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소비의 중심은 패밀리 레스토랑과 놀이 공원으로 대표되는 ‘패밀리 소비’였다. 엄청난 인구를 자랑하는 단카이 세대(1947~49년에 태어난 1차 베이비붐 세대)가 1960년대 후반 청년 문화를 탄생시켰다. 패션잡지 ‘CanCam’과 쇼핑몰 ‘시부야 109’가 상징하는 청년층이 소비의 중심. 두명의 자녀들을 기르는 4인 표준 가구를 형성하며 소비 트렌드를 이끌었다.
시대는 급속도로 변했다. 일본에서 20세 이상 성인인구의 절반 이상은 이미 50세 이상이 차지한다. 2014년 일본 인구 1억 2713만 명 중 성인인구는 1억 481만 명. 50대 이상은 5700만 명에 달한다. 저자는 젊은이 중심의 일본이 온전하게 어른 중심의 사회로 이동했다고 진단한다.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난다. 50대는 가정에서 사회에서 언제나 조연에 불과했지만, 이들부터 위치가 변했다. 자녀는 독립해 가족을 떠나고, 육아에서도 해방되면서 시간과 돈이 모두 넉넉한 새로운 시니어가 탄생했다.
일본의 인기 여행상품으로 JR규슈의 ‘세븐스타 in 규슈’가 떠올랐다. 규슈일대를 여행하는 고급 관광 침대 열차로 1박 2일 코스의 가격이 25만~53만엔에 달한다. 이 초고가 여행 상품의 판매 경쟁률은 20대1을 넘는다. 중노년 라이더의 복귀로 제3의 모터사이클 전성시대도 열렸다. 저자는 “현재의 70대 이상과 단카이 세대를 경계로 하는 60대 이하는 서로 인종이 다르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차이가 크며, 그 차이가 고령 사회 전체를 크게 바꾸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 책은 ‘50+세대’(50대 이상) 라는 말을 통해 액티브 시니어 세대를 설명한다. 일본은 자녀가 어른이 되어도 집을 떠나지 않거나 근처에 사는 경우가 많다. 어머니와 딸이 사이 좋은 친구 사이가 되면서 ‘모녀 소비’가 10년 사이 왕성해졌다. ‘겨울 연가’의 인기가 폭발한 뒤 K팝의 정보를 딸에게서 얻은 50~60대 여성 사이에서 동방신기의 팬이 증가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아이돌임에도 SMAP와 아라시의 인기가 오래 지속되는 이유는 모녀가 함께 그들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SMAP의 콘서트에는 60~70%의 팬이 40대 이상의 여성이다. 액티브 시니어의 소비는 이처럼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선도한다.
여성이 은퇴 후 자녀와 동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데 비해 남성들은 타인과 쉽게 친해지지 못한다. 퇴직 후 남성들은 이제 전화 걸 상대가 없어졌음을 깨닫고 동창들과 만나게 된다. 남성의 소비는 그 결과 동창생과의 평일 골프와 모터사이클 투어링 등으로 집중된다. 2014년 일본의 골프장 매출이 수년만에 증가한 건, 단카이 세대의 평일 골프 덕분이었다.
50+ 세대의 특징은 오랫동안 소비자로 살아온 ‘현명한 소비자’라는 것. 쓸데없는 것엔 단돈 1엔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엄청난 고가의 상품이 ‘염가’에 나오거나 특별한 소비 대상에는 마음을 움직인다. 2014년 4월 폴 매카트니 무도관 콘서트의 아레나 좌석은 가격이 10만 엔에 달했지만 표가 동났다. 비즈니스의 기회는 이들의 선택적 소비를 공략하는 데 있다. 한류 열풍, 초기의 평면 TV, 고급 DSLR 카메라, 프리미엄 맥주, 10만 엔에 달하는 고급 전기밥솥, 안티에이징 화장품 등이 성공사례다. 고령자들이 가난하다는 것도 편견이다. 전체 세대의 평균 소득이 205만 엔인 데 비해 50+ 세대의 평균은 192만 엔으로 큰 차이가 없다. 게다가 2015년 저축액은 전체 세대 평균이 1739만 엔임에도 65세 이상은 2377만 엔에 달한다.
시니어에 대한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게 중요하다. 건강이 불안요소 1위란 것에 주목해 대형 출판사는 시니어 전문지를 앞다퉈 간행했지만 대부분 폐간했다. 오히려 성공한 건 패션 잡지다. 시니어는 ‘시니어’라는 말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주말·성수기 소비에서 평일·비수기 소비로의 이동’. 은퇴 세대 특유의 현상이다. 재택 소비도 늘어난다. 일본에서는 편의점에서도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식사 배달 서비스도 활발하다 .이용자 대부분은 70~80대다. 홈쇼핑이 흥하고, 고급 레토르트나 고급 냉동 만두가 50~60대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린다.
고령자가 고령자를 돌보는 주거모델 대신 다세대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는 주거 모델을 제안한다. 육아 경험을 살려 맞벌이 가정의 방과후 아동 지도를 돕거나, 하교 안전 도우미 역할을 분담하고, 젊은이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등의 활동을 통해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자는 것. 사회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은 삶의 의욕으로 이어져 저수입·저자
[김슬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