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세훈, 백현, 레이, 카이, 찬열, 시우민, 디오, 첸, 수호. /사진 제공=SM엔터테인먼트 |
"파워 파워/네가 나를 볼 때/서로 같은 마음이 느껴질 때"
이달 초 아랍 에미리에이트(UAE)에 놀러 간 A씨는 소위 '국뽕(국가에 대한 자긍심이 마약을 맞은 것처럼 심해지는 상태)'에 취하는 경험을 했다. 연간 방문객이 8000만명에 달하는 두바이몰 앞에서 펼쳐지는 '두바이 분수쇼'에서 엑소의 한국어 노래 '파워(Power)'가 재생되고 있었던 것. 휘트니 휴스턴, 마이클 잭슨, 아델 등 세계적 스타의 곡만 틀기로 유명한 이 분수쇼에 엑소 노래는 올해 1월 한국 가수 작품으로는 처음 선정됐으며 9월, 10월 말~11월 초 두 차례나 재생 목록에 추가되는 기염을 토했다.
(△유튜브 동영상: 엑소 '파워'가 배경음으로 나오는 두바이 분수쇼를 보는 SM 패밀리)
보이그룹 엑소가 K팝의 새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엑소는 이달 정규 5집을 발매한 이후 누적 음반 판매량 1000만장을 달성했다. 2000년대 이후 데뷔한 가수가 앨범 1000만장을 판매한 건 처음이다. 한한령(限韓令)으로 K팝 가수 공연에 빗장을 걸어 잠근 중국에서도 노래를 냈다 하면 샤미뮤직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1위에 오르고 있고, 일본에서는 첫 싱글과 첫 앨범을 모두 오리콘 주간 차트 1위에 올린 최초의 해외 그룹이 됐다. 1000만 가수 엑소를 S(강점) W(약점) A(기획사) G(목표)로 살펴봤다.
S(강점): 대중성과 완성도를 모두 갖춘 K팝
현 세대 능동적 팬덤은 가수가 재밌는 춤을 선보이면 이를 모방한 동영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다. 지난해 인스타그램을 강타한 엑소의 '코코밥(Ko Ko Bop)' 안무도 그렇다. 전세계 수만 명의 팬이 'KoKoBopChallenge(코코밥챌린지)'라는 해시태그(게시물의 용이한 검색을 위해 붙인 메타데이터)와 함께 엑소 춤에 도전했다. 그간 '○○챌린지'로 퍼진 노래들은 모두 안무가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누가 들어도 흥이 나는 보편적 멜로디를 지니고 있었다.
엑소의 노래는 전반적으로 대중성이 높다. "으르렁 으르렁 으르렁 대"('으르렁') "We got that power power"('파워') "나나나나/나나나나"('러브 미 라이트') 등 누구든 듣기만 하면 "아 그 노래"라고 할 법한 곡들로 디스코그래피가 가득하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인 정병욱 음악평론가는 "고퀄리티 K팝 사운드를 대중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구현해 지속적인 팬덤 확장이 가능하다"며 '폭 넓은 장르와 스타일을 소화하는 퍼포먼스 능력'을 이 팀의 강점으로 꼽았다.
소속사는 엑소의 노래를 발굴하며 SM 아이돌의 전형성을 벗어나기 위한 시도를 이어왔다. 화려한 화음에 기반한 풍성한 사운드를 중심으로 R&B(리듬앤드블루스), 레게, 댄스 등 여러 장르를 차용해온 것이다. 음악웹진 '이즘(IZM)' 필진인 김반야 음악평론가는 "뻔한 SMP(SM 아이돌이 자주 하는 음악 스타일. 사회 비판적이고 어두운 느낌이 특징)에서 탈피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는 작곡과 곡 구성, 사운드"에 엑소의 장점이 있다고 봤다. 황선업 음악평론가('이즘' 필진)는 "비주얼, 퍼포먼스, 음악 등 모든 면에서 높은 능력치를 보여주는 완성형 보이그룹"이라고 평가했다. 잘생긴 외모와 칼 군무, 노래 등 3세대 K팝의 기본 요소를 전부 갖췄다는 의미다.
