쓸함을 더한다.
작품을 완성시키는 건 뛰어난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다. 비속어를 맛깔스럽게 살린 대사들이 귀에 쏙쏙 꽂힌다. 탁월한 완급조절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김태형 연출의 솜씨는 극의 몰입도를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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