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선의 기억을 따라 만난 사람들③] 조경숙 서울시무형문화재 11호 침선장 이수자
[MBN스타 유지혜 기자] “한복 하나만 보고 25년을 달려왔어요. 한복을 다음 세대에 어떻게 하면 잘 물려줄 수 있을까, 그 중에 제가 해야 할 일은 어떤 것일까. 늘 고민하고 있죠.”
푸른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채 환하게 미소를 짓는 조경숙 침선장 뒤에는 봄에나 필 법한 화사한 꽃이 수놓아져있는 한복이 펼쳐져 있었다. 그의 솜씨로 가득 차 있는 전시장에는 오색의 야생화들로 물들어 있는 한복과 직물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웅장하기도, 푸근하기도, 한편으로는 따스하기도 한 전시장은 그야말로 ‘진풍경’이었다.
조경숙 서울시무형문화재 11호 침선장 이수자는 지난 5월3일부터 오는 8월2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기획전시실에서 ‘제3회 야생화 특별전시회-우리 꽃, 우리 옷에 스미다’를 열었다. 실물 야생화가 수놓아진 의복, 옷고름, 댕기와 같은 전통복식과 공예품 등이 전시돼 있는 전시장을 둘러보며 조경숙 씨는 “나름대로의 도전이라 할 수 있는 전시였다”고 회상했다.
“물론 전통방식의 바느질이나 복식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했지만 관광객들이 보고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자 했어요. 복식을 하는 입장에서 예쁜 것보다 의미가 있어야 했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죠. 그래서 우리 직물에 직접 염색을 하거나 그림을 그려서 전시를 해봤어요. 매번 하는 전시와는 조금 다르게 해보고 싶었거든요. 바느질 기법을 위주로 전시하는 것보다는 일반 사람들의 시각을 고려해 전체적인 공간을 생각하고, 나름대로 방식을 달리해봤죠. 잘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보는 분들마다 좋다고 해주시니 기분은 좋아요.”
스무 살 남짓 할 때에 한복의 매력에 빠져 지금까지 바늘과 실만 바라보고 산 조경숙 씨. 지금은 전시회와 각종 강연 등으로 한복을 알리는 데에 앞장서고 있지만, 본래 그는 미술학도였다. 우연히 직물 염색을 하다가 호기심에 바늘을 잡았고, 그대로 한복의 길을 걷게 됐다. 조경숙 씨는 “비록 느리지만, 하나를 잡으면 파고들려 하는 게 있다”며 웃음을 지었다.
“스물두 살 때 한복을 처음 접했어요. 원래는 그림을 그렸는데 아는 분이 한복을 하셔서 우연히 염색 작업을 돕게 됐죠. 그렇게 하다가 조금씩 한복을 접하게 된 거예요. 종이에서 원단으로 바뀌었다고 해야 할까. 처음엔 한복을 전혀 몰랐죠. 그러다 복식에 조금씩 재미를 붙이면서, 더 알고 싶어졌어요. 하지만 제가 시작할 때에는 한복에 대한 정보를 가르쳐주는 기관이나 강의가 없었어요. 궁금한 게 있으면 복식을 하는 문화재 선생님들이나 장인들, 의상과 교수님을 찾아다녀야 했죠.”
그렇게 발로 뛰며 한복을 배우러 다녔던 조경숙 씨는 “처음엔 ‘한복만 알면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한복뿐 아니라 각종 의례 정차까지 모두 알아야만 ‘한국복식’을 제대로 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고. 그렇게 밤에 손 더듬어 길 찾듯, 한복을 배워가던 조경숙 씨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1호 박광훈 침선장을 만나 침선장 이수자가 됐다.
“제가 한복을 한다고 하니까 집안 어른들께서 ‘예전에 같은 동네에 살았던 한복 할머니한테 가보라’고 하셨어요. 알고 보니 그 분이 박광훈 선생님이셨죠. 교수님들이나 연구원 같은 전문가들을 가르치고 계셨던 선생님 아래에서 많이 배웠어요. 한복이나 침선뿐 아니라 전시 같은 것도 제가 혼자 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됐죠. ‘보는 눈’이 생겼다고 해도 될까요. ‘눈이 뜨이니까’ 하나 둘씩 재미가 늘어가더라고요.”
조경숙 씨는 “지금은 제가 배울 때보다는 배움터가 늘어났다”고 ‘후배’들이 부럽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과거를 기억하는 어르신들에 직접 물어보러 다니거나 몇 안 되는 관련 기관들을 찾아다녀야만 알 수 있었던 것들이 지금은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바로 볼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조경숙 씨는 “물론 접근성은 전보다 나아졌지만, 인터넷 정보라 해서 전부 맞는 건 아니다”라고 걱정했다.
“인터넷에만 쳐도 정보가 ‘주르륵’ 나오는 게 참 신기해요. 하지만 ‘전통’을 모르니 잘못된 정보인지 아닌지에 대한 분별력이 없을 거예요. 실제로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가 맞다고 생각했는데 몇 년 후에야 그게 잘못된 거라는 걸 알게 된 경우도 있었거든요. 한복복식에 대한 기본 매뉴얼 같은 게 있으면 좋죠. 하지만 어디까지를 전통으로 봐야 할지, 어떤 걸 ‘기준’ 삼아야 할지 등이 참 어려워요. 전체적으로 보면 ‘과도기’죠. 몇 년, 몇 개월 사이에 한복 시장이 엄청나게 달라지고 있거든요.”
