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는 배우가 한창 노래 중인데 객석은 비명지르기에 바쁘다. 뮤지컬'록키호러쇼' 주인공이 비를 피하는 장면에선, 객석에도 비가 내린다. 스프링클러로 객석 곳곳을 적시는 팬텀(앙상블 배우)들을 피해 미리 준비해온 관객들은 신문지를 뒤집어쓰고 미처 준비 못한 이들은 가방을 들어 피하기 바쁘다. 뮤지컬 '이블데드'의 관객이라면 우산으로는 부족하다. 우비가 필수다. 좀비들이 관객을 향해 끊임없이 피를 내뿜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시체관극'이란 독특한 에티켓이 있다. 죽은 사람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타인의 관람을 방해하지 않고 오로지 무대에만 집중하는 공연관람방식을 뜻한다. B급 정서로 무장한 뮤지컬이 이런 '시체관극'에 도전장을 던졌다. 침묵 대신 비명, 박수와 웃음에 춤까지 관객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게 한다. 9년만에 대학로에 동시 상륙한 뮤지컬 '록키호러쇼'와 '이블데드' 얘기다.
애초, B급이란 적은 예산을 들인 영화나 A급 영화와 견주어 질적으로 떨어지는 영화를 경멸적으로 지칭하는 용어였다. 그러나 주류문화에서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는 마니아적 요소와 대중문화의 감각을 흡수하며 B급은 자유로운 창작과 자본에 종속되지 않는 독립 정신을 대표하게 됐다. 영화 '록키호러픽쳐쇼'와 '이블데드'는 각각 '컬트'와 '좀비'를 다루는 B급 영화의 대표작들로 손꼽힌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뮤지컬 역시 이런 B급 정신으로 충만하다. 여행 중 폭풍우를 만나 낯선 저택에 머물게 된 젊은 연인 자넷과 브래드는 낯선 저택에서 인조 인간을 개발하는 과학자를 만나고 삼류 영화에 나올 법한 복장 도착자들, 성도착자들과 마구 뒤섞여 광란의 파티를 벌이게 된다.
이 파티에 손님으로 함께 초대받은 관객들은 '콜백'(call back·극의 특정 장면에 대한 객석의 반응)으로 작품에 참여하게 된다. 주인공이 어둠 속에서 불빛을 찾아 헤맬 때 관객 역시 팬텀과 함께 손전등을 흔들고, 슬픔에 빠진 브래드를 위로하기 위해 무대 위로 준비해 온 빵을 던진다. 절정은 '타임 워프 댄스'. "왼쪽으로 점프, 오른쪽으로 스탭…엉덩이를 돌리면 정말 미쳐버리지~."관객들은 배우들과 신나는 로큰롤 음악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며 작품의 재미를 온몸으로 느낀다. 공연장에는 풍성한 검정드레스, 딱붙는 가죽바지, 뾰족한 블랙하이힐 등 배우들처럼 옷을 갖춰입고 찾는 관객들도 많아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무의미하다. 마이클리, 송용진, 조형균이 도덕 관념 없는 트렌섹슈얼 행성에서 온 프랑큰 퍼트 박사로 파격적인 변신을 꾀한다.
뮤지컬 '이블데드'는 영화 '스파이더맨'으로 유명한 샘 레이미 감독이 만든 동명의 스플래터 좀비 영화 이블데드가 원작이다. 1983년 1편을 시작으로 1987년, 1993년에 각각 2, 3편을 개봉한 나름 '족보 있는' 공포물 시리즈이다. 이 중 1편과 2편을 합쳐 뮤지컬로 만들었다. 방학을 맞아 여행을 떠난 다섯 명의 대학생들이 우연히 들리게 된 오두막에서 만나게 되는 좀비들과의 기상천외한 사건을 다룬다.
'스플래터'라는 장르는 시체 훼손과 유혈이 낭자하는 장면이 많은 영화를 뜻한다. 이에 걸맞게 뮤지컬 무대도 선혈이 낭자한 살육의 향연을 펼쳐낸다. 초연당시 객석까지 피가 쏟아지게 하는 등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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