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에서 허락한다면 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잘라서 (다른 후보 감독들과 함께) 오등분 해 나누고 싶은 마음입니다."
봉준호 감독이 현지시간 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올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같이 수상 소감을 말하자 객석에서는 웃음과 환호가 터져 나왔습니다.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받은 봉 감독은 이날 세 차례나 무대 위에서 각기 다른 수상 소감을 말했습니다.
각본상을 받은 뒤에는 "시나리오를 쓴다는 게 사실 고독하고 외로운 작업이다. 국가를 대표해서 쓰는 건 아닌데, 이 상은 한국이 받은 최초의 오스카상"이라고 말했고, 감독상을 받고서는 영어로 "오늘 밤은 술 마실 준비가 돼 있다. 내일 아침까지 말이다."(I am ready to drink tonight, until next morning)"라고 말해 환호와 박수를 받았습니다.
봉 감독의 화법과 수상 소감은 오스카 캠페인 기간 연일 화제였습니다.
무엇보다 지난달 5일 골든글로브 시상식 때 수상 소감은 명언으로 꼽힙니다. "1인치 정도 되는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다.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쓴다고 생각한다. 그 언어는 영화다." 이 코멘트는 외신이 두고두고 인용했습니다.
봉 감독은 이후 '기생충'이 한국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상 6개 부문 후보로 지명되자 "(언어의) 경계가 다 깨져있었는데 내가 뒤늦게 이야기한 것 같다"며 멋쩍어하기도 했습니니다.
그는 아카데미상 후보 지명 소감을 묻자 당시 "'인셉션' 같다"며 재치있게 답했습니다. "저는 곧 깨어나서 이 모든 것이 꿈이라는 걸 알게 되겠죠. 전 아직 '기생충' 촬영 현장에 있고 모든 장비는 고장 난 상태고요. 밥차에 불이 난 걸 보고 울부짖고 있고요.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좋고 행복합니다."
그는 늘 자신을 낮추고 주변으로 공을 먼저 돌립니다. 지난 2일 외국어영화상과 각본상을 받은 영국아카데미(BAFTA) 시상식에선 "제가 쓴 대사와 장면들을 훌륭하게 화면에 펼쳐준 배우들에게 감사하다. 살아있는 배우들의 표정과 보디 랭귀지야말로 가장 유니버설한 만국 공통어"라며 배우들을 앞세웠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다양성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봉 감독은 "여성, 인종, 성적 정체성 등 그 모든 것이 우리가 의도적으로 의식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하는 여러 노력으로 인해) 균형이 자연스럽게 맞춰질 날이 올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 레드카펫 행사에서 캐나다 언론이 한국이 독창성을 인정받은 데 대한 소감을 묻자 "제가 비록 골든글로브에 와있지만, BTS(방탄소년단)가 누리는 파워와 힘은 저의 3천배가 넘는다. 그런 멋진 아티스트들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나라다. 한국은 감정적으로 역동적인 나라"라고 강조했습니다.
촌철살인 화법도 화제입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