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단편소설집(연출 이곤)’은 성공한 소설가이자 문예창작 교수 루스 스타이너와 그녀의 가르침을 받으며 작가로 성장해가는 제자 리사 모리슨, 두 여성이 만들어가는 이인극이다. 작품은 스승과 제자이면서 같은 여성이고 작가인 두 인물이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에 관해 이야기 한다. 제자가 아니라 제자의 성장에 따른 스승의 감정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선생님이란 단어의 선생(先生)은 ‘인생을 먼저 살아간 이’란 뜻이다. 인생은 끝없는 오르막길이 아니라 어느 순간 내려가야 하는 언덕길이다. 스승은 늙어가고 점점 세상의 스포트라이트에서 멀어져 간다. 그렇게 순리에 따라 스승은 정점에서 내려오고 제자는 올라설 때,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을 때 모든 사제관계는 끝이 난다.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관계는 ‘동료’라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으나 스승으로서 이를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극 초반에 관객들은 스승을 존경하다 못해 숭배하고 그녀의 마음에 들고자 전전긍긍하는 리사에게 공감한다. 그러나 극 말미에 이르면 6년이란 시간 속에서 제자가 커갈수록 작아질 수밖에 없는, 청출어람 하는 제자를 마냥 기쁘게만 받아들일 수 없는 루스의 인간적인 모습에 공감하게 된다.
둘의 갈등이 최고조로 이르는 지점은 리사가 스승 루스의 비극적인 첫사랑 이야기를 자신의 첫 장편소설집에 소재로 삼아 성공하면서이다. 루스는 “넌 나의 인생을 도둑질했어”라며 리사를 비난한다. “미리암은 선생님 같다면 미리암은 저이기도 해요.” 리사는 이건 자신의 이야기기도 하며, 자신은 작가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낸 것이라고 되받아 친다. 이 사건으로 둘은 갈라서게 된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관계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리사가 작가로서 자신의 문학론을 펼치며 스승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제는 동료라는 새로운 관계로 비틀거리며 조금 거친 첫걸음을 내딛게 된다.
극은 작가인 두 인물의 갈등을 통해 표절과 표현의 문제에 대해서도 질문한다. 사실 루스의 새 단편 속 주인공 에밀리 역시 리사를 닮아있기에 루스 자신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작가는 남의 인생을 훔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글의 소재는 작가의 삶에서 나오는 법이고 그 삶에는 작가와 관계 맺은 이들의 이야기가 직간접적으로 자연스레 녹아 들어있기 때문이다. 루스의 분노에도 리사에 해명에도 일리가 있다. 작가는 어디까지 쓸 수 있고, 언제 허락을 구해야 할까. 연극은 누구의 편을 들어주지도 답을 내리지도 않는다. 다만 생각하게 할 뿐이다.
국내 초연임에도 완성도가 높은 수작이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극작가 도널드 마굴리스의 작품답게 극의 뼈대인 대본이 탄탄하다. 마굴리스는 우디 앨런, 델모어 슈왈츠 등 당대 미국의 예술가들의 이야기로 단순할 수 있는 이인극 무대를 다채롭게 꾸미면서 동시에 현실감을 부여한다. 또 성격과 감정이 묻어나는 섬세한 대사로 두 인물을 생동감 넘치게 그려낸다. 두 시간 반이란 시간을 지루할 틈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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