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레드벨벳이 지난 3일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빨간 맛'을 부르자 북한 관객들은 경직됐다. 현지에서 취재한 기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동도 없었다'. 하지만 정작 무대에 오른 레드벨벳은 당황하지 않고 노래에 담긴 '과즙미(과즙이 터지듯 신선한 아름다움)'를 유감없이 선보였다. K팝에서 가장 급진적인 음악을 추구하면서 국내에서부터 익숙히 겪어온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레드벨벳이 팬들을 설득하기 위해 보낸 지난한 세월은 음원 차트에 새겨져 있다. 지니뮤직에 따르면 2014년 데뷔한 레드벨벳이 앨범 타이틀곡으로 기록한 실시간 차트 1위 점유 시간은 2016년까지 35시간에 머물다가 지난해에 이르러 219시간으로 펄쩍 뛰었다. 데뷔 3년 만에 국내 팬들을 설득하는 데 비로소 성공한 것이다. 오는 5월 일본 투어 콘서트를 시작으로 본격적 해외 공략에 들어가는 레드벨벳의 S(강점·Strength) W(약점·Weakness) A(소속사·Agency) G(목표·Goal)를 분석해봤다.
1) 강점(Strength): "레드벨벳이니깐 괜찮아" 어떤 노래 불러도 용인되는 확장성
레드벨벳의 강점은 어떤 콘셉트를 선보여도 어색하지 않은 확장성에 있다. 밝고 대중적인 콘셉트의 '레드'와 감각적이고 세련된 느낌의 '벨벳'을 번갈아 시도하면서 이제 실험성이 강한 노래를 불러도 용인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같은 기획사 선배그룹 소녀시대가 진지한 곡을 발표했을 때 대중이 당황하고, 에프엑스(f(x))가 4차원 세계를 표방하던 끝에 이미지의 덫에 걸려버린 것과 대조적이다. 정병욱 대중음악 평론가는 "아이돌이 대체로 구체적인 이미지를 의도하는 것과 달리 레드벨벳은 추상적으로 이원화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며 "'레드'와 '벨벳' 두 가지를 넘어서는 다채로운 스토리텔링과 스타일링이 가능해졌다"고 평가했다.
여성 팬의 지지도 탄탄하다. 걸그룹에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귀엽고 순종적인 이미지를 탈피한 게 한몫했다. 리더 아이린은 TV프로그램에 나와서 잘 웃지 않는다는 일각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차분한 성격을 애써 감추려들지 않았다. 예스24에 따르면 그가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는다고 밝힌 후인 지난달 18~20일 이 책의 판매량은 2배 이상 증가(전주 같은 기간 대비)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담당하는 조승호 리딩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여타 걸그룹과 비교했을 때 여자 팬이 많다"며 "여성 팬은 남성 팬에 비해 아티스트를 위해 더 많은 지출을 하기 때문에 향후 긍정적 실적이 기대된다"고 했다.
이들의 노래는 대중과 평단에서 고른 지지를 받고 있다. 음원차트 일간 1위를 11일간이나 차치한 '빨간 맛'의 경우 이번 아이돌 SWAG 분석에 참여한 4명의 청자로부터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빨간 맛'에 대해 김반야 SBS 라디오 작가는 "강렬한 시각, 달콤한 미각, 통통 튀는 청각까지 모든 감각을 만족시키는 상큼한 과즙미가 있다"고 평가했으며 정병욱 대중음악 평론가는 "데뷔 당시의 감성으로 4년차 전성기를 여는 반전의 트랙"이라며 "중독적인 매력에 결코 쉽지 않은 송라이팅과 감각적 가사로 무장한 아이돌 팝의 최전선"이라고 말했다. 최근 발표한 R&B 댄스곡 '배드보이'에 대해 미묘는 "고혹적인 우아함이 '귀여움'이란 맥락 속에 안착하는 마술"이라고 극찬했다.
2) 약점(Weakness): SM 내 사실상 유일한 걸그룹…어깨가 무겁다
반면, 소녀시대와 f(x)가 활동을 대폭 줄이면서 레드벨벳이 갖는 부담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내 활동 중인 사실상 유일한 걸그룹이 되면서다. 2014년 디지털 싱글을 두 번 발매했던 이들은 2015년 이후 매년 앨범을 2차례 이상 발매하는 등 컴백 주기가 점점 촘촘해지고 있다. 정병욱 평론가는 "강한 푸시로 인해 활동 공백 주기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며 "노래와 안무 습득, 활동만으로 버거울 멤버들이 매번 새로운 콘셉트의 세부사항을 숙지하고 안무의 완성도를 높일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리더 아이린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도 약점으로 꼽힌다. 김반야 작가는 "아이린은 모든 걸그룹을 통틀어 가장 눈에 띄는 리더지만 이 때문에 다른 멤버들이 잘 안 보인다"고 꼬집었다. 미쓰에이, f(x) 등 특정 멤버 인기가 절대적이었던 걸그룹은 활동이 길어지면서 팀의 원동력을 상실하기도 했다.
3) 소속사(Agency): 20년 걸그룹 노하우, 레드벨벳에 집대성하다
실험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레드벨벳이 대표 아이돌 그룹으로 자리 잡는 데는 소속사의 힘이 절반 이상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SM엔터테인먼트가 레드벨벳 카드를 내민 건 2014년으로 2NE1, 포미닛, 미쓰에이 등 강한 이미지를 지닌 걸그룹 인기가 한풀 꺾였을 때다. 아이돌 전문 웹진 편집장 미묘는 "SM이 아닌 다른 기획사였다면 데뷔 초 다소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 팀을 꾸준히 밀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소녀시대와 f(x)를 통해 얻었던 성공과 실패 포인트를 이 팀에 정반합으로 버무려냈다"고 해석했다.
SM은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진화도 착실히 진행하고 있다. '효리네 민박2' '아는 형님' '키스 먼저 할까요' 등 인기 방송이 전부 SM엔터 자회사 SM C&C 작품이다. 예능·드라마 제작을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힐 뿐만 아니라 레드벨벳을 포함한 소속 연예인의 출연 창구도 확보하는 전략이다. 다만, 향후 SM이 제작한 콘텐츠에 SM 소속 연예인이 지속 등장하게 된다면 대중이 갖는 피로도가 누적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4) 목표(Goal): 전력질주 템포 늦추고 노래와 퍼포먼스 완성도 지속
결국 레드벨벳의 롱런을 위해선 전력질주하듯 달려온 활동 템포를 한 박자 늦춰 노래와 퍼포먼스의 완성도를 유지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정병욱 평론가는 "지금처럼 타이트한 일정을 소화해서는 이미지와 체력이 빠르게 소진된다"며 "가수 생명과 효율적 이윤 창출을 위해서라도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김반야 작가는 "레드벨벳은
[박창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