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재해와 교통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와 우리 삶을 부셔버린다. 무너진 건물과 파괴된 자동차는 인간의 나약함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동양화가 김지훈(34)은 장지에 먹(墨)으로 잿빛 사고 현장을 그렸다. 화재 연기가 먹물로 검게 퍼지는데 마치 인생에 드리운 먹구름 같다. 그림 속에서 작가가 만든 캐릭터 '후라질맨'이 등장해 사고 상황을 살핀다.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진 자동차를 들여다보는가 하면, 속수무책으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다.
↑ '대체 무슨 일이죠'(240x170cm)
작가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을 후라질맨으로 설정했다. 취급주의를 뜻하는 영어 프레질(Fragile)과 우리말 비속어 우라질의 합성어에 히어로 영화 주인공처럼 맨(Man)을 붙여 만든 단어다. 슈퍼맨이나 베트맨, 아이언맨과 같은 영웅과는 달리 스스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도움의 손길이 간절히 필요한 존재다. 바보처럼 공사장이나 사고 현장을 통제하는 원뿔형 교통표지판(칼라콘)을 뒤집어 쓰고 방호복을 입고 있다. 작가는 이 캐릭터를 통해 현대인이 느끼는 소외, 고립, 상처 등을 드러낸다.
후라질맨이 우리 사회 사건사고 현장에 들어가 있는 회화 '대
체 무슨 일이죠' 연작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12일까지 서울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여는 개인전에서다. 동양화 소재를 사용하되, 동시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들이어서 눈길을 끈다.
전시장에는 초겨울 새벽녘 안개가 자욱한 숲의 떨림을 담은 수묵화 '검은숲'도 걸려 있다.
[전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