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컬처 DNA] 손가락을 푸는 도중 보여준 손놀림 하나하나가 예술이었다. 지난 19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시 용산구의 한 청바지 집에서 만난 기타리스트 박주원(38)은 잠이 덜 깬 상태였다. 야행성이라는 박주원은 이내 기타를 들고 연습을 시작했는데, 그 모습을 그대로 찍어도 뮤직비디오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화려한 연주였다. 호날두나 메시가 경기 전 공을 툭툭 차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받는 축구 팬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기타리스트 박주원의 'Maestro, Amigo' 연주와 자기 소개/영상=김종식)
기타리스트 박주원이 최근 4집 '더 라스트 룸바(The Last Rumba)'를 냈다. 그는 2009년 1집 '집시의 시간'을 발매하며 '2010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음반 부문을 수상한 국내 최고 '집시 기타리스트'다. 정규 앨범을 낸 건 5년 만. 제목에 담긴 의미를 묻자 "앨범 수록곡이 룸바 리듬으로 돼 있기도 하고, 30대 말미라는 비장한 각오를 담아 '라스트 룸바'라고 정했다"고 대답했다.
↑ 기타리스트 박주원과 만난 곳은 청바지 디자이너 허정운의 작업실. 박주원의 연습실은 이곳의 바로 맞은편으로, 그는 허정운 디자이너와 교류하며 많은 영감을 얻고 있다고 했다. /사진=김종식 |
-한국 기타 연주자들이 존경하는 아티스트 중 한 분이신데요. 박주원 씨 스스로가 좋아하는 연주자는 누구인가요.
▷록 밴드 딥 퍼플의 리치 블랙모어를 수 년간 추종했어요. 록 스타가 되는 게 꿈이었거든요. 그러다 리치 블랙모어가 지미 헨드릭스의 팬이라는 사실을 알게 돼 헨드릭스도 좋아하게 됐어요. 윙베 말름스텐까지 포함해 그렇게 세 분의 연주를 많이 연습했습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생기면 많이 따라하시나 보군요.
▷어렸을 때는 엄청 많이 카피했어요. 실수음까지도 카피했죠. 실수까지 따라 해야 그 사람의 손버릇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요. 록 블루스를 하는 스티비 레이 본 같은 경우 라이브 영상을 보고, 그 연주까지 카피했어요. 카피를 한 번 한 것도 아니고, 일 년 후에 다시 듣고 또 해봐요. 한 번 해서는 자기 것이 안 되거든요. 레슨하면서도 학생들에게 카피를 시켜보면, 몇 달 뒤 까먹더라고요. 그건 자기 연주가 된 게 아니죠.
↑ 박주원 기타리스트는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했다. 고등학교에 가서야 자신의 연주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보면서 자신감을 얻었다고. /사진=김종식 |
-여러 번 카피하는 게 지겹진 않았나요.
▷레드 제플린, 딥 퍼플의 음악은 제가 10대, 20대, 30대를 지나며 전부 다르게 들리더라고요. 그들의 앨범은 40~50년 전에 녹음한 그대로인데. 마치 새로 연주한 양 다르게 들려요. 특히 새롭게 들리는 건 레드 제플린 지미 페이지의 연주예요. 원래는 옛날 음악이 더 촌스럽게 들려야 정상적이잖아요. 그런데, 40~50년째 명성을 유지하는 기타리스트들은 사랑받는 이유가 있더라고요. 자신만의 독자적 길을 가는 거죠.
-다른 사람의 연주를 카피하다 보면 영향을 많이 받게 되지 않나요.
▷저는 음악 감상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에요. 한번 꽂힌 걸 여러 번 듣죠. 좋은 곡을 발견하면 주야장천 듣는 거예요.
-기타는 원래 서양 악기잖아요. 한국인 연주자로서 박주원 씨가 발휘할 수 있는 독창성은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집시 음악을 연주하지만 항상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해요. 한국 사람이 하는 집시 음악에서는 국악 요소가 드러나야 해요. 일부러든지, 자연스럽게든지. 물론 자연스럽게 나오는 게 가장 좋죠.
↑ 그는 축구선수를 위한 헌정곡도 만들었다. 그는 박주영이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스트라이커라고 생각한다며 꼭 부활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사진=김종식 |
-서양 음악에 들어갈 수 있는 국악적 요소가 무엇인가요.
▷해금 같은 특정한 악기가 들어갔다고 '국악적'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예를 들어, 허비 행콕과 협업으로 유명한 아프리카 출신 기타리스트 리오넬 루에케는 재즈 연주에도 아프리카 특유의 리듬감을 계속 가져가요. 미국 연주자들과는 다른 요소가 있어요.
