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선의 기억을 따라 만난 사람들④] 광장시장 운현주단 운영 중인 이현애 씨
[MBN스타 유지혜 기자] “한복 그만 해야지, 싶었던 순간도 분명 있었죠. 하지만 그럴 수 없었던 건 한복은 제겐 습관이었거든요. 이미 몸에 밴 습관이요. 그런 한복을 사람들에게 꼭 ‘한 번은 입어야 하는 우리 옷’이라는 걸 꼭 알려주고 싶어요.”
서울시 종로구 광장시장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이름이다. 각종 먹을거리와 접근성 때문에 관광객들에게 ‘꼭 들러야 하는 관광지’로 발돋움한지 오래다. 하지만 광장시장은 원래 ‘한복의 중심지’였다. 전국 ‘한복장이’들이 모여드는 곳이 광장시장이었고, 지금도 한 골목길만 넘으면 한복집이 쭉 펼쳐져 있는 진귀한 광경을 간직한 곳이 광장시장이다.
이 광장시장에서 2대 째 주단을 운영 중인 이현애 씨는 좁은 공간에도 질서정연하고도 빼곡하게 한복으로 채워진 주단으로 안내하며 “2대 째 운영 중인 건 아무 것도 아니다. 3대 째 하고 있는 분들도 굉장히 많고, 이 광장시장이 판자촌이었을 때부터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고 웃음을 지었다.
“광장시장은 지금은 먹을거리가 유명해져 관광객이 발 디딜 틈 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곳이지만, 전엔 전국에서 몰린 한복 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던 곳이에요. 지금도 결혼식이 많은 시기가 되면 많이들 찾아주시고, 간혹 관광객들도 한복을 구경하다가 가죠. 전처럼 도매 형식으로 판매하는 건 아니지만, 혼수 전문으로 하는 집들은 우리를 비롯해서 주변에 많아요. 저와 같은 주단집은 디자인과 판매를 맡아서 하고, 바지, 저고리 등을 전문으로 하시는 분들이 일을 받아서 작업을 해주시죠.”
옛날과 달리, 요즘에는 저고리, 치마 등 한복의 작업이 세분화 돼 있다고 말하던 이현애 씨는 “이런 작업을 맡아서 하시는 분들도 거의 60년 경력을 자랑하는 분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기술자들뿐 아니라 광장시장 주단집들을 누비며 일감을 받아 기술자들에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는 분들도 대부분 ‘한복’에 잔뼈가 굵은 ‘경력자’들이 많다고 했다. 그야말로 광장시장은 ‘과거가 살아 숨쉬는’ 공간이었다.
“모두가 열심히 일하지만, 손님은 전과 같지 않아요. 지금이 시즌인데도 손님이 많이 들어오는 편은 아니죠. 아직까지 좋은 경기는 아니에요. 대여 시스템이 익숙한 젊은 신랑 신부들은 입어보고 한복을 고르고 싶어 하는데, 저희는 주문을 한 후에 제작하는 시스템이라 미리 입어볼 수가 없으니 소비자 입장에선 선택폭이 좁다고 느껴질 수도 있죠. 단골들이야 ‘믿고 맡길 수 있다’고 하고, 우리만의 ‘희귀성’이 있기도 하지만 말이에요.”
이현애 씨는 더불어 ‘인터넷’이란 큰 복병을 만날 줄은 몰랐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는 “10년 전에 주변에서 인터넷을 통해 판매를 해보자고 했을 때 함께 해볼 걸 늘 후회한다”고 웃음을 터뜨렸다. 인터넷을 통해 싸게 사고, 대여를 해주는 시스템에 익숙한 젊은 소비자층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도 아쉽지만, 한복을 ‘빌려 입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식 또한 아쉬울 뿐이라고 이현애 씨는 강조했다.
