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컬처 DNA] 백제 사람 서동이 자신과 선화공주의 스캔들을 담은 노래 '서동요'를 퍼뜨려 결혼까지 성공했다는 '서동설화'. 일반인이 이를 읽고 얻을 교훈은 기껏해야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하기' 정도일 것이다. 개그맨 김영철(44)은 스스로 설화 속 서동이 돼 2015년부터 가수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주야장천 흘리고 다녔다. 특히 윤종신이 '월간 윤종신' 연말 영상에 들어갈 인터뷰를 요청할 때마다 "3월, 7월, 11월 세 달 드리겠습니다. 그중 한 달을 '월간 윤종신' 참여하는 걸로 할게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 김영철은 최근 마포구 하늘공원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개그맨, 가수, 배우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비결을 들려줬다. /사진=양유창 기자 |
3년이 지난 2018년, 김영철은 명실상부한 인기 가수가 됐다. 그가 지난달 발표한 '안되나용'은 트로트 음원 차트에서 수 주간 1위를 지켰으며 장르를 망라한 종합 차트에서도 100위권에 진입하는 쾌거를 거뒀다. 가수가 되고 싶다는 소문을 먼저 퍼뜨려 실제 꿈을 이루며 현대판 '서동설화'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윤종신 씨가 제게 '월간 윤종신' 곡을 못 준 부채 의식이 있었나봐요. 홍진영 씨가 작년에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서 '노래를 작곡해서 허경환 오빠한테 줬는데 안 한대요'라고 말하니까 윤종신 씨가 바로 '영철이 트로트하고 싶어해'라고 해주더라고요."
농담처럼 건넨 말이 시작점이 돼 그는 지난 해 트로트 '따르릉'을 발표했다. 겨울엔 제아와 크리스마스 캐럴을 작업했으며 올해는 작곡가에게 곡 제안을 먼저 받아 '안되나용'을 불렀다. 코미디, 노래, 연기를 넘나들며 영역을 파괴하는 김영철을 지난 13일 서울 상암동 하늘공원에서 만났다.
↑ `안되나용` 뮤직비디오에서 김영철이 토르로 분장해 연기하고 있다. 뭔가 하나씩 어설픈 영웅들을 그린 이 뮤직비디오는 공개 한 달만에 유튜브에서 약 4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사진제공=미스틱엔터테인먼트 |
-'안되나용'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 수가 400만 가까이 돼요. 인기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송은이 씨가 뮤직비디오를 연출했거든요. '셀럽파이브' '비밀보장'으로 한창 물이 올랐을 때 '안되나용' 뮤직비디오를 찍어주셔서 시청자 여러분께 먼저 사랑을 받은 게 있고요. 또 '안되나요'를 부른 휘성 씨가 피처링 해주셔서 도움이 크게 됐죠. '아는 형님'에 나와서 뮤직비디오 대전을 펼친 홍보 효과가 있었고요."
-너무 겸손하신 거 아닌가요?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모든 좋았던 요소에 더해 제가 곡을 잘 살렸던 것 같아요. 댓글을 봤는데 '아 어쩜 쩍쩍 달라붙냐'고 써 있더라고요. 제가 생각해도 파트별로 잘 살리지 않았나 싶어요(웃음)."
-뮤직비디오가 참 재미있어요. 김영철 씨는 영상에서 토르, 닥터 스트레인지 같은 영웅으로 출연하셨는데요. 어떤 부분 때문에 이렇게 재미있을까 궁금해지더라고요.
"영웅을 출연시키자는 건 송은이 씨 아이디어예요. 김영철이라는 코믹하고 어설픈 아이에게 영웅 이미지를 입히면 어떨까 떠올렸던 거예요. 저도 생각해보니 모든 걸 잘하는 영웅이 자꾸 안 되고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 웃길 것 같더라고요."
-'킹스맨' 연기하신 부분에서는 액션도 코믹하게 소화하시더군요.
"저는 멋지게 제대로 한다고 했는데 웃기게 떨어졌나보군요. 그런데 개그맨이 가장 고맙게 느끼는 순간이 자기는 진지하게 했는데 남들이 웃어줄 때예요. '진짜 사나이' 출연할 당시에도 저는 진지하게 제식 훈련에 참여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제 동작을 보고 웃더라고요.
↑ 김영철은 "나는 진지한데 사람들이 웃을 때 기분이 가장 좋다"고 밝혔다. /사진=양유창 기자 |
-가수로서 무대에 오를 때 개그할 때만큼 즐겁나요?
