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가 있는 집에는 반드시 퍼즐과 동화책이 있다. 퍼즐을 맞추고 동화책을 읽으면서 두뇌 활동을 촉진해 치매 진행을 늦추기 위해서다.
그런데, 노인을 위해 만든 이야기책이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다. 출판사 지성사는 치매 진행을 늦추거나 예방하는 '어르신 이야기책'을 내놓는다고 19일 밝혔다. 책은 모두 40권으로 노인들이 읽기 쉽도록 큰 글씨로 제작했다. 노인을 위한 이야기책은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다. '어르신 이야기책'은 노인들이 어린 시절 겪은 이야기를 위주로 엮었다. 노인들의 두뇌를 자극하려면 그만큼 익숙한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난 한해를 꼬박 제작에 매달리면서 지성사는 작품을 고르고 또 골랐다. 그 결과 황순원, 양귀자, 박완서 같은 작가가 쓴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주로 노인들이 자라던 60~70년 전을 배경으로 한다.
이야기를 고르고 난 뒤에는 그림을 곁들이기로 했다. 아무래도 노인들은 글씨만 읽어서는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감안했다. 그림을 넣으려다 보니 뭔가 아쉬웠다. 단순히 내용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미술치료를 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다. '어르신 이야기책' 그림은 미술치료사로 활동하는 김영희, 남인희 화백은 물론 동화책 작가 낙송재 화백이 힘을 보탰다. 삽화 수준을 넘어 노인들이 시간여행을 할 수 있도록 세심히 배려했다. 치매 진행 단계별로 4단계로 나눠 난이도를 구별한 것도 특징이다. 만약 초기 단계라면 100쪽 안팎 긴 글을 읽으며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 다소 치매가 진행돼 긴 글이 부담스러우면 50~70쪽 가량의 중간 글, 치매가 진행하기 시작하면 40~50쪽 분량 짧은 글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치매가 이미 진행돼 글을 읽기 어려운 노인을 위한 그림책도 제작했다.
이번 기획은 이원중 지성사 대표의 경험에서 나왔다. 올해 여든살인 이 대표의 어머니는 파킨슨병 환자다. 병이 심해지면 치매로 발전할 수 있다. 좁은 오솔길을 걷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품위 있고 건강한 노년을 보낼 수 있을까."
마음을 정하자 곧바로 그는 행동에 옮겼다. 치매 자료를 모았고 전문가를 만나기 시작했다. 해답은 간단했다. 책을 읽고 여행을 하면 두뇌를 자극해 치매 진행을 늦출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치매 노인이 어떤 책을 읽는지 살폈는데, 현실은 처참했다. 노인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동떨어진 동화책을 읽고 있었다. 한 평생 자식만을 위해 달려온 노인들을 위한 책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수십년 동안 온갖 풍파를 겪으며 살아온 어르신께 그런 책을 읽으라고 권하는 것은 격에 맞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치매에 맞닥뜨린 어르신이 느끼는 첫 번째 좌절감이라 할 수 있다."
이 대표는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김상윤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 김 교수는 치매 연구의 권위자다. 물심양면으로 도왔다는 김 교수는 이번 책을 발간하면서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추천했다. "인지와 사유에서 오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은 책을
[김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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