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신에게 선택받은 몸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곱살이란 어린 내가 열병을 앓아 귀를 잃었겠는가. 어쨌든 나는 세상의 온갖 좋고 나쁜 소리와 단절된 적막의 세계로 유기되었다. 나는 소외된 나를 찾기 위해 한 가지 길을 택했다. 그것은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장애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예술혼을 불태운 운보 김기창(1913~2001)의 글이다. 운보의 삶과 예술을 보며 희망을 잃지 않은 작가가 있다. 서울 압구정동 청작화랑에서 개인전을 여는 조각가 신재환(43)이다. 그는 태어날 때 입은 신경 손상 탓에 한 살 때 청각 장애 판정을 받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운보의 인터뷰가 게재된 신문을 오려가지고 어머니에게 “운보 김기창 선생처럼 유명한 화가가 되겠다”고 했다. 같은 충북 청주 출신에 같은 장애를 가지고, 신앙도 가톨릭으로 같다는 공통점에 희망을 부여잡은 것이다.
스케치와 서양화를 배운 그가 조각의 길로 들어선 건 서울 압구정동 현대고 재학시절 우연히 찰흙으로 빚은 테라코타 작업이 선생님의 눈에 띄면서부터다.
그 뒤 상명대 조소과와 서울시립대 대학원을 거쳐, 시간강사 8년만에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예술가가 된 데는 화랑을 운영하는 어머니가 큰 역할을 했다. 전시가 열리는 청작화랑은 어머니 손성례 대표가 운영하는 화랑. 손 대표는 “장애를 가진 엄마들은 중간에 너무 힘드니까 일반학교 다니던 아이를 특수학교로 보낸다. 저는 아이를 초등학교 때부터 포기하지 않고 일반학교를 보내 아이들과 어울리게 했다. 지금까지 온 게 너무 고맙다”고 했다. 어머니의 도움도 컸지만 그의 따뜻하고 긍정적인 작품은 해외 아트페어에서도 인기다. 지금까지 70여회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그는 돌을 쪼아 둥지의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둥지’는 그의 주된 모티브. 대리석, 오닉스, 화강암, 흑요석 등 다루기 힘든 돌을 쪼아 둥지와 새를 빚는다. 둥지 안에는 아빠 새와 엄마 새, 아기 새가 다정한 눈길을 주고받는다. 2004년 결혼하고 딸을 얻은 뒤 더욱 서정적인 작업을 펼치고 있다.
귀는 들리지 않지만 상대의 입술 움직임과 얼굴 표정을 보며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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