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랑대사좌상 |
문화재청은 경남 합천 해인사에 모셔진, 신라 말기 이후 고려 초기까지 활동한 승려 희랑대사를 조각한 보물 제999호 '건칠희랑대사좌상'을 국보로 승격한다고 2일 밝혔다.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큰 도움을 준 희랑대사는 왕건의 스승으로도 일컬어진다. 왕건도 은혜에 보답하고자 해인사 중창에 필요한 토지를 하사하고 국가의 중요 문서를 이곳에 두었다고 전해진다. 희랑대사의 구체적 생존시기는 미상이지만 조선 학자 유척기(1691~1767)에 따르면 고려 초 기유년(949년 추정)에 나라에서 시호를 내린 교지가 해인사에 남아 있었다고 해 희랑대사의 입적 시기가 949년경으로 추정된다. 중국·일본의 고승 조각상은 흔하나 우리나라의 경우 희랑대사좌상이 유일하다. 정식 명칭의 '건칠(乾漆)'은 삼배 등에 옻칠해 여러 번 둘러 형상을 만든 기법을 뜻한다. 이 기법으로 만든 불상을 보통 '건칠불(佛)'이라 부른다고 한다.
희랑대사좌상은 '가슴에 구멍이 있는 사람'이란 뜻의 '흉혈국인(胸穴國人)'이란 별칭이 상징하듯 가슴에 폭 0.5cm, 길이 3.5cm의 구멍
흉혈(胸穴)은 해인사 설화에 의해 희랑대사가 다른 스님들의 수행 정진을 돕기 위해 가슴에 작은 구멍을 뚫어 모기에게 피를 보시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고승의 흉혈이나 '정수리에 난 구멍'을 뜻하는 정혈(頂穴)은 보통 신통력을 상징한다고 한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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