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사전적 의미는 우리 눈을 자극해 물체를 볼 수 있게 하는 비물질이다. 그러나 빛은 인간의 삶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엄청난 존재다. 낮에는 태양의 수혜를 입고, 밤에는 인공 빛에 의지해 산다. 그래서 빛은 종종 구원, 희망, 신(神)에 비유된다.
두 설치미술가가 빛을 탐구한 전시로 관객을 맞고 있다. 리경(48)은 20여년 연구해온 빛의 물성을 공간에 따라 다양하게 구현한 개인전 '모어 라이트(more Light): 향유고래 회로도'를 11월 25일까지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열고 있다. 정정주(47)는 빛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을 담은 '발생하는 풍경'을 서울 북촌 갤러리조선에서 11월 23일까지 개최하고 있다.
리경 전시 부제 '향유고래 회로도'는 송은아트스페이스 전시공간이 향유고래의 머리 모양과 유사해 착안됐다.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 속 향유고래와 인간의 사투가 빚어내는 암울한 분위기를 영상과 레이저로 연출한 빛에 담아냈다.
공간 특성에 맞는 설치작업을 해 온 작가는 전시장에 어울리는 작품 3점을 선보인다. 2층 철문을 열고 어두운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한 두 개의 빛 기둥을 마주하게 된다. 이들은 천천히 교차하며 켜짐과 꺼짐을 반복한다. 생성과 소멸 과정을 통해 탄생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가는 인간에 대한 작가의 고찰을 드러낸다.
3층 첫 번째 방에서는 3D 영상으로 구현한 미지의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작품을 계속 응시하면 미세한 빛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다. 그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3층 두 번째 전시장으로 이동하면 또 다른 빛의 세계에 도달한다. 주황색 싸이키 조명이 가득한 방이다. 눈이 너무 부셔 고통이 따르고 빛의 잔상을 경험하게 된다. 이 잔상은 긴 여운을 남기며 다른 작품들의 감상을 간섭한다.
4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푸른 빛의 레이저 프로젝션이 강렬하게 빛을 뿜어내며 춤을 춘다. 연기와 어우러져 오묘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시장 반대편 벽면에 설치된 유리거울을 통해 공간이 무한 확장했다. 관람객의 사색을 유도하는 작가는 경희대 한국화 학사를 거쳐 영국 런던 첼시국립예술대학 대학원 석사를 마쳤다.
정정주는 모형, 빛, 영상, 카메라 등으로 새로운 조형화법을 보여준다. 아파트 등 일상에서 마주하는 건물들을 모형으로 제작해 조명을 밝혔다. 빛이 흘러나오는 모형 내부에는 카메라를 설치했다. 관람과 동시에 모형 내부의 카메라로부터 관찰당한다. 이러한 기묘한 시선의 교환은 일상의 공간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모형 자체는 인간의 외면을, 모형 내부의 빛과 카메라들은 인간의 내면을 비유한다. 빛은 인간의 내면에 침투하는 시선을 나타낸다는게 작가의 설명이다.
회화작품 속 공간과 빛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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