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가이자 간축가 이타미 준 |
깊은 밤 술을 마신 후 손가락에 붉은 물감을 묻힌 후 화면에 꾹꾹 눌렀다. 유년 시절 추억을 떠올리면서 석양에 물든 바다 물결을 작품 '바다로부터(From Sea)'에 강렬하게 펼쳤다.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후지산 아래 해안 도시 시즈오카에서 자랐다. 서울 홍지동 웅갤러리 개인전 '심해(心海)'에서 온통 붉게 타오르거나 푸르게 일렁거리는 대형 유화들은 바다에 대한 기억의 잔상들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의 딸이자 건축가 유이화 씨는 "아버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바다만 그렸다. 아침 바다, 칠흑같은 밤바다, 어부의 그물, 파도 흔적을 화폭에 담았다. 바다에 대한 로망을 늘 지니고 있었다"고 말했다.
↑ 이타미 준 'Work'(53X45.5cm) |
손의 감각을 중요하게 생각한 작가는 컴퓨터와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았다. 건축 설계도를 그릴 때도 연필을 잡은 그는 "디지털이 건축을 망치고 있다. 손의 온기로 만든 건축을 회복해야 한다. 마지막 남은 아날로그 건축가가 되겠다"고 했다.
↑ 이타미 준 'Work'(193.9X130.3cm) |
일본에서 곽인식을 스승으로 모시고 한국 추상화 거장 이우환 등과 모노하 운동에 참여했지만 건축가로서 명성이 더 앞섰다. 도쿄 '인디아 잉크하우스', '도쿄 M 빌딩', 훗카이도 코마코마이 '석채의 교회' 등 자연과 어우러진 건축물로 2005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인 '슈발리에 훈장', 2006년 '김수근 문화상', 2010년 일본의 '무라노 도고'상 등을 수상했다. 지난 2003년에는 프랑스 파리 기메 국립미술관이 건축가로는 최초로 '이타미 준, 일본의 한국건축가'전을 열었다.
↑ 이타미 준 '바다로부터(From Sea)'(130.3 X97cm) |
한국 백자와 민화도 열정적으로 수집했다. 그는 "도자기는 스승이다. 도공의 무심한 마음으로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말하면서 고독한 새벽에 그림을 그리거나 도자기를 어루만졌다.
고인은 제주도를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자주 방문했다. 제주 핀크스골프클럽과 포도호텔, 바람·돌·물 미술관, 두손미술관, 방주교회 등이 그의 작품이다.
↑ 이타미 준 딸이자 건축가 유이화 |
그는 부친이 사랑한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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