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선의 기억을 따라 만난 사람들①] 한복진흥센터 전민정 한복산업진흥팀장
[MBN스타 유지혜 기자] “한복은 다른 문화예술 분야와 비교했을 때 아직 ‘척박한 땅’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할 일이 정말 많아요. ‘가능성’이라고도 볼 수도 있고요.”
무더운 한여름,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개성 넘치는 한복을 입고 나타난 한복진흥센터 전민정 한복산업진흥팀장은 “사진 찍을 기회가 있으면 무조건 한복을 입고 간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한복이라는 전통문화 영역을 육성하고 산업적으로 개발하는 일을 하면서 한복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졌다고.
“한복진흥센터는 한복산업진흥팀과 문화기획팀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육성사업과 산업적인 영역을 동시에 다루죠. 문화기획팀은 일반 사람들이 한복을 입을 수 있도록 만드는 환경을 조성하거나 인식을 바꾸는 것을 축으로 삼고, 산업진흥팀은 한복을 소비재로서 더 다양한 디자인이 나올 수 있도록 하고, 유통적인 부분을 독려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이를 위해 한복의 날 페스티벌을 기획, 진행하고, 디자인 공모전, 브랜드 육성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죠.”
문화와 산업, 이 두 가지를 함께 다루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터다. 전민정 팀장은 이 질문에 “동떨어질 수 없는 분야이기도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 조율하는 게 힘들긴 하다”고 미소를 지었다. 자칫 자신의 의견이 한복진흥센터의 대표적인 입장으로 비칠까 걱정된다면서도 전 팀장은 “한복을 디자인 산업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과 문화예술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 사이의 입장차가 참 크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디자인, 패션 영역으로 볼 때에는 개인 디자이너의 디자인을 카피해선 안 된다고 하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론 한복이 하나의 문화이기 때문에 차용과 변형을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 있는 거죠. 한복이란 이미 하나의 양식이기 때문에 ‘소매의 각도가 날렵하냐, 좁냐’ 이런 식의 디테일한 부분으로 디자인이 달라질 수밖에 없어서 이런 입장 차이들이 생기곤 해요. 그 가운데에서 한복이란 전통을 상품화 시켜서 얼치기로 하다보면 자칫 ‘괴물 같은’ 게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많죠. 전통을 현대화하고 진흥시키는 입장으로서 충분히 고민할 만 하고 어려운 문제에요. 어떤 부분을 잘 가져왔는지, 혹시 본질에서 멀어진 건 아닌지 항상 고민을 거듭하죠.”
전민정 팀장은 “개인적으로는 전통을 재해석하는 시도는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양성’은 분명 존중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사람들이 선택해서 정착되면 그게 문화가 되고, 생활문화 요소가 어떻게 조합되는지가 그 세대의 ‘문화’를 결정짓는다. 한옥은 비록 불편한 요소가 있지만 현대인의 머릿속에 ‘운치 있는 삶’을 조명해주는 지표로 작용한다. 그건 ‘살아남은 것’이다. 전민정 팀장은 한복을 그렇게 ‘살아남도록’ 하고, 이어 이 세대의 ‘문화’가 되었으면 바라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한복에 대한 ‘인식의 전환’ ‘생활에서의 스며듦’이 생기면, 이를 문화적으로, 비즈니스적으로 다양하게 뻗어나갈 수 있게 될 거예요. 지금의 한복은 결혼식과 같은 아주 단편적인, ‘납작한’ 삶의 단면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과거의 한복은 일상복이어서 ‘다채로운’ 삶의 단면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단조로워진 한복의 ‘삶의 단면’들을 다시 만들어가려면 문화적으로 제안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희는 문화적이면서 산업적일 수밖에 없죠.”
한복이 ‘다채로운’ 삶의 단면을 지닐 수 있도록 만들려면 한복을 사람들에 더 친근하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것이 한복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로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는 일은 왕왕 발생한다. 어디까지가 한복이고, 얼마만큼 한복 요소를 따라가야 한복으로 칠 수 있는지 기준점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전 팀장은 “한복만의 평면구성을 최대한 가져가는 게 한복만의 ‘핵심기술’ 아닐까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한복은 천의 로스(Loss)를 최소화시키기 위해 어깨와 판을 잇는 진동을 따로 파지 않아요. 한복만이 갖고 있는 ‘평면구성’이죠. 합리적이고, 편안함을 가능하게 만드는 ‘핵심기술’이에요. 이게 바로 세계에 진출해도 손색없는, 그리고 한복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기술이죠. 이런 한복만의 ‘차별점’을 충분히 살려내고 끌어냈을 때 비로소 경쟁력이 생기지 않나 싶어요. 형태적으로만, 느낌적으로만 한복을 따라하다 보면 분명 금세 따라잡힐 거예요. 원천기술, 핵심기술이 중요하고, 이 부분이야말로 우리 한복이 지키고 보존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하죠. ‘핵심기술’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따지면서 한복의 ‘기준’을 잡으려고 노력해요.”
다행히 최근에는 한복의 미학을 지키되, 이를 재해석하고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에 뜻을 모으는 디자이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친숙한 한복을 만드는 첫 시도를 했던 황이슬 디자이너나 남성들의 한복인 철릭을 원피스로 재해석해 로맨틱한 원피스로 만들어낸 김영진 디자이너가 바로 이들이다. 한복을 ‘번안’하면서 젊은 세대들의 감각을 집어내는 시도들이 조금씩 늘어가는 추세다. 전 팀장은 “그런 끊임없는 시도가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짚었다.