"관객 호응이 있으면요. 오늘 SBS MTV '더 쇼'를 촬영하는데 제 직전 순서가 마마무였거든요. 마마무 차례가 끝난 후 제가 마마무 팬들에게 '나가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더니 자리를 지켜주시더라고요. 미리 짠 적도 없는데 제가 '안되나용'이라고 부르니 팬들이 '돼용 돼용 돼용'이라고 호응해주셨어요. 고맙더라고요. 이거 찍은 영상이 널리 퍼져서 '열린음악회' 같은 무대에 초대됐을 때도 팬들이 따라해줬으면 좋겠어요."
-가수 활동은 얼마나 집중적으로 할 계획인가요?
"지난 10일 '아는 형님'에 박진영 씨가 나왔길래 '다음 곡은 박진영 씨에게 받고 싶어'라고 했더니 '어, 고마워'라고 대답하시더라고요. 곡을 주겠다는 말씀은 안 하시고요(웃음). 그런데 제가 여기까지 온 출발점을 생각해보면 결국 윤종신 씨에게 계속 '월간 윤종신'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던 거잖아요. 미당 서정주 선생은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고 하셨는데요. 저 김영철을 키운 8할은 입방정입니다. 제 입방정이 어느 날 바람을 타고 작곡가 김형석 씨, '아모르 파티' 작곡자 윤일상 씨 귀에 닿기를."
-코미디 이야기를 해볼게요. 김영철 씨는 기승전결을 맞춰서 남을 웃기는 데 익숙하잖아요. 그래서 최근 예능 콘텐츠들이 일상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관찰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위협으로 느껴지지는 않나요?
"아니요. 제가 부각받기 시작한 게 관찰예능이었잖아요. 2015년에 '진짜 사나이' 했고. 같은 해부터 이듬해까지 '나 혼자 산다'에 출연했고요. 작년까지는 '최고의 사랑'에도 나왔죠.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기승전결 예능에 익숙한 것도 사실이에요. 그런데도 관찰예능에서 빛날 수 있었던 비결을 두 가지 꼽아보자면 '성실함'과 '솔직함'이에요. 저는 남들보다 체력이 약하다는 콤플렉스가 있어서 '진짜 사나이' 출연할 때 조교들의 말을 다 암기해버렸어요. 보급품을 받는 순간 조교가 해주는 말을 다 외우고 돌발 질문이 나왔을 때 모두 대답했죠."
-솔직함은 관찰예능에서 어떻게 장점이 됐나요?
"만약에 제가 기존 예능하듯이 '여기서 대답 못하면 웃기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일부러 실수했으면 시청자들이 재미있어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잘 외워서 칭찬을 받다가도 웃음을 못 참아서 얼차려를 받게 되니깐 사람들이 웃는 거예요. 또, '나 혼자 산다'에서는 청국장 먹게 생긴 애가 에그 베네딕트를 자꾸 찾고, 막걸리 마시게 생겼는데 화이트 와인을 찾는 모습으로 진짜 의외의 모습을 보여줬죠. 저는 '어느 구름에서 비가 떨어질지 모른다'는 말을 좋아하거든요. 관찰예능이 딱 그래요."
-몇 년 째 미국 진출에 대한 이야기도 반복했는데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작년 10월에 LA와 뉴욕에서 공연 스케줄이 있었어요. 간 김에 세 팀과 미팅을 했는데 한 팀이 저를 좋아해주셨어요. 저더러 미국 코미디 대부 제리 루이스를 닮았다나요. 무슨 이야기만 하면 빵 터지더라고요."
↑ 김영철이 자신의 스마트폰에 미국 코미디 대부 제리 루이스 사진을 띄워 보여주고 있다. /사진=양유창 기자 |
-미드(미국 드라마)에 나온다면 특별히 맡고 싶은 연락이 있나요?
"미팅 중에 미국 드라마에 대한 제 의견을 낼 기회가 있었어요. '내가 미국 시트콤을 보니깐 항상 친구들이 식당과 카페에 모이더라. 나는 거기서 주문을 재미있게 받는 식당 종업원 역할을 맡을게. 그러다 시즌2, 시즌3로 넘어가면서 비중을 점점 키우면 어떨까'라고 물어봤죠. 그쪽에서도 좋은 생각이라고 하더라고요."
-미국 진출이 코앞까지 다가왔네요?
"꿈꿔왔던 일이 현실이 될 수도 있어요. 저는 스스로가 미국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미국에서 싸이, 이병헌 씨 다 성공했잖아요. 한국 가수랑 배우가 전부 사랑받은 건데요. 제가 미국인이라면 '왜 코미디언은 없어'라고 물을 것 같아요. 그분들이 유재석 씨, 신동엽 씨, 김구라 씨 만나려고 하다가 답답해하겠죠. '이즈 데어 애니바디 후 캔 스픽 잉글리시(Is there anybody who can speak English·영어 되는 사람 없어)'라고 물을 때 제가 '히어 아이 엠(Here I am·여기 있다)' 하고 나가는 거죠."
