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종영한 중국 텐센트 `창조 101`을 통해 탄생한 걸그룹 화전소녀 멤버 11인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텐센트는 한국 걸그룹 우주소녀 출신인 미기(앞줄 왼쪽 둘째)와 선의(앞줄 왼쪽 다섯째)에게 향후 2년간 화전소녀 활동에만 집중할 것을 요구하며 논란을 빚었다. |
최근 종영한 중국 텐센트 TV 예능 프로그램 '창조 101' 마지막회에서 1·2위는 모두 한국 걸그룹 '우주소녀' 출신이 차지했다. 이 팀의 중국인 멤버인 미기와 선의가 각각 1억8000만표가 넘는 표를 얻으며 최고 인기 출연자로 프로그램을 마무리한 것이다. 두 사람은 '창조 101'에서 탄생한 11인조 걸그룹 '화전소녀'(훠젠샤오뉘·영어명 로켓걸스)로 향후 2년간 활동하게 된다.
문제는 중국 제작진이 이들에게 앞으로 2년 동안 화전소녀 활동에 전념할 것을 돌연 요구하면서 불거졌다. 우주소녀의 소속사인 스타쉽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최근 중국 제작진이 중국 매체와 인터뷰에서 '화전소녀는 2년 동안 화전소녀 활동만 할 것'이라고 밝혔다"며 "처음 계약할 때는 '화전소녀' 활동과 원래 팀 활동을 병행하기로 해놓고 우승하자 말을 바꿔 당혹스럽다"고 하소연했다. 지난달 29일엔 미기, 선의의 중국 메신저 웨이보 닉네임이 '우주소녀'에서 '화전소녀'로 바뀌었다.
'창조 101'은 텐센트가 CJ E&M(현 CJ ENM)에서 '프로듀스 101' 판권을 정식 구매해 리메이크한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덕분에 그동안 한국 TV 프로그램을 무단 복제하기에 급급하던 중국 기업들 태도가 진일보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왔다. 텐센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조회수도 약 48억회에 이르며 프로그램은 대박이 났다. 게다가 프로그램 관련 상품을 시청 도중 바로 구매할 수 있게 한 점은 CJ보다도 한 발 더 나아갔다. 텐센트는 이밖에도 JYP와의 합작법인에서 중국 보이그룹을 내놓고, 2016년 웨잉과 함께 YG엔터테인먼트에 8500만달러(약 950억원)를 투자하는 등 한국 엔터산업에서 보폭을 확장 중이다.
하지만 '창조101' 성공 후 중국 제작사의 태도 변화를 놓고 업계에서는 "한국 프로그램 제작 노하우를 다 빼먹고 나서 본색을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중국 기업들에 대한 국내 엔터업계의 경계심은 중국의 한국 내 투자가 늘면서 최근 들어 더욱 커지고 있다.
그 단적인 사례가 바로 연예기획사 판타지오다. 배우 서강준, 워너원 옹성우, 걸그룹 위키미키가 소속된 판타지오는 지난달 15일 주가가 528원까지 떨어졌다. 같은 달 1일 912원에서 2주 만에 42% 이상 폭락한 것이다. 주가 급락 배후로는 판타지오 최대주주인 중국 JC그룹 한국지사 골드파이낸스코리아가 지목된다. 지난 6월 11일부터 18일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보유 주식 1362만4745주(지분 18.7%)를 89억원에 처분해주가 급락을 유발했기 때문. 이후 JC그룹 관계자가 지난달 임시 주주총회에서 "포트폴리오 조정을 위해 지분을 일부 매각한 것일 뿐 경영권을 넘길 계획은 없다"고 밝혀 주가는 이달 초 700원대까지 회복됐다. 하지만 증권가 관계자는 "사실상 엑시트(Exit·투자 후 출구 전략) 수순에 접어든 게 아니겠냐"고 내다보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이 회사 주가는 1000원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2008년 나병준 씨가 N.O.A라는 이름으로 설립한 판타지오는 2016년 8월 중국 JC그룹의 한국지사에 지분 50.07%를 넘겼다. 당시 JC그룹은 경영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난 해 12월 이사회를 열고 나병준 씨를 대표에서 일방적으로 해임하고 워이지에 JC그룹 회장이 대표로 취임했다. 자회사 판타지오 뮤직의 창립자 우영승 씨 또한 지난 5월 이사회를 통해 대표 자리에서 해임됐으며 후임 대표는 JC그룹 한국법인장이 맡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 등에서 두 중국인 대표의 전문성을 문제삼기도 했다. 최근 JC그룹은 판타지오, 판타지오뮤직 엔터테인먼트 부문 총괄 사장으로 샹양(Xiang Yang) 씨, 재무 부문 총괄 사장으로 황금정(Wong Kam Ting) 씨를 영입했다. JC그룹 관계자는 "상양 사장은 일본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풍부한 경험을 갖췄고 황금정 재무 부문 사장은 홍콩 주식시장과 IR 분야에 경험이 많아 아티스트의 해외 진출을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중국 최대 엔터테인먼트 그룹 화이브러더스가 유정훈 전 쇼박스 대표와 함께 영화투자배급사 메리크리스마스를 창립했고 티아라 출신 지연이 중국 룽전과 지난 5월 계약을 맺는 등 중국 자본의 한국 엔터 업계 상륙이 가속화하고 있다. 김헌식
[박창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