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시여, 제게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생지옥 속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잘린 팔다리가 널려있고, 어제까지 농담을 주고받던 동료들의 머리통이 총에 맞아 박살난다. 거대한 절벽 위에서 펼쳐지는, 오직 화염과 죽음만이 가득한 지옥에서 주인공은 신을 찾는다. 그 순간 들려오는 다친 전우의 '살려달라'라는 신음소리. 그에게 그것은 신의 대답이었다.
22일 개봉하는 영화 '핵소 고지(Hacksaw Ridge)'는 2차대전 일본 오키나와 전투의 전쟁영웅 데스몬드 도스의 실화를 담았다. 독실한 재림파(기독교 한 분파) 신도였던 도스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자진 입대 후 무기 들기를 거부하고, 결국 총 없이 나간 전투에서 부상 당한 동료 75명의 목숨을 홀로 구하며 미국 군인에게 최고의 영예인 '명예의 훈장'을 받았다.
'브레이브 하트'(1993)로 유명한 멜 깁슨 감독이 10년만에 내놓은 영화다. 정의를 위해 목숨 거는 남성적 영웅의 서사와 실감나는 폭력 묘사 등 깁슨 고유의 스타일이 여전하다. 그의 우직한 연출은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신념의 힘으로 초월적 용기를 보인 한 인간의 위대함을 그려내는 데 적격이었다.
영화는 전쟁 트라우마로 망가진 아버지 밑에서 견뎌낸 도스의 불행한 유년시절, 아내와의 만남, 입대를 불허하는 군 당국과의 갈등 등이 여느 전기영화처럼 그려진 전반부와, 끔찍한 폭력이 끝없이 이어지는 전쟁터를 다큐멘터리처럼 묘사한 후반부로 극명히 나뉜다. 15세 관람가라는 사실이 때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폭력 묘사의 수위가 상당하다.
순수하지만 누구보다 강한 도스로 분한 앤드류 가필드의 호연이 볼 만 하다. 영화 말미에 나오는, 백발 노인
'핵소 고지'는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 등 6개 부문 후보로 올랐다. '브레이브 하트'로 아카데미상 2개를 거머쥔 멜 깁슨 감독의 두번째 '복덩이'가 될 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오신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