“아쉬운 건 우리나라 신랑 신부들이 점점 한복을 ‘빌려 입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우리나라 전통의상인데, ‘어른’이 되는 결혼식에서 입는 한복을 대여한다는 건 아쉬운 일이죠. 일본인들은 성인식을 위한 기모노마저 따로 맞춰서 입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게 없잖아요. 대여도 그리 싼 편은 아닌데, ‘한복은 빌려 입어’라고 말하는 신랑 신부를 보면 ‘한복을 너무 간단하게만 생각하는 것 아닐까’ 아쉬울 때가 많죠. 그런 인식 때문에 인터넷 판매도 안하고, 입소문으로만 유지되는 우리 같은 작은 주단들은 힘이 많이 들어요.”
이현애 씨는 광장시장이 번화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점점 한복시장이 뒤로 밀려나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소비층의 변화를 걱정하지 않았던 과거의 안일함이 안타깝고, 소비층의 인식 변화가 야속하고, 점점 ‘빈대떡의 거리’가 되어가는 광장시장의 변화가 아쉬울 뿐이다. 이현애 씨는 이런 변화가 근 몇 년 새에 진행됐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젊은 사람들이 더 이상 한복집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차츰차츰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제자신이 광장시장에서 젊은 축에 끼는데도 소비자들의 변화를 관심 있게 지켜보지 않았던 게 아닌가, 안일했던 건 아닐까 싶고요. 전에는 광장시장이 고급스럽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각종 먹거리가 늘어나고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시장의 이미지 자체가 달라졌어요. 한복 거리는 점점 잊혀져가는 건 아닐까 슬며시 걱정되기도 하죠. 물론 ‘활상화’로서는 참 좋은 현상이에요. 하지만 한복을 찾으러 오는 사람들은 관광객들에 떠밀려 짜증을 내기 일쑤고, 관광객들에게 한복을 파는 건 하늘의 별따기죠.”
옛날과는 분명 달라졌다. 이현애 씨는 “할머니께서 주단을 하셨을 때에는 이만한 상자에다가 돈을 담으면 차고 넘쳐서 손으로 꾹 눌러야 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새벽까지 장사할 때도 허다했던 광장시장은 이제 오후 9시만 넘어도 한복 거리는 어둠이 내린다. ‘과거의 영광’을 듣고 보고 자란 이현애 씨는 지금의 ‘어려움’이 씁쓸하기만 하다.
“할머니께서 운영하실 때만 해도 정말 장사가 잘 됐고요, 새벽 세시 넘어서까지 운영을 해야할 정도로 바빴대요. 그 때에는 칠순 잔치와 같은 각종 가족 행사도 많았고, 가족의 단위도 달랐죠. 한 번 하면 벌수가 많았어요. 그 때와 비교할 순 없지만 IMF 전에도 확실히 지금보다는 장사가 됐죠. 매일 돈을 벌었으니까요. 하지만 경기가 안 좋아지고, 사람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한복은 사치’라는 인식이 강해졌어요. 특별한 날에만 입으니까 그만큼 안 써도 된다는 게 생긴 거죠.”
20대에 시작해서 25년을 넘게 광장시장을 지켜온 이현애 씨는 이 ‘과도기’를 눈으로 지켜봤다. 그가 처음으로 주단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동태 궤짝에도 돈이 차고 넘치는’ 할머니의 사업 수완을 보고 자란 탓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비전을 찾지 못한 제 탓이 크기도 하다”며 자책하는 말을 남겼다.
“물론 상황적인 변화들도 많았죠. 그에 따른 인식의 변화가 광장시장의 침체기의 결정적인 요인이라 생각하고요. 하지만 비전을 못 찾은 건 제 탓이기도 해요. 대가족에서 소가족으로 줄었고, ‘대여가 나왔어?’라고 생각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 시스템이 대중적이 되어버렸고요. 개량한복이 나왔을 때에는 ‘누가 저런 걸 입고 다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폭발적으로 유행하기도 했죠. 시대의 변화라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 한복도, 업계도 많이 변했는데, 그 변화에 제가 발을 못 맞췄어요. 아쉽죠.”
