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수많은 문학상 중 가장 높은 자리는 늘 퓰리처상이 지키고 있다. 1917년 언론인 조셉 퓰리처의 유산 50만 달러를 기금으로 하여 창설된 훌륭한 보도와 사진에 주어지는 상으로 유명하지만, 문학 부문도 '미국다움이란 무엇인가'를 가장 잘 드러내는 문학상이라는 영예를 지키고 있다. 퓰리처상 수상작가들의 신작들이 최근 속속 출간되고 있다.
단 두 편의 장편소설로 '오늘날 미국 최고의 젊은 소설가'라는 평을 받고 '미들섹스'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최신작 '결혼이라는 소설'(민음사)이 출간됐다.
브라운대 영문과에 재학 중인 매들린은 4학년 마지막 학기에 들어간 기호학 수업에서 우연히 공대생 레너드와 사랑에 빠져 졸업 학기를 연애하느라 시간을 보내다 대학원 진학에 실패하고 만다. 졸업 후 레너드가 유명 생물학 연구소의 인턴 자리를 얻게 되어 매들린과 동거를 시작하지만, 레너드의 조울증이 점점 심해지면서 연애에도 점점 부정적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 매들린을 오랜 시간 짝사랑해온 미첼도 종교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떠난 유럽여행에서 정처없이 방황한다. 소설 속 청춘들은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며 학교를 졸업하지만 확실한 직업도 미래도 없이 불안한 상황에 혼란을 겪는다.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1980년대 캠퍼스를 배경으로 향수를 자극한다는 것. 휴대전화도 SNS도 없이, 전화 한통을 받기 위해 밤을 새고, 기약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절의 '아날로그 사랑'의 풍경을 매력적인 문체로 그려낸다.
2010년 발표한 장편 '깡패단의 방문'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제니퍼 이건의 첫 장편 '인비저블 서커스'(문학동네)도 뒤늦게 한국에 출간됐다. 오래전 스스로 생을 마감한 언니의 진실을 알아내겠다는 열망으로 가득찬 열여덟 살 주인공 피비의 내면과 그 진실 찾기가 될 유럽 여정을 그렸다. 살아 있지만 삶의 이유를 느끼지 못하고 죽음에 사로잡힌 피비와 죽었지만 모두의 삶과 기억 속에 여전히 살아 있는 페이스. 이건은 피비가 마침내 언니를 이해하고 자기 삶을 직시하게 되는 순간을 사려 깊고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제니퍼 이건의 삶에서 전환점이 된 유럽 여행의 경험이 반영된 소설이기도 하다. 이건은 고교 졸업 후 떠난 유럽 배낭여행에서 지독한 외로움을 겪고 공황발작까지 일으켰다
. 여행중 그 극단적인 고립의 경험이 글쓰기가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본질이라는 점을 일깨워줬고, 미국에 돌아온 이건은 펜실베이니아대과 케임브리지대 대학원에 진학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 시절 처음으로 쓴 장편을 개작해 발표 한 것이 바로 '인비저블 서커스'다.
[김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