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제일모직이 만든 르베이지(LEBEIGE)는 1년 만에 인기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브랜드를 출시한 2009년에만 12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2010년에는 3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르베이지는 재킷이나, 코트 한 벌에 150만원을 호가하기 때문에 만드는 과정도 까다롭다. 디자인은 제일모직이 직접 담당하지만, 원단을 재단하고 봉제해 옷을 제작하는 과정은 임가공업체가 맡는다. 일일이 사람 손을 거치는 작업이기 때문에 임가공업체의 실력에 따라 명품 옷의 품질이 판가름 난다.
“2010년 봄 청와대 주문으로 옷을 5벌 만들었어요. 4월 대통령 국외순방 때 김윤옥 여사가 입은 옷이 제가 만든 옷이더군요. 이서현 부사장이 국외 패션쇼를 다닐 때도 저희 회사가 만든 옷을 들고 나가기도 합니다.”
최유식 새천년어패럴 사장(54)은 제일모직 브랜드인 르베이지, 띠어리(theory)의 여성 의류 임가공업체를 운영한다. 서울 봉천동의 작업장에서는 40여명의 직원들이 재단과 봉제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하루에 르베이지, 띠어리 의류 50여벌을 생산한다. 두 브랜드의 옷을 납품하며 올해 18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의상실에서 기술을 익혔습니다. 97년부터 한섬의 타임(TIME), 마인(MINE) 브랜드를 맡으면서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죠. 2004년부턴 오브제(obzee)의 옷을 제작했고, 제일모직과는 2008년부터 논의해 르베이지부터 만들기 시작했죠.”
국내 패션대기업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최유식 사장은 국내 섬유업 역사의 산 증인이다. 광주 의상실에서 근무하다가 80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시내 경기가 침체되자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명동의 의상실들을 전전하며 현장에서 기술을 익혔고, 83년 명동에서 첫 의상실을 연다. 85년에 기성복시장이 열리자 90년엔 봉제공장을 만들어 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이듬해 4억원의 어음이 부도나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땐 정말 죽고 싶었습니다. 어린 딸에게 한 달 내내 라면을 먹이자 ‘아빠 밥 좀 먹자’고 말하더군요. 공장에서 야근하면서 자살 시도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정신으로 제대로 한번 해보자고 결심했죠.”
4~5년간 빚을 갚느라 고생하고 있을 때 기회가 찾아온다. 최 사장에게 일을 배운 제자가 한섬에 입사했고, 그 인연으로 한섬의 물량을 제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섬에서 받은 물량을 최선을 다해 만들었죠. 여성 의류는 작은 차이에도 입어보면 큰 차이가 납니다. 아무리 디자인이 예뻐도 기술이 좋지 않은 곳에서 만들면 입었을 때 태가 나지 않아요. 저는 어려서부터 여성 의류만큼은 자신 있었어요.”
최 사장의 향후 계획은 르베이지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그런 그가 안타까워하는 것은 임가공업
“의류 임가공업체의 고급인력은 대부분 40~50대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재단사나 봉제사가 되려고 하지 않죠. 하지만 패션산업이 제대로 성장하려면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이 있어야 합니다. 패션 선진국인 이탈리아도 명품 옷은 직접 만듭니다.”
[윤형중 기자 hjyoon@mk.co.kr ]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88 신년호(11.1.5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