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고쳐먹게 된 데에는 주변 반응이 한몫했다. 최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그는 "거절을 하고서도 그 거절에 힘을 실어주는 반응들에 점점 화가 났다"고 했다. "해보라고,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는 목소리를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으니 화가 나고 언성이 높아지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군요."
그렇게 출연을 결정했고, 이 영화에 도착했다. '좌파 배우' '빨갱이'라는 저속한 낙인에 대한 두려움은 애초에 없었다. "저는 좌파도 아닐 뿐더러 좌우 개념에 대해서도 잘 몰라요. 정치적인 측면에서 작품을 선택해 본 적이 없어요. 배우로서 순수하게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을 선택했을 뿐이죠."
지난해 송강호는 '밀정'에서 의열단을 돕는 일본 경찰 이정출을 연기했다. 이번에는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의 광주 잠입 취재를 돕는 택시운전사 김만섭이다. 광주 계엄령이 선포되고 하루 뒤인 1980년 5월 19일. 사글세 넉달 치인 10만원을 준다는 말에 혹한 그는 힌츠페터를 태워 광주로 향한다.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의 참상은 모른 채로.
촬영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고 했다. 코끝이 시큰해지며 울컥거리기를 여러번. 잠시 허공을 바라보던 송강호는 금남로 학살 장면과 함께 다음 장면을 상기했다. "택시가 처음 광주에 도착했을 때, 한 광주 시민이 해맑게 웃으며 다가와요. 시장하실 텐데 이것좀 먹어보라며, 차창 안으로 주먹밥을 건네줘요. 이 장면이 제겐 가장 슬픈 장면이예요."
그런 그와 한츠페터와의 첫 만남은 각별했다. 힌츠펜터가 주연으로 출연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2002)를 그는 자신의 베스트 영화로 꼽는다. 나치의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해 유대인을 돕는 독일 장교 역이었다. 힌츠펜터 역시 송강호가 출연한 '박쥐'와 '밀양'을 그간 본 한국 영화중 최고로 여긴다. 한국의 국민배우가 바라본 독일 국민배우는 어땠을까.
"촬영현장에선 절제된 연기를 하는데, 실제로는 잘 울고 감성적이었어요. 박찬욱 감독이 현장에 방문해 저녁식사를 같이 하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올드보이' 상 받기 전, 칸에서 폴란스키 감독을 뵈어 매우 감동적이었다고요. 그걸 가만히 듣더니 눈물을 흘리더군요. 촬영기간 중간에 토마스가 생일이었는데, 식사를 대접하니 또 울고요."
영화를 보면 만섭의 상황에 자신을 가만히 대입해 보게 된다. 만섭처럼 잠시 마음이 흔들리다 이내 각성하고, 유턴해 광주 시민을 도울 지, 아니면 서울로 그냥 가버릴 지를. 송강호는 "그런 생각 안 해본 건 아닌데"라며 말끝을 흐리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음... 도망을 갔을 것도 같은데. 순천에서 유턴을 했을 지 말지는...유턴 했겠죠.(웃음)"
어쩌면 '택시운전사'는 '80년 광주'를 바라보는 시선이 재정립될 계기가 돼 줄
[김시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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