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샘 해밍턴이 두 아들 윌리엄·벤틀리와 백화점에 갔을 때다. 부산하게 뛰노는 윌리엄이 꽈당 넘어지자, 순간 주변 아주머니 세 분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아이고 아가"라고 소리에 놀란 윌리엄이 울음을 터트렸다. 샘 해밍턴은 정중히 부탁했다. "우리 아이가 혼자 설 수 있게 가만히 지켜봐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윌리엄은 이내 눈물을 그치고, 다시 뛰어 놀기 시작했다. '한국식 육아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샘 해밍턴이 꺼내든 사례 한 도막이다.
샘 해밍턴의 육아 원칙은 '샌드 박스'를 닮았다. 자유롭게 놀되, 적절한 규정선 너머에서 부모가 시선을 떼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친구이자, 적절한 훈육자이고, 자율성을 강조하되, 책임감도 함께 심어주는 그의 육아철학에 대한민국 모든 아버지는 시기의 눈빛을 보낸다. 바쁜 직장인 아빠를 위해 육아방식을 공유해달라는 요청도 부지기수. '방송인'의 타이틀을 잠시 내려두고 '작가'로 나선 배경이다. 제목은 '샘 해밍턴의 하루 5분 아빠랜드(구층책방)'.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동아출판 사무실에서 '육아 기밀'을 공개한 샘 해밍턴을 만났다. 그는 "육아의 전문가도, 달인도 아니지만 일반인도 배우지 않고 누구보다 아이를 잘 양육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고향 호주에서 김치찌개에 소주가 생각난다는 '대한외국인'인 샘 해밍턴. 대단한 한국사랑과는 별개로 한국의 육아 방식을 고집하진 않는다. 지나치게 안전지향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아이의 신체는 보호받을 수 있지만, 독립심·자립심·도전정신은 꺾이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샘 해밍턴이 한국 유아들에게 금기시 되는 김치·밀가루·고기를 가리지 않고 먹이는 까닭도 이와 맞닿아 있다. "윌리엄·벤틀리는 호주에서도 한 여름에 홀딱 벗고, 뜨거운 아스팔트를 맨발로 다녀요. 높은 나무도 거침없이 오르지요. 몸에 흉터는 셀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가요.우리 친구들은 한 단계 더 성숙해 졌을텐데요."
머릿 속에만 맴도는 추상적 사랑보다, 몸으로 부비는 육체적 사랑을 추구한다. 몸으로 부대끼는 놀이에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온 몸으로 느낀다. "부모의 살갗을 느낀 아이는 감정의 풍요를 배울 수 있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샘 해밍턴은 "모든 애들은 아빠한테 관심받고 놀고싶어 한다. 하루에 5분이면 아이들이 가장 갈구하는 부분을 채울 수 있다"면서 "사랑을 받은 아이들은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사춘기에도 아빠와 친구처럼 지낸다"고 했다.
샘 해밍턴의 육아가 특별한 이유는 그 안에 엄격한 규칙이 있어서다. 윌리엄·벤틀리와 막역한 친구처럼 지내는 그이지만, 스스로 해볼 것을 누구보다 강조한다. "한국에서는 '빨리빨리' 문화가 있어서 아이들이 혼자 하는 것을 유독 지켜보지 못합니다. 사실은 애들도 자기가 해보고 싶거든요. 양말도 혼자 신어보고 싶고, 옷도 입어보고 싶고, 씻는 것도 직접하고 싶어 하지요. 윌리엄은 항상 '아빠 이거 어떻게 해'라고 물어봅니다. 30분이 걸려도 지켜봐야죠.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진짜 성장하는 것이니까요."
'육아 슈퍼맨'은 자식 앞에서는 걱정 투성이다. '경계인'으로 살아가야 할 아이들이 받을 수 있는 상처 때문이다. 샘 해밍턴은 "혼혈인이 겪는 안 좋은 경험이 많아 걱정이 많이 된다"면서도 "부모가 자녀에게 '행복'이 주는 참된 기쁨을 가르친다면, 거친 세상
[강영운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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