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무중. 흐릿한 안개가 5리나 끼어있다는 의미로, 어떤 일에 대한 향방을 가늠하기 어려울 때 쓰는 말이다. 이 고사성어는 뚜렷한 승자도, 패자도 보이지 않는 올 봄 영화시장에 어울리는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엎치락 뒤치락 샅바싸움 중인 한국영화와 외화들을 보면 정말이지 그렇다. 3월 초중순께 치러진 1차전은 일단 외화 압승. 그러나 한국영화 '프리즌' '보통사람' 등이 가세하자 판세는 뒤집어졌고, 마지막주가 되자 전세는 또 다시 역전되는 조짐이다. 이름하야 극장가 춘추전국시대랄까.
◆출발은 외화 압승
외화 삼각편대는 완강했다. 올 봄 1라운드는 외화가 압도적인 강세였다. '로건'(1일 개봉)에서 출발해, '콩: 스컬 아일랜드'(8일 개봉·이하 '콩'), '미녀와 야수'(16일 개봉)까지 할리우드 대작들이 주단위로 개봉하면서 한국영화는 제대로 기 한 번 펴지 못했다.
그럴 만도 했다. 다중인격자의 소름끼치는 연기를 선보인 제임스 멕어보이 주연의 '23아이덴티티'(2월 22일)가 흥행몰이를 한 데 이어 3월 첫 영화로 '로건'이 개봉했다. 극중 노쇠한 울버린의 장엄한 장례식에 수많은 관객들이 애도를 표했고, 뒤이어 개봉한 '콩'이 무지막지한 크기의 괴수들을 앞세워 '스케일'(?)로 인기를 모았다. 동시기 개봉한 한국영화 '해빙' '눈길' 등은 이들의 적수가 못됐다.
이러한 분위기는 '미녀와 야수'의 개봉으로 더욱 고착화됐다. 평일인 16일 개봉과 동시에 16만여 관객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면서, '미녀와 야수'(1위), '콩'(2위), '로건'(3위)의 3강 구도가 뚜렷해졌다. 16일 개봉한 한국영화 '비정규직 특수요원' 등은 완성도와 재미 양면에서 현격히 뒤쳐졌고, 관객의 외면을 오롯이 감내해야 했다.
◆한국영화 한판 뒤집기
잠시 한국영화의 역전 분위기가 일게 된 건 '프리즌' '보통사람'이 22·23일 나란히 개봉하면서부터다. 한석규 주연의 범죄물 '프리즌'이 22일 전야개봉으로 2위를 차지하면서 '콩'과 '로건'을 한 단계씩 밀어냈다. 그리고 이튿날 손현주 주연의 '보통사람'이 가세하자 박스오피스 순위는 '프리즌'(1위), '미녀와 야수'(2위), '보통사람'(3위), '히든 피겨스'(4위) 순으로 뒤바꼈다. 한국영화의 1위 등극은 거의 한달만이었다.
하지만 웰메이드 가족영화로서 '미녀와 야수'의 저력은 만만찮았다. 결국 '프리즌'의 정상 탈환은 3일 천하에도 못 미쳤다. 25일 토요일 '미녀와 야수'가 1일 관객 45만여명을 싹쓸이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탈환했다. 같은날 프리즌은 40만명을 모아 2위로 밀려났다. '미녀와 야수'가 온 가족이 편하게 즐길 만한 전체 관람 영화라는 점, '프리즌'은 잔인한 범죄물에 청소년 관람불가용이라는 점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26일 영화진흥위원회 실시간 예매율 집계에 의하면 '미녀와 야수'(44.3%), '프리즌'(25.3%), '히든 피겨스'(5.4%), '보통사람'(5.1%) 순으로, '미녀와 야수'가 가장 높다. 하지만 주말 이후 '프리즌'의 뒤집기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극장가는 오리무중으로
일단 한주가량 '프리즌'과 '미녀와 야수'의 정상 다툼이 지속될 듯하다. 어느 하나 뚜렷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국시대와도 같은 분위기도 또한 이어지겠다. 오는 30일 스칼릿 조핸슨 주연의 '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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