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한글 꼭 배워서 4년 전 하늘로 떠난 남편에게 못다 한 말을 편지로 쓰고 싶어요.", "은행에서 내 이름을 써서 돈을 찾고, 병원 진료카드를 쓸 줄도 알아, 성경책도 읽고 택배도 혼자 보낼 수 있어."
한글 공부에 푹 빠진 할머니들이 요즘 느끼는 즐거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평생 처음 느껴보는 감정입니다.
추석 연휴를 일주일 앞둔 지난달 25일.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할머니 20여명이 마을회관에 모여앉아 한글 공부 책을 폈습니다.
방바닥에 그대로 앉아 책상다리하느라 허리가 아플 법도 하지만 누구 하나 힘든 내색이 없습니다.
학생들 앞에선 선 이순선 선생님이 화이트 보드에 '봄이 좋다'를 쓰고선 "봄이라고 쓰고 '보미'라고 읽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삐뚤삐뚤하게 따라 적으며 어디선가 한숨이 흘러나오자 할머니들 얼굴에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이순선 교사는 "교사라는 이름으로 할머니들 앞에 섰지만 부끄러울 때가 더 많다"며 "삶의 지혜를 품고 계신 어르신들과 함께 공부하며 배려와 양보를 배우고 철이 드는 느낌"이라고 말했습니다.
충남 논산시에서 운영하는 한글대학 한글 수업에서 배움의 시기를 놓친 할머니들이 모여 뒤늦게 한글 공부 삼매경에 빠진 모습입니다.
그 옛날 우리 사회 깊이 뿌리 내린 남아선호 사상 탓에 여성은 공부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한글대학 학생 대부분은 70∼80대 할머니입니다.
이들이 공부하는 이유는 단 하나 '배움에 대한 갈망'입니다.
너무 늦은 건 아닌지 안타까워하면서도 배움에
한글학교를 총괄하는 논산시 100세 행복과 윤선미 팀장은 "어르신을 상대로 한 문해교육은 단순히 한글을 가르칠 뿐 아니라 할머니들 마음속에 간직한 한을 풀고 자존감을 높여 사회 구성원으로 당당히 자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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