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롱도시락 |
피톤치드가 발산된다는 과학적 근거를 모르는 이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코끝을 벌름 거리며 편백의 독특한 향을 마신다. 비가 내린 뒤라 물을 한껏 머금은 편백나무 특유의 알싸한 향에 코부터 머리까지 맑아진다.
서귀포 중심지에서 차를 타고 한라산 방향으로 15분 갔을까. 시오름 중턱에 재작년 문을 연 '치유의 숲'은 평균 수명이 60년 이상인 편백 나무들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아직은 관광객의 발길이 덜 든 것은 물론 도민들에게도 생소한 곳이다. 편백숲을 배경으로 한 이곳에서 지난달 26일 특별한 콘서트가 열렸다. 이름하여 '쓰담쓰담' 숲속 힐링 콘서트다. 문화체육관광부 '문화가 있는 날'의 지역 특화 프로그램으로 선정돼 앞으로 9월까지 매달 마지막 수요일 치유의숲에서 열린다.
문화가 있는 날'은 일상에서 문화를 보다 더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도록 문체부가 주최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중 '지역특화프로그램'은 지역 고유의 특색을 알릴 수 있도록 지역문화단체가 직접 기획한다.
악단 '자작나무숲'이 주관하고 호근치유마을이 후원한 이날 공연은 '고향의 봄'을 주제로 진행됐다. 먼저 편안한 음색의 클라리넷이 홍난파의 가곡 '고향의 봄'을 독주로 시작했다. 이어 바이올린과 첼로 등 다양한 악기가 돌아가며 연주했다. 별다른 음향장치 없이도 음악은 바람을 타고 나무와 나무 사이로 흘렀다. 이날 모인 관객 300여 명은 벤치와 돗자리에 누운 채 미리 나눠준 안대를 썼다.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두고 명상에 잠기는 시간. 묵은 피로가 쓰윽 내려간다.
이어 관현악 협주단이 멘델스존의 '봄의 노래' 베토벤의 '미뉴에트', 쇼스타코비치 '더 세컨드 왈츠'를 차례로 연주했다. 2부는 우상임 자작나무숲 대표의 삶이 녹아든 '아코디언 에세이 코너'. 경쾌하면서도 애잔한 아코디언 소리에 청중들은 '그 때 그사람' 등 익숙한 가요들을 따라 불렀다. 클래식 뿐 아니라 다양한 음악으로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꾸며졌다. 어머니와 함께 서울에서 온 오승연(25)씨는 "공항에서 팻말을 보고 우연히 오게 됐다. 급하게 별 기대 없이 왔는데 촉촉한 숲에 누워 음악을 들으니 여정의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서귀포시에 살고 있는 심기중(75)씨는 "근처에 이렇게 조용하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장소가 있는 줄 몰랐다. 풍광 자체가 예술"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치유의숲은 난대림, 온대림, 한대림 등 다양한 식생이 고루 분포해있다. 이를 따라 다양한 산책로도 마련돼 있다. 제주 방언으로 이름 붙여진 '가베또롱(가뿐하게) 돌담길', '놀멍쉬멍(놀며쉬며) 치유의 숲길', '벤조롱(멋진) 치유숲길' 등 특색 있는 코스를 따라 걸어보자. 숲 내부에는 건강측정실과 한방진료실 등 힐링센터도 있다.
미리 예약하면 즐길 수 있는 '차롱도시락'도 별미다. '차롱'은 과거 냉장고가 없던 시절 사용하던 가재도구다. 대나무를 엮어 만든 조그마한 바구니다. 이 '차롱'에 한라산 표고버섯, 빙떡, 적(꼬치), 톳 주먹밥, 곰취쌈밥, 호박잎주먹밥이 곱게 놓인 도시락(가격 1만5000원)은 호근마을주민들이 신선한 식재료로 손수 만든 것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마을 주민들이 직접 쑨 영양표고버섯죽이 무료로 제공된다. 한 숟갈만 떠 먹어도 서늘한 몸에 따뜻한 온기가 돈다.
'쓰담쓰담' 힐링 콘서트는 매달 주제 음악을 달리해 진행된다. 5월(24일)에는
[서귀포 =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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