↑ 엑소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
W(약점): '어벤져스' 속에 아이언맨과 헐크가 보이지 않는다
엑소만큼 팬덤과 대중 인지도 사이 괴리가 큰 보이그룹도 없다. 음반을 내면 각국 음원 차트를 석권하고, 이번 앨범도 110만장 넘게 팔렸다는데, 정작 "'으르렁' 외엔 국민 히트곡이 부재하는 것"(김반야 평론가)이다. 정병욱 평론가는 "확고한 음악적 대표성이 없다"며 "언제든 제2, 3의 엑소로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일반인과 엑소엘(EXO-L·엑소 팬클럽)이 느끼는 온도 차에 대해 황선업 평론가는 "'어벤져스' 속에 아이언맨, 헐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앨범을 낼 때마다 대규모 티저 영상, 공이 많이 들어간 노래 등 블록버스터 영화 느낌을 풍기는데 안에 있는 '배우'는 잘 보이지 않는다"며 "팬들은 개별 멤버 장점을 알겠지만, 일반 청자의 입장에선 누가 무엇을 잘하는 구성원인지 개개인 매력을 알기 힘들다"고 부연했다.
↑ 엑소 정규 5집 `DON`T MESS UP MY TEMPO`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
A(기획사): 아이돌 종가 자신감 회복하다
방탄소년단이 이끄는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트와이스가 소속된 JYP의 선전으로 한동안 SM의 자존심이 많이 구겨졌다. 급기야 올 8월엔 JYP에 코스닥 상장 연예기획사 시가총액 1위 자리를 빼앗기며 SM 위기론까지 대두됐다(현재는 다시 SM이 1위). 애초 중국 시장을 타깃팅한 엑소는 한한령의 장기화로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했으며, 플랫폼형 보이그룹 NCT는 콘셉트가 난해하단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미국 대중음악시장에 방탄소년단, 몬스타엑스, 갓세븐이 안착했다는 승전보가 울려오는 동안 SM 아이돌은 상대적으로 잠잠했다.
하지만 최근 이 회사가 보여준 행보는 "SM이 밀면 된다"는 K팝 시장의 오래된 속설을 증명해보이는 것이었다. 엑소는 이번 컴백 이후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 '아티스트 100'에서 9위에 올랐으며,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선 23위를 차지했다. 같은 차트에서 중국 멤버 레이는 솔로 앨범으로 21위에 올라 K팝 솔로 가수로 최고 기록을 세웠다. NCT의 서울팀 NCT127 역시 '미키마우스 90주년 기념 콘서트'에 아시아 가수로서 유일하게 초청되는 등 데뷔 3년차 그룹으로서는 주목할 만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소속 가수들에게 SM의 울타리는 여전히 튼튼한 것이다. 김반야 평론가는 엑소를 '아이돌 종가 SM의 성골'이라고 표현하며 "기획사 서포트와 자본의 힘을 느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황선업 평론가는 "SM 소속 가수들은 예능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자연스럽지 않다"며 "신비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정형화된 기획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 넷플릭스 예능 `범인은 바로 너!`에 출연한 세훈의 모습. /사진 제공=넷플릭스 |
G(목표): 넷플릭스도 알아본 엑소의 매력, 대중에게도 보다 친근하게
넷플릭스는 한국 제작 첫 예능 '범인은 바로 너!'에 엑소 멤버 세훈을 출연시켰다. 같은 팀 멤버 카이는 올해 초 일본 드라마 '봄이 왔다'에서 주연을 맡았으며, 도경수(디오)는 '백일의 낭군님'에 출연해 tvN 월화드라마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지식재산권(IP)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글로벌 방송사와 플랫폼 업체는 1000만 아이돌 엑소 섭외에 혈안이 된 상태다.
결국 이미 팬들과 플랫폼사는 알아본 엑소의 매력을 대중에게도 효과적으로 설득해내는 프로듀싱과 매니지먼트가 필요해 보인다. 황선업 평론가는 "콘텐츠에서 힘을 빼는 게 오히려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보다 친숙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A&R(아티스트 앤드 레퍼토리·악곡의 발굴과 계약)을 보여주는 게 좋을 것"이라고 방향을 제시했다. 김반야 평론가는 "다양한 아이돌 스타일과 캐릭터가 (한국 대중 음악 시장에) 나온 시점에서, 엑소는 개개인의 개성과 실력이 덜 드러나는 편"이라며 "아티스트형 아이돌로서의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병욱 평론가는 "오래 지속된 최
[박창영 문화부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