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연을 날리며 길거리를 쏘다닌다. 부모는 가게 앞에서 물건을 구경중이고 이에 상인은 흥정을 멈출 줄 모른다. 그림 가운데 놓인 다리를 사람들이 분주히 오간다. 멈춰있는 그림이지만 활기가 넘친다. 도시의 번잡함과 풍요로움이 보기 좋다.
길이만 987m에 달하는 중국 1급 문화재 ‘청명상하도’다. 11세기말 12세기 초 번성했던 중국 수도 변경을 묘사한 그림에는 당시 백성들이 꿈꾸던 태평성대가 담겨 있다. 이런 상업 도시의 활발한 면모들을 담은 그림은 당대에 큰 인기를 모았다. 청대에 이르러서는 건륭제가 직접 소주를 그리라 주문해 ‘고소번화도’가 탄생했다. 1만 2000여명의 사람, 400여척의 배, 260개의 상점, 50 여개의 다리가 그려져 있는 12m에 이르는 대작이다. 3년에 걸쳐 제작한 청나라의 번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이영훈)이 5일 기획전시실에서 개막한 특별전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에서 랴오닝성박물관 소장의 이 두 유물을 동시에 볼 자리가 마련됐다. 오는 23일까지 단 19일만 진본을 공개한다.
18세기 조선 후기부터 1930년대까지 우리 미술을 도시 문화의 맥락에서 살펴본 이번 특별전에는 모두 204건 373점의 주요 작품들이 총출동했다. 전시는 4부로 △도시 경관 △도시 사람들 △취향과 미의식, 그리고 △근대의 도시로 이뤄졌다. 이영훈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미술이 그려낸 도시, 그리고 도시에서 꽃 피운 미술을 찾아보는 이번 특별전은 도시라는 공간이 미술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그리고 미술가들은 도시의 문화를 어떻게 바꿨는지, 그 흥미로운 과정을 따라가 보는 색다른 미술 감상의 기회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세상이 바뀌면 그 세상을 담아내는 미술도 바뀐다. 조선의 ‘태평성시도’와 일본의 ‘낙중낙외도’ 역시 동아시아 삼국의 사람들의 바뀐 이샹향을 보여준다. 유교적 이상 구현은 더이상 중요한 화두가 아니다. 풍부한 물자와 활력이 넘치는 도시 속 진기한 풍물을 감상하며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사회가 새로운 유토피아로 부상한다. 장인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조선 전기는 옛 선인, 고대 이상적인 전범이 되었던 성인의 나라를 꿈꿨다. 그러나 조선 후기가 되면 가치관이 바뀌어서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현상들과 상업 활동 등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그런 도시를 야심차게 건설하고자 했던 정조의 계획도시 화성의 전모가 드러난 ‘화성전도’도 최초 공개된다.
도시인들은 풍속화란 독특한 장르의 주인공이 됐다. 도시 문화의 신진 주도층인 중인과 서민들이었다. 사대부 문화와 공통되면서도 다른 문화인 여항(閭巷)과 중서민층이 사는 시정 골목 문화가 새로이 주목받았다. 이번 전시는 도시 사람들의 여가를 그린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화첩을 나란히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기도 하다. ‘혜원전신첩’, ‘단원 풍속도첩’ 두 작품은 모두 도시의 여가를 그렸지만 각기 다른 지점을 포착한다. 김홍도는 ‘씨름’ 등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서민의 건강한 놀이 문화를 그린다. 한편, 신윤복은 여가문화가 향락으로까지 치닫는, 내밀한 유흥을 담아낸다. 세련된 도시적 감각과 낭만이 돋보인다.
도시는 취향도 바꿔놓았다. 조선 하면 소박하고 고졸한 미의 백자를 떠올리기 쉽상이다. 이번 전시에는 화려한 채색자기 등 독특한 기법이 돋보이는 도자들이 즐비하다. 그런 취향변화가 돋보이는 대표적인 회화 소재는 ‘매화’다. 조희룡과 장승업 등이 즐겨 그린 ‘홍백매도’는 8폭 가까이 되는 화면에 양쪽으로 펼쳐진 가지에 핀 백매와 홍매가 감각적으로 뒤섞이며 흐드러진다. 장인아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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