-김영철 씨 코미디가 서구권에서 갖는 강점은 뭘까요?
"과도한 표정이죠. 할리우드 매니지먼트랑 회의할 때 막 웃길래 왜 웃냐고 물었더니 제가 애니메이션 캐릭터 '라바'를 닮았대요. 많은 아시아인을 만나봤는데 저처럼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생긴 사람은 없었대요. 또 제가 구사하는 브로큰 잉글리시(broken English·엉터리 영어)가 좋대요. 그래서 '나는 브로큰 잉글리시를 한 적이 없어. 완벽한 영어를 했지'라고 했더니 또 웃더라고요. 샘 해밍턴의 한국어를 듣는 느낌일까요."
-한국에서만큼 미국에서도 웃길 자신 있나요?
"집에서 웃겼던 애가 밖에 나가서도 웃기기 쉽겠죠. 그런데 중요한 '아니면 말고'라는 자세예요. 저는 시청자들에게 미국에 가서 성공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미국에 가겠다고 했죠. 2~3년 해봤는데 만약 잘 안 돼서 돌아오면 사람들이 '왜 왔어요'라고 물어보겠죠. 그럼 '실패했잖아'라고 하면 되죠. 그때부터 또 다시 눈 뒤집고 '미안해. 안되나용. 미국은 안되나용. 싸이는 되고 왜 나는 안되나용'하면 될 것 같지 않나요."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슬럼프는 없었나요?
"2009년에서 2010년으로 넘어갈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뭔가를 이뤄야 할 것 같은데 방송에선 절 불러주지 않았죠. 다시 고향 울산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연말 시상식 보면서 혼자 와인을 한 병 깠어요. 그냥은 못 보겠더라고요. 아직도 생생한 기억이 있다면 시상식 전에 강호동 형이 '영철아 불러야만 오나. 개그맨 축제잖아. 와'라고 했던 거예요. 당시에는 뻔뻔함이 없어서 도저히 그렇게 할 수는 없었어요. 그런데 실제로 집에서 시상식을 보니깐 눈물이 나더라고요."
-어떻게 극복했나요?
"모든 일을 감사히 또 꾸준히 하자고 마음먹었어요. 방송국에서 안 불러준다고 종일 집에 누워 있을 수는 없잖아요. 제가 2003년 7월 캐나다 몬트리올 코미디 페스티벌에 다녀온 이후로 같은 해 9월부터 영어를 배웠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영어 공부만큼은 꾸준히 했어요. 그러다 보니깐 EBS에서 섭외 전화가 왔고, 출판사에서도 영어책 내보자는 제안이 왔어요. 무엇이든 하고 있으면 뭔가 되더라고요. 집에서 이불 덮고 혼자서 고민하고 있으면 안 되고요. 이불을 박차고 나가면 되더라고요. 새벽같이 일어나서 세 시간 영어 공부하고 녹화장 가면 졸음이 몰려왔어요. '진실게임' 녹화장에서 하품하는 절 보고 유재석 형이 '영철이 아직 영어학원 다니냐'며 '영어도 좋지만 서울말을 배우는 게 어떠냐'며 농담을 걸어줬던 게 기억나요. 저는 그 피로도 이겨내고 결국 지금의 제가 됐어요. 제가 살면서 지금까지 제일 잘했던 일은 2003년 9월 1일부터 지금까지 영어학원을 꾸준히 다니고 있는 것. 그것만큼은 누구에게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 김영철은 자신의 인생을 바꾼 책으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꼽았다. "내가 현재 계절을 여름이라고 느낀다고 다른 사람도 꼭 그러라는 법은 없어요. 그 사람이 살고 있는 계절은 봄일 수도 여름일 수도 있죠. 서로 인생 속도가 다르다는 걸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통찰을 줬어요." /사진=양유창 기자 |
-계속해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뭔가요?
"결핍인 것 같아요.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리라는 촌에서 태어난 결핍이요. 저는 시골에 살았기 때문에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했어요. 시내에 나가는 차가 두 시간에 한 번밖에 안 오는 마을이었어요. 이문세의 '별밤(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방송에 나가서 1등을 하고 싶다는 꿈을 꿨던 것 같아요. 끼는 있는 것 같은데 발산할 창구는 없었죠. 저는 초중고등학교 다니면서도 소풍만 가면 사회를 보면서 연예인 될 거라고 이야기하고 다녔어요. 결국 개그맨으로서 꿈을 이뤘죠. 하지만 국제적인 코미디언 되기 위해선 아직 영어는 브로큰이잖아요. 그런 결핍이 제가 아침마다 일어나서 영어학원에 가게 만들고, 전화 영어를 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김영철은 공부가 없는 개그는 공허하다고 강조했다. 매일 4개의 신문을 읽는 이유다. 그가 인터뷰 도중 이야기했
[박창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