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방송된 엠넷 '프로듀스 101' 시즌4 '프로듀스 X 101'에 YG엔터테인먼트가 연습생을 내보냈다. 최근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만난 제작진에게 'YG 연습생을 섭외하기 위해 삼고초려를 했냐'고 물었더니 'YG에서 먼저 참여 의사를 알려왔다'고 답했다. YG는 '프로듀스 101' 시즌1이 시작한 2016년 이래 한 번도 본사 연습생을 출연시킨 적이 없었다.
이번 시즌에서 '프로듀스 101'은 'YG 참여' '빌보드 진출' '계약 기간 5년으로 연장' 등 세 가지 변화로 또 한번의 혁신을 단행했다. 이는 단순히 '프로듀스 101'의 성장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2019년 한국 아이돌 시장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게 전문가들 해석이다. '프로듀스 X 101'에 생긴 세 가지 변화를 K팝 시장 상황과 엮어 살펴봤다.
◆ YG, 왜 나오는 걸까
국내 굴지 엔터테인먼트 회사 YG는 방송사들과 관계가 껄끄럽기로 유명하다. 엠넷과는 2016년부터 사이를 멀리해왔다. 그해 MAMA(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 소속 아티스트 전체가 불참한 것을 시작으로 엠넷 출연 범위를 크게 좁혔다. 특히 2017년엔 '프로듀스 101'을 제작했던 한동철 PD를 영입해 그 대항마 격인 '믹스나인'을 직접 제작함으로써 대립각을 세웠다.
YG가 돌연 '프로듀스 101'에 연습생을 출연시킨 것에는 이 회사를 둘러싼 여러 악재가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YG는 소속 걸그룹 블랙핑크가 미국 시장에서 '빌보드 200' 24위를 기록하는 등 최고 호조를 보이고 있음에도 회사를 향한 시선이 싸늘하다. 빅뱅 핵심 멤버였던 승리(본명 이승현·29)가 연루된 '버닝썬 게이트' 때문이다. YG는 과거 소속 연예인들이 마약 투약 의혹을 받을 때 대처를 소홀히 함으로써 횡령과 성접대로 얼룩진 이번 사건을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연초 4만5000원대를 넘나들던 주가는 3만5000원대로 떨어진 이후 좀처럼 상승하지 못하고 있다.
'프로듀스 X 101'은 YG로서는 분위기 쇄신을 위한 유용한 카드가 될 수 있다. 이는 승리가 완성형 엔터테이너로 스스로를 포장하다 지금의 사달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최고 스타가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다가 깎아먹은 기업 이미지를 미완성의 연습생들이 지닌 순수한 이미지로 되살린다는 계획으로 풀이된다. 정병욱 음악평론가는 "승리 이슈로 인해 대외적인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YG가 소속사의 배경을 가져가면서도, 기존 이슈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순수한 이미지의 연습생을 내세워 반전의 계기로 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계약기간 연장으로 효율 극대화
이번 시즌으로 데뷔하게 되는 프로젝트 그룹은 총 5년 동안의 계약 기간으로 활동하게 된다. 초반 2년 반은 데뷔조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2년 반은 개별 소속사 활동과 병행하는 계약이다. 이는 1년6개월 동안 활동하고 해체했던 워너원, 2년6개월 동안 활동할 아이즈원과 대조된다.
그동안 '프로듀스 101'이 성공을 반복하며 쌓은 자신감이 표출된 결과다. 시즌2 워너원은 1년 반 동안 활동으로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으며, 시즌3 아이즈원은 일본에서 발매한 첫 싱글로 한국 걸그룹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제 계약 기간을 본격 연장함으로써 데뷔조의 잠재력을 충분히 살리고, 이른 이별로 인한 팬들의 아쉬움도 달래겠다는 전략이다. 김용범 엠넷 전략콘텐츠사업부장은 "팬들이 일생 한 번밖에 못 보는 그룹들과 (일찍) 헤어져야 하는 것이 아쉬웠다"며 "워너원이 세계적으로 활동 영역을 넓힐 수 있었는데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 BTS·블랙핑크 이어 미국 갈까
제작진은 데뷔조의 목표로 빌보드 진출을 내걸었다. 이는 방탄소년단을 필두로 다수 한국 보이·걸그룹이 빌보드에서 줄줄이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생긴 자신감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때 빌보드를 종착지로 달렸던 다수 K팝 그룹이 좌절했지만, 최근 방탄소년단이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서 3연속 1위를 기록하고, 블랙핑크가 24위로 한국 걸그룹 최고 기록을 세우는 등 K팝이 빌보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상승하고 있다. 거대 엔터테인먼트 그룹 CJ ENM의 지원이 보장되는 '프로듀스 101' 프로젝트 그룹으로서는 빌보드의 장벽을 훨씬 쉽게 넘을 만한 조건이다.
물론 새 '프로듀스 101'이 감행한 큰 변화에 긍정적 시선만 있는 건 아니다. 야심 찬 슈팅이 자칫 헛발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5년으로 연장한 계약 기간에 대해 정병욱 평론가는 "'프로듀스 101' 데뷔팀들의 상품성을 오랜 기간 독점하고 싶은 욕심"이라며 "방송을 보며 연습생을 응원하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성공적인 데뷔뿐만이 아닌 그 이후의 안착을 바라게 되는데 그 측면에서는 결코 좋은 조건이 아니다"고 지적
목표로 삼은 '빌보드 진출'에 대해 한동윤 음악평론가는 "K팝 그룹들이 예전보다 해외 진출을 쉽게 하고는 있지만, 외국 시장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해외 활동이 필요하다"며 "제작진이 마케팅 차원에서 내건 슬로건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엠넷 '프로듀스 X 101'은 매주 금요일 오후 11시에 12부작으로 방영된다.
[박창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