-이번 음반에 소리꾼 유태평양 씨와 함께하신 것도 그런 이유라고 보면 될까요.
▷'유라시아 익스프레스'라는 곡인데요. 나도 한번 인위적이라도 한국적인 요소를 나타내보자는 마음이었어요. 외국 사람들, 예를 들어 스페인 친구들에게 제 음악을 들려주면, '뭔가 다른 게 있다'고 해요. 서양 음악을 하고 있지만 한국 연주자로서 낼 수 있는 멜로디컬한 소리를 음악으로 드러내는 거예요. 한국적인 게 세계적인 것 아니겠습니까. 왜냐면 자기만 할 수 있으니까요. 내년부터는 장구도 배우려고요. 국악의 메커니즘을 더 깊이 공부해 다음 앨범에는 조금 더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려고요.
-'10월 아침'은 윤시내 선생님과 함께 불렀는데요. 다른 가수 노래에 피처링하신 게 7년 만이라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설득했나요.
▷며칠 고민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여차하면 내 목소리로 녹음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연락이 왔어요. 하시겠다고요. 그때부터 철저해지시더라고요. 자신이 그 멜로디를 완벽하게 습득하는 데 준비 기간이 얼마큼 필요한지부터 말씀해주시고요. 안 하면 안 하는 건데, 한 번 하면 끝까지 책임지는 것. 그게 바로 프로의 자세인가 싶었습니다.
↑ 박주원은 창작자로서의 영감은 주로 사람의 대화와 일상생활에서 얻는다고 했다. 작곡을 하겠다고 어딘가에 고립되는 건 스스로의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고. /사진=김종식 |
-윤시내 선생님과 컬래버레이션을 원한 이유가 있나요.
▷7년 전 부활과 함께하신 '이별에서 영원으로'를 듣고, 저도 한번 같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 시대 가수들의 목소리를 좋아해요. 정미조, 패티김, 조영남 선생님. 80년대 후반에 저희 집은 카페를 운영했는데요. 어머니께서 틀어주신 음악이 다 가요였거든요. 저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거기서 숙제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동요보단 가요를 더 많이 듣게 됐죠.
-어머니가 첫 앨범 보시고 좋아하셨겠네요.
▷첫 콘서트를 하는데, 아들이 가운데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우셨죠.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예체능 고등학교가 아니면 예체능을 하기 힘들었는데요. 누가 명문대 많이 보내는지에 학교 성과가 결정되는 때였죠. 미술, 기타, 피아노 잘하는 건 아무 상관없이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보충 수업까지 받았어요. 저는 선생님께 '왜 제가 돈까지 내가면서 듣고 싶지 않은 수업을 들어야 하냐'고 따졌어요. '얻다 대고 대드냐'는 반응이 돌아오더라고요. 어머니도 처음엔 그런 분위기 때문에 공부를 시키려고 하셨는데요. 제가 고등학교 들어가서 밴드부에 들어가서 기타를 다시 잡은 거죠. 그 시기에는 뭘 보고 나면 진로가 확 결정되잖아요. 윙베 말름스텐 연주를 보고 진로를 결정했죠.
-앨범에 수록된 '송 포 더 웨스트 시맨(Song for the west seaman)'은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전사한 군인들을 위한 추모곡이라고 들었는데요. 천안함 피격 사건이 발발한 지 벌써 8년이 지났는데, 지금 추모곡을 내신 이유가 있나요.
▷제가 해군 출신인데요. 제2연평해전 발발하고 이틀 후에 입대했고요. 천안함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데뷔 후 첫 콘서트를 가졌어요. 물론 365일은 아니지만, 항상 가슴속에 품고 있었어요. 음악으로 전우들의 희생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면 의미 있겠다고 생각해서 수록하게 됐죠.
-추모곡인데도 분위기가 밝던데요.
▷천안함 침몰 사건 생존 장병이 노래를 듣고 얼마 전에 인스타그램 쪽지를 보내줬어요. '노래의 밝은 면이 좋았다'고. 누가 자신에게 군 생활이 힘들었냐고 물어보면 '즐거운 추억이었다'고 한대요. '송 포 더 웨스트 시맨'을 들으면 선후임, 동기들이랑 보냈던 그 시절 행복한 시간이 떠올라서 너무 좋다고요. 또 천안함 장병을 정치적 시각이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 봐줘서 감명 받
박주원은 오는 24일 오후 7시 서울시 마포구 대흥동 마포아트센터에서 단독 콘서트 '더 라스트 룸바'를 연다. 가수 윤시내가 게스트로 나와 이번 앨범 수록곡, 그리고 자신의 히트곡 메들리를 박주원의 연주에 맞춰 들려준다. (02)3143-5480
[박창영 문화부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