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제공 = 도서출판 창비] |
16일 기자들과 만난 그는 "서울은 내 고향이다. 서울 사람으로 태어나 서울 사람으로 일생을 살아간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늘 있어왔다"고 소회를 털어놨다.
그에 따르면 역사도시로서 서울의 품위와 권위는 무엇보다도 조선왕조 5대 궁궐에서 나온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종묘와 창덕궁이 등재될 때 서울의 5대 궁궐이 한꺼번에 등재됐어야 했다고 그는 아쉬워했다. 일본 교토는 14개 사찰과 3개 신사를, 중국의 쑤저우는 9개 정원을 동시에 등재에 세계만방에 각각 사찰의 도시와 정원도 도시임을 천명했다는 것이다.
그는 "세계 어느 왕도를 가도 궁궐 5개를 가진 곳은 서울뿐이다. 500년 역사의 영욕이 있지만, 도심 안에 5개 궁궐이 있는 것은 드물다. 서울은 궁궐의 도시라는걸 관광 캐치프레이즈로 삼았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서울편 첫 권의 제목을 '만천명월 주인옹(萬川明月 主人翁)은 말한다'라는 창덕궁 존덕정에 걸린 정조대왕의 글에서 따왔는데, 궁궐의 주인인 옛 임금이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들려주고자 붙였다.
"제가 만나는 사람들이 서양의 박물관이나 미술관 관계자들인데, 이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꼭 묻더라. 건물이 아니라, 거기서 인간이 어떻게 살았느냐가 더 중요한거다. 문화재청장을 3년 반한 덕분에 궁의 내부 구조나 변해가는 과정 등을 미세하게 알게 된 게 많아 소상하게 다뤘다."
서울편 답사의 '1번지'는 종묘다. 그에 따르면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로마의 판테온, 일본의 이세신궁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 조선왕조의 종묘다. 조선왕조 500년이 남긴 수많은 문화유산 중에서 종묘와 거기에서 행해지는 종묘제례는 유형, 무형 모두에서 왕조문화를 대표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두번째 책에는 조선왕조가 남긴 문화유산을 다룬다. 한양도성, 성균관, 무묘인 동관왕묘, 덕수궁, 그리고 왕가와 양반의 별서가 남아있는 속칭 '자문밖' 이야기다. 그는 "책이 두껍다면 종묘편과 성균관편은 꼭 읽으라"며 "읽고나면 꼭 방문하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성균관은 조선 지성의 상실인데 우리가 너무 홀대하지 않았냐"며 "조선의 지성중에 성균관을 거치지 않은 이가 없다. 퇴계 율곡 추사 다산 다 성균관 출신이다. 성균관에서 20년 넘게 재수를 한 윤기가 쓴 '무명자집'을 너무 재미있게 읽느라 답사기 집필이 늦어졌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추천한 유적은 동관왕묘다. 그는 "삼국지 관우를 모시는 무묘 중에 중국에도 여기만큼 멋진 관우 조각이 있는 곳이 없다. 관악묘를 제대로 복원하면 유커 유치에 좋은 자원이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화재로 소실되면서 그를 문화재청장에서 물러나게 한 숭례문 이야기도 3권에 실린다. 그는 슬쩍 억울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문화재청은 지청이 없어서, 국보 보물에 해당하는 건 지자체에 관리를 위임한다. 강릉 백사문이 불타면 강릉시장이 책임이지 않나. 숭례문도 서울시장과 중구청장이 관리책임자다. 하지만 당시엔 그런 말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현재 구상단계인 세번째 편은 인사동, 북촌, 서촌, 성북동 등 묵은 동네 이야기를 서울에 살면서 보고 느끼고 변해간 모습을 담고, 네번째 편에는 서울의 자랑인 한강과 북한산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다. 14권을 돌파한 답사기가 언제 막을 내릴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아직 안 쓴 곳이 더 많다. 송광사 해인사 통도사 3보 사찰도 안 썼다. 섬 이야기도 못 썼고, 진주 전주 강릉 같은 고도도 안 다뤘다. 언제 어떻게 끝내야 할 지 고심중이다. 언젠가 다른 후배들이 이책을 밟고 나를 넘어섰으면 좋겠다."
우선은 미술사가로 돌아가 '화인열전' 집필에 매달릴 계획이다. 매년 방문하고 있는 중국을 답사기로 다루는 건 그 이후의 일이 될 것이라
그는 광화문 시대를 준비하는 '광화문 대통령 공약 기획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중이다. 그는 "청와대 이전은 최소한 6개 부처가 협력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복잡한 일"이라면서 "백지 상태에서 최선을 찾고 있다. 아직 결정된 건 아무 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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