“‘전통’이란 것은 ‘현대’와 비교해서 생기는 개념이라 어느 시점부터 ‘전통’이라 할 수 있는지 구분하기는 어려운 일이에요. 전통도 쪼개서 보면 다양한 얼굴이 있기 때문에 그 단어를 정의하기 어렵죠. 문화를 기획하는 사람들은 전통을 고정화된 것으로 보지 않고, 끊임없이 재해석해서 오늘날에 다시 살아있는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시도를 많이 해요. 하지만 이런 고정되지 않은 가치를 움직이면 안 되는, 확고부동한 것이라 인식하는 분들 입장에서는 ‘전통을 해체한다’고 느껴질 수 있는데, 그럴 때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죠. 대중 속에 어떻게 하면 한복이 스며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진흥’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끊임없이 다양한 것을 시도하고, 제시하고, 만약 그 시도가 잘 맞아 떨어져서 문화가 되면 의미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늘 어려워요.”
한복을 현 세대의 ‘문화’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각종 교육으로도 이어진다. 전통한복을 하는 장인들의 발표나 학계 연구를 알리는 일을 하기도 하고, 공정한 심사를 통해 이런 과정을 지원하는 일도 전 팀장이 속한 한복진흥센터의 몫이다. 전 팀장은 한복에 어울리는 마네킹 연구나 사라진 한복 천을 재현하는 연구를 지원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문화와 산업, 유통적인 트렌드를 교육이 필요한 곳에 직접 찾아가 알려주는 ‘교육 연계’도 이뤄지고 있다고.
“한복집이 모여 있는 광장시장의 주단 선생님들은 나이가 있으셔서 감각이 옛날에 멈춰있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디자인, 유통과 같은 분야의 트렌드를 제시하기도 하죠. 광장시장이 한복산업의 중심이 되는 곳인데, 아직까지 광장시장에 전폭적인 지원과 관심을 쏟지 못하는 게 아쉬워요. 앞으로 더 다양한 지원과 시도가 이뤄질 예정이에요. 전문가 양성 분야에도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요. 디자인 공모전을 통해 새로운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브랜드 론칭까지 이어지는 시스템을 지원하고 있죠. 해외에도 강사들을 파견하고 현지 대학과 연계해 한복 강의를 여는 일도 꾸준히 추진하고 있어요.”
전민정 팀장은 한복 코디네이터, 한복문화기획자, 한복비즈니스 사업가 양성 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전통한복을 하는 사람들은 평생 바느질과 한복만 접한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비즈니스나 전시 기획은 낯선 분야다. ‘한복’이라는 콘텐츠를 대중에 선보일 수 있는 ‘큐레이터’가 시급한 게 현 상황이다. 전 팀장은 “전문한복인과 대중 사이에 어떻게 다리를 놓을 것인가 하는 부분을 맡을 큐레이너와 코디네이터를 양성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한복인과 수용자 사이의 접점 역할을 해주는 ‘매개자’들이 필요한 게 현실이에요. 그런 분야를 개발하고 전문가들을 양성하는 것도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다행히 최근에는 전통문화를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젊은이들이 조금씩 생기고 있어요. 한복 대여시스템이 분명 한복을 더 친근하게 만든 긍정적인 역할을 한 건 있어요. 지금이 ‘전환점’이 아닐까 싶기도 하죠. 이런 문화들이 생기다보면 소비층이 한복 문화를 이끌어가고 적극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봐요. 충분히 긍정적인 상황이라고 보고 있죠.”
하지만 그렇게 ‘소비층이 적극적으로 다양하게 한복을 향유할 수 있는’ 시기가 오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그만큼의 노력도 필요할 터다. 그렇게 ‘노력’을 들여야 하는 한복을 ‘진흥’시켜야 하는 이유는 뭘까.
“민족복식을 지키고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살펴보면 그리 많지 않아요. 한복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편이죠.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국가적인 차원으로 한복은 충분히 진흥시키고 유지할 만한 문화적 자원이에요. 패션산업이나 소상공인 보호 맥락에서 봐도 한복은 충분히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죠. 전통적인 한복이 복원되고 유지되면 K패션의 희망이 될 수도 있고요.”
그렇다면 전민정 팀장에게 ‘한복’이란 어떤 것일까. 전 팀장은 곰곰이 생각하다 “가능성”이라고 답했다. 그는 “누군가가 한복을 가리켜 ‘골드오션’이라고 했다”며 그 단어를 듣는 순간 크게 감탄했다고 말했다. 전 팀장에게, 한복을 다시 한 세대가 향유할 수 있는 ‘문화’로 복원시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이들에게 한복이란 ‘전통문화’ 그 이상이었다.
“한복은 아직 척박한 땅이다. 다른 문화예술 분야와 비교를 해도 문화정책으로든, 인적으로든, 시스템으로든 아직 부족한 게 많죠. 할 게 너무나 많아요. 저는 오히려 이를 ‘가능성’이라 보고 있어요. 바닥에서부터 새롭게 셋팅하고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힘들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만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한복 문화에 관심을 기울여주셨으면 좋겠어요. 누군가는 이런 한복 문화를 ‘골드오션’이라고 표현했죠. 맞는 이야기에요. 충분히 앞으로 잘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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