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갔다 이제왔니. 어디에서 무얼했니...소문에는 아프다던데 걱정했었네, 예끼, 이사람아!"
합창단의 노래에 3500명의 관객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고개 숙인 나훈아가 합창단의 노래를 받아 답가를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아무 말도 못합니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네요."
40분 간의 열창이 끝난 후 침묵이 찾아왔다. 어둠 속 무대 위 스크린에 한글자 한글자 떠올랐다. '첫 인사는 입이 떨어지지 않아 노래로 만들었습니다. 제목은 '예끼, 이사람아'. 합창이 부르는 '1절'은 여러분들이 제게 질책하는 마음을 담았고 '2절'은 제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담았습니다.' 나훈아가 2절을 끝마치고 멎쩍은 듯 웃었다. 객석에서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와 '괜찮아! 괜찮아!'라는 응원의 함성이 터졌다. 관객은 그렇게 소식 없이 11년 동안 잠적한 자신의 가수를 용서했다.
가왕의 귀환이었다. 3일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 나훈아가 11년 만에 콘서트 '드림어게인'을 열었다. 1966년 '천리길'로 데뷔한 후 '갈무리' '무시로' '영영' 등으로 큰 사랑을 받던 나훈아는 2006년 데뷔 40주년 공연을 끝으로 갑작스레 활동을 중단했다. 2007년 3월 세종문화회관 콘서트로 컴백하는 듯 했으나 또 다시 특별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서울 공연을 취소하고 지금까지 운둔해왔다.
'영영', '홍시' 등 옛 명곡과 '아이라예', '죽는시늉' 등 신곡을 열창한 후 그는 뒤늦게 말문을 열었다.
"얼굴 찡그리고 살기에는 너무 인생 짧습니다. 사실 뭘 잘못했는지 확실히는 모르겠는데 왠지 죄송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미안한 마음으로 공연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습니다. 여러분이 괜찮다고 하시면 송구스런 마음은 저 구석에다 쳐박아 놓고 얼굴 두껍게 하고 내 오늘 알아서 하겠습니다! 저는 노래를 11년 굶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계속 하자고 하면 밤새도록 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함성을 내지르며 팬들은 감격을 금치 못했다. 나훈아 콘서트르 찾은 두 여고동창 강명아(55) 신인숙(56) 씨는 "친구 세명이 다같이 나훈아 팬인데 티켓을 두장 밖에 못 구해 한명은 못 왔다"며 "오늘 마음껏 뛰고 흔들려고 안에 반팔을 입고 왔다"며 코트를 벗어보였다. 부부가 함께 온 경우도 많았다. 연석을 구하지 못해 떨어져 앉았다는 신창수(62)씨는 "우리 부부가 함께 좋아하는 유일한 가수"라며 웃돈을 주고 티켓을 구해 왔다"며 "왜케 티켓 구하기가 힘드냐"고 푸념하기도했다.
이날 나훈아는 11년간 은둔생활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털어놓았다. 그는 "보따리 둘러매고 지구를 다섯바퀴 이상을 돌았다"며 "잘 사는 나라가면 공기가 안 좋아 별과 달이 안보여 오지를 많이 돌아다니녔다"고 소개했다. 남미를 가기위해 미국에 들렸을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자신의 노래 '사나이 눈물'을 듣고는 눈물을 쏟은 사연을 털어놓기도 했다.
11년이란 세월이 무색했다. 70대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11년 전 마지막 기자회견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애간장을 태우는 바이브레이션과 울다 웃다, 감정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특유의 '꺾기 창법'도 녹슬지 않았다. 하얀 그래피티가 그려진 검정 재킷을 입고 무대를 누비는 그는 '어머니의 아이돌'이란 말이 정확했다. 무대에서 여유롭게 박자를 타며 스텝을 밟고 때로는 두 팔을 활짝 벌리고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오빠아아아!" 객석 곳곳에서 소녀로 돌아간 중년의 여성들이 소리를 내질렀다. 아이돌 콘서트처럼 무지개빛으로 물드는 별모양의 야광봉이 곳곳에서 물결쳤다. 불꽃과 레이저 화려한 영상 그리고 무용단, 합창단, 악단 등 50여명의 출연진들이 꾸민 무대는 그가 '살아있는 전설'임을 보여줬다.
나훈아의 '드림어게인' 콘서트는 11월 3~5일 서울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을 시작으로 24~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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