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6년 장 모르가 찍은 존 버거와 아내 베벌리(왼쪽), 1999년 장 모르가 찍은 생전의 존 버거(오른쪽). [사진출처 = 열화당] |
그 결과물이 반세기 동안의 친구였던 장 모르가 존 버거의 초상을 담은 사진집 '존 버거의 초상'이다. 1월 2일 세상을 떠난 그의 사진집과 마지막 산문집인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도 나란히 열화당에서 나왔다.
미술평론가로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해 점차 활동을 넓혀간 버거는 중년 이후 프랑스 동부 알프스 산록으로 거처를 옮긴 뒤 농사일과 글쓰기를 병행했다. 장 모르가 찍은 149장의 강렬한 흑백 사진에는 그 인생의 후반부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건초를 나르거나 곡괭이를 들고 감자밭에서 땀을 흘리는 삶. 그리고 아내와 자녀들과 때로는 손녀와 함께 노동을 하고 주민들과 어울리고, 때로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 쓰는 삶이다. 모르에 따르면 버거는 건초를 쌓는 일과 책 만드는 일 모두를 한결같은 태도로 대했다. "외딴 지역 사람들이 겪는 생존의 문제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가고자 결심했"던 것이다.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에 실린 11편의 짧은 글은 드로잉과 예술에 관한 사유, 알베르 카뮈부터 전세계적 자본주의에 관한 사려 깊은 생각이 들어있다. '자화상'이라는 글에서는 작가로서의 삶에 대해 돌아본다. 팔십 년간 글을 써온 그는 "글쓰기 활동은 내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 활동 덕분에 나는 의미를 찾고, 계속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당대의 문필가는 이렇게 겸
"오랜 시간 동안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한 것은 무언가가 말해질 필요가 있다는 직감이었다. 말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아예 말해지지 않을 위험이 있는 것들. 나는 스스로 중요한, 혹은 전문적인 작가라기보다는 그저 빈곳을 메우는 사람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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