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의 계절이다. 영화 흥행에는 시의성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5월 대선과 연관될 만한 한국영화 두 편이 때마침 개봉을 예고해놨다. 26일 개봉하는 '임금님의 사건 수첩'(배급 CJ엔터테인먼트)과 '특별시민'(배급 쇼박스)이다. 음해세력을 타파하는 조선 임금 예종(이선균)과 3선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정치9단 변종구(최민식)의 이야기다. 두 인물에게서 한국영화가 그려내는 리더의 초상(肖像)을 그려봤다.
이런 리더가 한국사회에 나와 준다면 얼마나 좋으랴. 한 마디로 축약하면 '팔방미남'(八方美男) 쯤 되겠다. 인품이면 인품, 학식이면 학식, 무예면 무예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다. 그렇다고 부러 내세우지 않으며, 지나친 격식마저 지양한다. 신하와의 소통도 이만하면 합격점.
영화 도입부, 다소 어수룩한 신입 사관(史官) 이서(안재홍)가 임금 예종(역사 속 예종과는 무관한 상상의 인물)을 알현한다. 첫 신에서 자신있게 연습한 대로 우렁차게 "저~언하!"하고 머리를 조아리니 돌아오는 대답. "어허이, 요새 누가 이런 구식을 가르치나! 하지마!" 때때로 동네형 같기도, 군대 선임 같기도 한 예종은 뭐만 물으면 "예?"하고 되묻는, 이 어린 사관과 형님 아우처럼 지낼 줄 아는 '열린 남자'다. 마술 편자희(騙子戱)까지 선보이며 이서를 놀래키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개구쟁이기도 하다.
예종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구중궁궐에 틀어박혀 살지 않는다. 권력 암투의 복판에서 간신배들의 모략에 휘둘리는 법도 없다. 음해세력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민심을 뒤흔드는 소문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 저잣거리로 잠행(潛行)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신하들에게 궂은 일을 떠맡기지 않고, 시신의 검안(檢案)까지 참여해 사망 원인을 손수 밝힌다. 영화 말미 검술신에서 보여주는 카리스마까지 더한다면 리더로서 만점.
하지만 어디까지나 판타지적 인물일 뿐이다. 예종이 현실과 유리된 캐릭터에 가깝다면, '특별시민'의 변종구(최민식)는 현실 정치판의 리얼리티가 충실히 구현된 인물. 영화는 서울시장 변종구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과, 선거전이라는 빅 이벤트를 통해 환기되는 인간의 끈질긴 권력욕을 탐구한다.
어찌보면 변종구보다 변종구의 '권력 의지'가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여겨진다. 서울시장 3선을 발판으로 대권까지 노리겠다는, 제 욕망에 매우 충실한 변종구는 권자에 오르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더 카드'의 프랭크 언더우드가 살짝 오버랩되기도 한다.
그러나 절대악(惡)까진 아니다. 정치 9단답게 쇼맨십에 능하고 기지와 노련함이 일품이지만, 구수한 사람 냄새까지 스며 있다. 그만큼 중층적인 인물이기에 한 가지 색으로 환원하기 어렵다. 한 마디로 카멜레온 같달까. 그간 한국영화들이 답습해온 비루하고 든적스러운 욕망의 응결체로서, 한국사회를
'특별시민'을 연출한 박인제 감독은 "그간 한국영화들이 정치인들을 장르적으로 과장되게 비추었다면 변종구는 행정가로서, 정치가로서 조금 더 현실에 발 붙인 모습으로 그려내고 싶었다"고 했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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