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유가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믿는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는게 아니고, 자유가 우리를 진리케 한다."(故 마광수)
7일 오전 10시께. 서울 연세대 중앙도서관 앞에서는 고 마광수 전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66)에 대한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었다. 제자들이 제작해 벽면 한 쪽에다 붙여 놓은 대자보 주위로 학생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고, 한(恨) 많은 생을 마감한 고인에게 저마다 고개 숙여 애도했다. 마 교수는 지난 5일 자신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스카프로 목을 맨 채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교수님 교수님, 아, 마광수 교수님..!'라는 제목의 대자보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교수님은 강의실이 텅텅 비고 학생들이 대놓고 중간에 수업을 나가도 절대 나무라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5천원짜리 커피에는 아낌없이 돈을 쓰면서도 교수님 책에 단 돈 만 원 쓰기에는 인색했지요." 제자들에게 더없이 인자했던 스승이었지만, 살아생전 자신의 책이 저평가되는 현실은 개탄할 때가 많았다.
마 교수 제자였다는 대학원생 황현석 씨(30)는 "교수님 수업은 처음엔 호기심으로 수강생이 몰려들지만 학기 중반만 돼도 절반 이상 강의실에 오지 않았다. 출석 점수에 인색하지 않고, 학생들 자유의사를 존중해주셨기 때문"이라며 "다만 자신의 작품을 강독할 때 제자들이 책을 준비해오지 않으면 찹잡해 하실 때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또다른 제자 최 모씨(28)는 "인문대 건물 구석에서 혼자 줄담배를 피우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훤하다"며 "부디 좋은 곳에 가셔서 이제 더는 외롭고 쓸쓸하지 않으시길 바란다"고 했다. 이날 중앙도서관 대자보 아래에는 빨간 장미 한 송이가 가로로 누워 붙어 있었다. "교수님이 즐겨 피우시던 담배 '장미' 대신 빨간 장미를 바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7일은 고인의 영결식이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오전 11시 30분께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대학교병원 장례식장. 이곳에서 마 교수 유족과 동료 교수들, 작가들 등 조문객들이 참석해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장지로 향하는 영정 속 고인은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해맑게 웃는 모습이었으나, 시신 운구 과정을 바라보는 조문객들은 저마다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마 교수 별세 이틀 째. 세상과 자주 불화했던 그의 작품들이 뒤늦게 대중의 관심을 사고 있다. 국내 서점가에서 하루 1~2권 정도 팔릴까 말까했던 그의 소설, 에세이 등이 조금씩 판매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날 교보문고에 따르면 마 교수 살아생전 저작들의 판매량은 하루 평균 1권 남짓이었다. 거의 아무도 사보지 않았던 셈이다. 그러다 지난 5일 고인이 숨을 거둔 이래 온·오프라인 통틀어 178권가량 판매됐다. 이튿날인 6일에는 237권이 팔려나갔다. 지난 1월 출간된 '마광수 시선',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가자 장미 여관으로', 소설 '나만 좋으면', 인문서 '윤동주 연구' '행복 철학' '마광수의 인문학 비틀기' 등이 주로 판매됐는데, 절대량에서는 아직 미비한 수준이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가자, 장미 여관으로' 등 마 교수 생전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작품들 판매량이 늘고 있는데 아직은 지켜봐야할 것 같다"면서 "이번 주말께 조금 더 팔리지 싶다"고 말했다.
마 교수는 최근까지도 새 소설집 출간을 준비 중이었다. 소설 '나는 너야'(2015) '나만 좋으면'(2015), 에세이 '인간에 대하여'(2016) 등 죽기 전까지 창작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그다. 윤석전 어문학사 대표는 "단편 21편을 묶어 '추억마저 지우랴'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기로 했었다"며 "유족과 상의해 9월 안에 유작을 출간할
이 여세를 타 절판된 소설 '즐거운 사라'(1991)가 재출간 될 지도 관심이 모인다. 마 교수는 1992년 '즐거운 사라'가 건전한 성의식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음란물이라는 이유로 매도당하며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이라는 유죄판결을 받았던 바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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