이현애 씨는 인터넷 활용을 제때 하지 못한 게 아쉬운 듯 했다. 침체된 한복시장에서 살아남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현애 씨는 “전엔 한복 하는 사람들이 딸에게 사업을 물려주고 싶어 했다. 꽤나 괜찮은 사업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럼에도 이현애 씨는 점점 체계적이고 투명해지는 사업 시스템, 한복을 판매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다각도로 바라보고 방법을 찾아내면 ‘가능성’은 분명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터넷을 활용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원자재 가격은 올라가고, 수공 가격도 점점 올라가는 이 시점에서 만약 인터넷 판매를 한다고 해도 그 가격대를 맞출 수 있을까 스스로에 묻는다면? 자신 없어요. 하지만 다양한 방법을 찾아낸다면 승산이 없는 것도 아니라 생각해요. 전엔 주먹구구 스타일의 사업구조였지만, 지금은 많이 체계적이고 투명해져가고 있고요. 광장시장 내에서도 다양한 사업 방책을 강구하는 집도 생겨나고 있어요. 전문성을 갖추고 다양한 시선을 가진다면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죠.”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젊은 사람들이 한복을 입고 SNS에 올리는 게 유행을 타거나 한복을 빌려 입고 인사동을 거니는 현상 자체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이현애 씨는 말했다. “그렇게라도 한복을 느꼈으면 좋겠다”며 이현애 씨는 한복을 접하는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 지 세월이 지날수록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한복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최근 젊은 사람들이 한복에 조금은 가까워지지 않았나 희망적이기도 하고요. 동명여자고등학교는 매해 한복졸업식을 해요. 그래서 고등학생들이 엄마 손 붙잡고 광장시장을 찾아요. 이제 그 아이들은 고름을 맬 줄 알고, 한복을 더 ‘가까이’ 생각할 수 있게 되죠. 그렇게 계기가 만들어지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광장시장 내에서도 ‘한복입는 날’을 정하기도 했는데, 밖으로 전파가 되지 않아서 아쉬운 시도였죠. 꾸준히 이런 ‘한복을 접할 계기’가 생겨나야 한다고 봐요.”
이현애 씨는 “분명 한복을 접고 싶을 때도 있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점점 어려워지는 환경에 수차례 마음 속에서 갈등을 느꼈다고. “그만둬버릴까 싶다가도, 새로운 걸 해야 한다는 두려움도 컸고, 오래 해왔던 걸 그만두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그럴 때마다 이현애 씨를 일으킨 건 그를 믿고 한복을 맡기는 오래된 단골 고객들이었다.
“오래된 단골들은 결혼을 앞둔 딸을 데리고 와서 ‘선생님이 알아서 해주실 거야’라며 제게 모든 걸 맡겨요. 그럼 저는 그 마음이 또 고마워서 단골손님들이 필요할 때 그냥 꺼내서 딱 입기만 하면 될 정도로 다림질까지 싹 해서 드리죠. 그러면 다음 날에 손님들이 한복 입고 찍은 사진 보내주면서 ‘정말 예뻤어요’라고 인사를 해요. 제가 인터넷을 못하는데 손님들이 알아서 블로그 같은 곳에 저희 집을 올려주기도 하고요. 그런 걸 보면 정말 뿌듯하죠. 그런 고객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제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라고 했던가. 이현애 씨는 한복업계의 요동치는 격동기를 뚫고 지금까지 한복의 중심지라 불리는 광장시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 이현애 씨에게 마지막 남은 소망이 무엇인지 물었다. 이현애 씨는 “한복을 어떤 계기이든 꼭 입어야 하는 우리의 옷이라는 걸 홍보하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말했다.
“한복을 ‘왜 입어야 해’가 아니라 ‘당연히 입어야지’라고 말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한복을 꼭 입어야 하는 옷으로 인식될 수 있는 귀중한 자리가 있다면 꼭 힘을 보태고 싶고요. 한복은 제게 습관이에요. 몸에 밴 습관. 그런 한복을 정말 제대로 하는, 제대로 된 ‘한복인’이 되고 싶어요. 정말 한복을 좋아하는 분들에겐 최선을 다 했어요. ‘그 집 가면 한복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제대로 된 한복을 주는 집이니까.’ 그 말을 듣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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