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역은 맛집과 방탈출 게임장, 옷가게 등이 즐비해 대학생은 물론 청춘남녀들에게 데이트 지역으로도 인기 많은 장소다. 1년 전 이곳에 생뚱맞아 보이는 '전통주 갤러리'가 생겼다. 강남역 한복판에 전통주 체험 장소라니 다소 이질적으로 느낄 수 있겠지만 20~30대 젊은 층이 즐겨찾는 곳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통주의 어떤 매력이 젊은이들의 발길을 사로잡은걸까. 이 궁금증을 참지 못한 인턴기자가 13일 현장으로 출동했다.
↑ [ 사진 = 신경희 인턴기자 ] |
전날 밤에야 평창에서 돌아왔다는 전통주 소믈리에인 이현주 전통주 갤러리 관장은 "평창 올림픽 프라자 인근의 'K-Food Plaza'에서 전통주 갤러리 부스를 열었는데 외국인들이 하루 평균 500병씩 구입해갔다"며 "외국인들이 전통주에 많은 관심을 보여 힘들기는 했지만 재밌고 보람찼다"며 전통주 소개의 포문을 열었다.
↑ 전통주 갤러리 이현주 관장 [사진 = 신경희 인턴기자] |
- 한달 전부터 준비 작업이 들어간다. 선물, 차례, 일반 음주 등으로 나누어 5개를 조합한다. 이번 달에는 설날 연휴가 있는 만큼 차례주 위주로 선정했다. 막걸리인 우곡주, 약주인 대통대잎술과 솔송주, 한산소곡주 그리고 전통 소주인 감홍로다.
▷각각의 술은 어떤 특징을 가졌나.
-우곡주는 물을 섞지 않은 막걸리, 즉 '합주'다. 알코올 도수가 기존 막걸리보다 높은 13%이고 묵직한 바디감과 견과류향이 특징이다. 대통대잎술은 쌀이 주재료이지만 한약재를 넣어 향을 더했다. 갓 베어낸 대나무를 잘라 넣고 숙성시킨다. '운수 대통'하라는 의미를 담아 명명했다.
솔송주는 대한민국 식품명인 27호 박흥선 명인이 쌀과 솔잎으로 만든 약주다. 500년간 가문을 이어온 약주에 현대 양조기술을 더해 완성됐다. 한산 소곡주는 일명 '앉은뱅이 술'로 불린다. 너무 맛있어서 앉은뱅이처럼 앉아서 계속 먹게 된다. 쌀 함량을 늘려 단맛을 냈다.
감홍로는 외국인들에게 '크리스마스 술'로 통한다. 계피와 진피(귤껍질)이 주재료인데, 이것들이 서양에서 성탄절 날 마시는 술의 재료와 닮았다고 한다. 판소리 별주부전과 춘향전에도 감홍로가 등장한다.
↑ 사진 왼쪽부터 감홍로, 솔송주, 우곡주, 한산 소곡주, 대통 대잎술 [사진 = 신경희 인턴기자] |
-전통주 소믈리에를 술을 감평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핵심은 '맛있는 전통주를 더 맛있게 전달'하는 역할이다. 옛이야기를 곁들여서 설명하고,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전통주를 소재로 한 비즈니스 상담도 한다. 미셸린 3 스타 신라호텔 '라연'(한식당) 등에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전국 각지 자영업자분들도 단체로 연구 차원에서 방문한다.
▷둘러보는 방문객 연령대가 낮아 보인다. 평소에도 그런가.
-자체 방문객 통계를 내고 있는데 47%는 20대, 33%는 30대, 11%는 40대이다. 모집단이 많진 않지만 이런 경향이 꾸준히 유지되고 있어 최근 젊은 관객들의 취향이 다양해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주종 하나를 정해서 순례를 도는 사람도 있고, 특별 시음 코스를 신청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어느 한 주종에 인기가 몰리지 않고 각자의 음주 스타일을 확립해 돌아간다. 전통주 갤러리가 한국 청년들의 엔터테인먼트 공간이자 위로의 장소이길 바라고 있다.
↑ 대통대잎술을 관객들이 시음하는 모습 [사진 = 신경희 인턴기자] |
솔송주와 한산 소곡주는 차례주로 제격이다. 전, 산적, 삶은 닭 등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차례 음식의 소화를 돕는 느낌이었다. 요즘 청년들이 마신다는 '회개리카노(회개+아메리카노, 배불리 식사하고 칼로리 낮은 아메리카노로 회개한다는 뜻)'처럼 마치 고칼로리 차례 음식을 먹고 정제하기 좋은 느낌이었다.
감홍로는 그야말로 '끝판왕'이었다. 甘(달 감)자와 紅(붉을 홍)자로 이름지어진 이 술은 무려 40도다. '조선 3대 명주'(이강주·죽력고·감홍로)인 이 술을 한입 마셔보니 진한 계피향과 새콤한 귤향이 퍼졌다. 계피, 귤은 외국인에게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식재료이기 때문에 감홍로는 이 관장이 외국인에게 가장 많이 추천하는 술이기도 하다.
전통주 갤러리는 옛것을 강요하지만은 않았다. 그저 자연스럽게 체험하길 바라는 마음이 갤러리 곳곳에 녹아 이런 편안함으로 일상에 지친 젊은이들을 이끌었다. 문화적 가치는 주입이 아니라 경험임을 깨달은 방문이었다.
참고로 이 갤러리
[디지털뉴스국 신경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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