이런 ‘과도기’ 사이에서 윗세대와 아래 세대를 이어주는 게 바로 조경숙 씨의 몫이다. 조경숙 씨는 오랫동안 바늘과 한복을 잡고 살았던 ‘어르신’들과 이제 막 한복에 눈뜨기 시작한 젊은이들 사이에 끼어있는 ‘중간 세대’이기 때문이다. 조경숙 씨는 “제 나이또래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이에 동의했다.
“침체된 한복시장을 살려낼 방법이 없을까 싶기도 하고, 전통을 고집하는 게 맞는가 싶기도 하고요. 요즘 궁궐이나 인사동 쪽에서 유행하는 한복 대여 시스템에서 제공하는 ‘모양만 한복’인 옷들을 보면서 ‘저걸 한복이라 해야 하나’ 싶기도 하면서도, 그 시스템 자체는 체험적인 면에서 괜찮다 싶기도 하고요. 전통은 무시하지 않는 쪽으로 하되, 신진 디자이너들의 획기적인 면은 배워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해요. 이런저런 고민들을 많이 하게 되죠.”
분명 ‘멈춰있으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전통’은 분명 지켜야 하는 부분이다. 조경숙 씨는 “전통을 알아야 내 디자인이 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 겉모습만 비슷하게 흉내내면 결국 ‘국적 없는’ 의상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 조경숙 씨는 전통한복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전통복식의 특이한 부분들을 따서 현대적으로 만들면 충분히 디자인으로서의 가치가 있죠. 하지만 지금은 겉모습만 흉내 내는 ‘국적 없는’ 의류들이 생겨나고 있는 게 현실이에요. 겉으로만 보고 따라 만드는 것과 심도 있게 한복을 알고, 이를 변형해서 디자인으로 발현시킨 것과는 분명히 다르죠. 그게 과연 ‘트렌드’인 걸까, 고민도 되고 아쉬움도 많아요. 좀 더 전통한복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깊이 공부했으면 싶단 생각도 들어요.”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깊이 없이 빠르게만 변해가는 문화들이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만큼 한복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조경숙 씨는 “관심을 가지고 한복을 본다는 게 정말 좋긴 좋아요”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조경숙 씨가 한복을 시작할 때에만 해도 주변에선 ‘왜 고생하려고 하냐’고 말렸지만, 최근엔 한복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가고 있다는 게 기쁘다고.
“저 때에만 해도 ‘왜 한복을 하냐’고 말리는 분위기가 역력했어요. 하지만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많이 느끼죠. 지금 막 한복을 시작하는 사람들과 그동안 한복을 해왔던 사람들이 서로 도와가면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요. 후배들에 해주고 싶은 말이요? 한복을 조금 더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기본 밑바탕을 탄탄하게 한다면 ‘폭발적인 발전’을 이끌 수 있다는 걸 꼭 말해주고 싶어요. 찾아다니면서 많이 보고, 배웠으면 좋겠고요.”
조경숙 씨는 30년을 ‘한복’ 하나만 보고 달려왔다. 어머니께 바늘을 물려받은 것도 아니고, 한복과 친숙한 환경에서 지내온 사람도 아니었지만, 그저 한복이 좋아서, ‘제대로 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고집스럽게 한복 한 길만 팠다. 조경숙 씨는 자신의 ‘원동력’으로 집념과 욕심을 꼽았다. 배울 수 있는 사람도, 기관도 많지 않은데 직접 발로 뛰면서 이를 찾아다녔던 건 그저 ‘더 완벽하게 알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제가 ‘커왔던’ 건 제대로 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른 건 몰라도 ‘정말 고급스럽게 만들어보고 싶다’ 이런 생각만 했거든요. 그래서 어르신들을 찾아다니고, 선생님들이나 교수님들을 쫓아다녔죠. 스터디를 하면서 나름대로 공부도 했고요. 하지만 아직은 저도 한복이 낯선 사람들에 한복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하는 전시는 어떤 게 있을까 같은 걸 공부하고 고민하고 있는 단계에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하는 조경숙 씨가 꿈꾸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조경숙 씨는 “전통은 전통대로 지키면서 시대를 쫓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복식을 공부하면서 전통혼례식도 알아가면서 지금은 전통혼례를 주관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며 “한복을 알리는 길은 참 여러 가지가 있다”며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설명했다.
“한복은 정말 다양해요. 그만큼 한복을 알리는 길도 정말 많다고 믿어요. 한복 말고도 한복이 관련된 전통문화들도 정말 많고요. 저는 학자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작품으로서 많은 분들에 한복을 보여드리고 알리는 사람이에요. 앞으로의 제가 이런 자부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고, 한복에 관심을 가진 분들도 마찬가지였으면 좋겠어요. 패션쇼나 전시를 통해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한복을 알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더 열심히 해야죠.”
마지막으로 조경숙 씨는 ‘융합’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윗세대가 일구어온 것들과 아래 세대들이 창조해가는 것들이 다 같이 어우러진다면 정말 대단한 게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욕심을 가지고 붙잡게 된다고 말하는 조경숙 씨의 눈빛이 반짝였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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