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뺑반> 포스터/사진=네이버 영화 |
고군분투 수사 드라마에 통쾌한 속도감
통쾌한 권선징악 수사물에 현란한 카레이싱 액션이 접목됐다. 신명나는 재즈색소폰 선율에 맞춰 초호화 액션카들이 저마다 내달리며 추격전을 벌인다. 버즈-아이 뷰 숏으로 펼쳐지는 레이스 트랙의 진풍경과 인천 도로를 질주하는 설렘은 덤. 영화 <뺑반>의 이야기다.
F1 레이서 출신의 사업가 조정석(정재철 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범죄도 마다하지 않는 통제불능이다. 조정석의 혐의를 잡기 위해 수사망을 조여 가는 베테랑 경찰 염정아(윤지현 역)과 공효진(은시연 역). 공효진은 무리한 강압 수사를 벌였다는 오명을 쓰고 관할서 뺑소니 전담반, ‘뺑반’으로 좌천된다.
↑ <뺑반> 스틸컷에 등장한 배우 공효진/사진=네이버 영화 |
공효진은 뺑반 첫 출근에 만삭의 상사 전혜진(우선영 역)을 마주한다. 반지하 비품 창고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사무실도, 풀을 꺼내주며 영수증을 붙이라는 한량같은 상사도 불만스럽다. 전혜진과의 불편한 만남은 뒤로 하고, 공효진은 차에 대한 천부적 감각을 지닌 에이스 순경 류준열(서민재 역)과 뺑소니 현장으로 출동한다. 매뉴얼도 인력도 없이 수사하는 열악한 뺑반. 공효진은 현장에 남은 물까지 핥으며 육감으로 수사하는 류준열이 못마땅하지만 뺑반과 주변 인물들의 인간적인 모습에 마음을 열어간다.
한편 낮에는 뺑반으로, 밤에는 엘리트 내사과로 재철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던 공효진은 뺑반이 수사 중인 미해결 사건에 대해 알게 되고 미해결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조정석임을 직감한다.
↑ <뺑반> 스틸컷에 등장한 배우 조정석/사진=연합뉴스 |
흥행보증수표 총출동, 캐스팅이 다 했다
영화 초반부터 눈에 띄는 건 배우들의 명품연기다. 주·조연 구분할 것 없이 탄탄한 연기 내공을 갖춘 초호화 출연진들은 영화가 공개되기 전부터 화제였다. 그리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특히 류준열과 공효진 특유의 찰진 연기가 인상적이다. 류준열은 얼굴도 모르는 상사인 공효진과의 첫 만남에서 거대한 포돌이 탈을 고급차 조수석에 들이밀며 등장한다. 질색하는 공효진에게 자신을 뺑반의 에이스라고 소개하는 류준열의 허술함은 관객들의 웃음보를 자극한다. ‘응답하라1988’ ‘택시운전사’ ‘독전’ 등 흥행대작들을 이뤄낸 능청스러운 연기가 빛을 발한다.
첫 악역에 도전한 조정석의 열연은 말할 것도 없다. 많은 드라마와 영화·뮤지컬 등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조정석은 잔혹한 악인인 동시에 유약한 정신 상태에 놓인 정재철의 면면을 잘 소화했다.
↑ <뺑반> 스틸컷에 등장한 배우 염정아와 공효진/사진=네이버 영화 |
JTBC 금토드라마 <스카이캐슬>로 연일 주가를 높이는 염정아(윤지현 역)는 목표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야망덩어리로 완벽히 변신했고, 자타공인 공효진의 정보원이자 불량 검사 역할을 맡은 손석구(기태호 역)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공효진의 무리한 수사방식에 사사건건 불평하면서도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공효진을 향한 손석구의 일방적 로맨스를 지켜보는 것도 영화의 관람포인트 중 하나다.
작중 류준열의 양아버지로 분한 이성민·교통 사고 현장이라면 경찰보다 빠르게 도착하는 렉카차 기사 김기범(한동수 역) 등 주변 인물들의 대화에서는 섬세한 유머 코드가 돋보인다. 뺑반과 동네 사람들이 모여 삼겹살을 구워먹는 장면은 구수한 휴머니즘까지 느껴질 정도. 류준열과 이성민은 실제 부자지간처럼 사사건건 티격대며 호흡을 맞춘다. 배가 아플 정도로 웃긴 건 아니지만 지루해질만하면 한 번씩 피식 웃게 만드는 재미는 쏠쏠한 편.
↑ <뺑반> 스틸컷에 등장한 배우 류준열/사진=네이버 영화 |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나요
한국 영화에서 과소비된 수사물의 한계일까.
문제는 이렇게 연기 잘하는 배우들을 모아놨는데 배우들의 얼굴 위로 진부함이 겹친다.
탄탄한 연기 내공을 갖춘 조정석이 분한 정재철 역은 여태까지 없던 유형의 악인임에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을 지울 수가 없다. 탈세, 횡령, 뇌물 상납 심지어 뺑소니까지 극악무도한 악행을 저지르고도 멈출 줄 모르는 광기는 이미 천만 영화로 흥행한 <베테랑>의 악역 조태오와 꼭 닮았다. 보이지 않는 정신줄이 톡 끊어지면 이성을 잃고 맹수가 되는 정재철의 폭주를 표현하기 위해 조정석은 극중 내내 최선을 다해 말 더듬는 연기까지 했건만, 노력만 가상할 뿐 위화감이 더 크다.
중간 고리가 빠진 듯한 아쉬운 개연성은 이뿐만이 아니다. 점점 과감해지는 정재철을 막기위해 독기를 내뿜는 뺑반과 주변 인물들의 모습은 근거가 부족하다.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는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히어로 영화에서나 볼만한 다수 인물들의 의기투합은 이미 지나치게 소비된 클리셰다. 톡톡 튀는 인물들의 첫 등장으로 잘 짜여진 영화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 전개가 아쉬워지는 이유다. 예측 가능한 반전과 요즘 영화에서는 쉽게 보이지 않던 판타지적 구성 요소들이 종종 등장해 영화의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 <뺑반> 촬영 현장/사진=네이버 영화 |
노련한 연출이 빚어낸 카 액션, 볼거리는 풍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환상 호흡과 박진감 넘치는 카레이싱은 확실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조정석의 ‘버스터’부터 시작해 화려하게 튜닝한 스포츠카들이 다양하게 선보인다. 특히 자동차 애호가라면, 보는 내내 눈이 즐거울지도.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순찰차, 렉카차들도 '뺑반'의 세련된 카 액션에서는 주역으로 거듭났다.
배우들이 직접 촬영한 카 체이스 장면은 타이트하고 짧은 컷들이 주를 이루는 일반적인 액션 촬영 방식에서 벗어나 롱테이크 긴 호흡으로 속도감과 짜릿함을 선사한다. 바삐 돌아가는 호크 렌즈 카메라 앵글은 배우들의 생생한 감정선을 포착해 현실성을 높였다.
↑ 뺑반 제작발표회 현장/사진=MBN |
비 내리는 트랙에서 주고받는 류준열과 조정석의 전투 활극도 생동감 넘친다. 다소 구시대적인 경찰들의 성장 스토리와 뜬금없는 신파에 면역이 있다면, 개성 넘치는 배우들의 열연과 저돌적인 카레이싱이 주는 흥분만으로도 충분히 즐길거리가 있다. 러닝타임 133분. 1월 30일 개봉.
[MBN 온라인뉴스팀 한희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