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100여 꼭지의 역사 조각들
1990년대 초 PC통신 〈하이텔〉에서 온라인 글쓰기를 시작해 '산하'라는 닉네임으로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역사 이야기꾼 김형민(SBS CNBC PD)은 2015년 초부터 주간지 <시사IN>에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전2권)는 이 중 2016년까지 연재한 100여 꼭지(1권 50꼭지, 2권 47꼭지)를 새롭게 손본 책이다.
딸에게 담담하게 들려주는 저자의 옛날이야기는 거창하지 않다. 아들을 잃고 통곡하는 아버지의 슬픔에 눈을 돌린다. 이 같은 관점 아래 저자는 대한민국의 일상에서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과거의 조각들을 되살려 2017년 대한민국을 곱씹는다.
'오래지 않은 과거'와 '오래된 과거'의 교차
저자는 각 꼭지마다 '옛날'과 '오늘'을 교차시켜 역사가 단순히 옛날이야기만이 아니라는 점을 되새기게 한다. “이런 게 역사라는 거야. 오늘 일어나는 일은 비슷하게라도 일어났던 일이야. 똑같지는 않더라도 말이야.”
한국전쟁과 세월호의 비극을 '7시간'이라는 키워드로 교차시킨 꼭지는 역사를 보는 저자의 이 같은 관점을 강조한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3시경, 북한 인민군이 국군의 뒤를 찌르기 위해 강릉 근처 정동진에 기습 상륙했다. 그러나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육군참모총장 채병덕은 전날 미군 군사고문단과 가진 술자리 후 새벽 2시에 귀가한 터라 인사불성이었다. 작전국 책임자였던 장창국 작전국장의 집에는 전화가 없어서 연락이 닿지 않았다. 급하게 찾은 신성모 국방부장관의 비서실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관님은 영국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일요일에는 아무도 만나시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으십니다."
덕분에 국방부장관과의 연락은 전화가 아닌 대면으로 진행해야 했다. 그렇다면 이승만 대통령은? "경회루에 낚시 가셨습니다." 결국 대통령에게 보고한 시간은 오전 10시 30분이었다. 전쟁의 첫날 7시간은 그렇게 지나갔다.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데만 7시간이 걸렸다.
세월호라고 다를까. 2014년 4월 16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무엇을 했는지 정확히 밝히지 못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보고 시점 조작 의혹까지 제기된다.
모든 일의 풀림과 헝클어짐은 그 일의 시작점에서 비롯되게 마련이다. 하물며 전쟁이나 그에 준하는 대재앙을 만났을 경우 첫 출발점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한다. 재난을 맞은 국가 지도부의 부실한 대응은 그 자체로 재앙이다. 한국전쟁과 세월호는 이 같은 역사의 진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평범한 사람들의 최선을 다한 삶이 만든 역사
1988년 한 주부가 밤에 길을 가다가 대학생들에게 성추행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그 주부는 입 안에 들어온 대학생의 혀를 깨물었다가 그게 죄가 돼서 구속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말도 안 되는 판결에 불복해 움직였다. 데모도 하고 소리도 지르고 판사를 윽박지르기도 했다. 그 덕분에 판결은 뒤집혔다. 문제를 문제로 봤던, 그래서 바로잡고자 행동했던 평범한 이들이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백주의 테러는 테러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가 있었지만, ‘탁! 치니까 억!
저자가 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에는 이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