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는 지난 3월 7일 인천 송도신도시에서 2012년형 제네시스를 공개했다. 특히 2012년형 제네시스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지난해 10월 국제 파워트레인 콘퍼런스에서 공개했던 후륜 8단 자동변속기(automatic transmission)를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는 점이다. 이날 신형 제네시스 미디어 설명회에서 김영배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현대자동차가 신형 제네시스에 적용한 8단 자동변속기는 완성차 업체 중에서는 전 세계 최초로 (자체) 개발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획기적 연비 개선
저속 주행 시 톱니바퀴가 큰 기어를 사용해 강한 토크를 내고, 고속 주행 시 작은 기어를 사용해 빠른 속도를 내도록 돕는 변속기는 승차감과 정숙성, 연비를 좌우하는 핵심 부품이다. 변속기의 단수가 많을수록 다음 단으로 넘어가기 위한 분당회전수(rpm)가 낮아지기 때문에 최적의 변속조건을 구현할 수 있다.
일단 변속기의 단수가 높아지면 차량의 연비가 좋아진다. 통상 변속기 한 단이 올라갈 때마다 연비는 3~8%가량 개선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변속기 단수가 낮을 경우 아무래도 rpm이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연비 효율이 급격히 나빠진다. 8단 변속기를 장착한 제네시스 3800cc와 3300cc의 연비는 각각 10.2km/ℓ, 10.6km/ℓ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또한 고단 변속기는 변속 시 rpm을 낮춰 소음 절감에도 도움이 된다. 국외 고급 차량은 8단 변속기를 사용하며 단수 경쟁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8단 변속기를 도입하면 고급차 시장을 공략하는 데 유리하다. 현대자동차는 8단 변속기를 장착한 제네시스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글로벌 고급차 시장을 공략할 전망이다. 실제로 8단 변속기를 장착한 차량을 판매하고 있는 업체는 렉서스 LS460, BMW 760Li 등 일부 고급차뿐이다.
8단 자동변속기를 장착하면서 신형 제네시스는 기존 제네시스에 비해 출력과 토크를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3800cc인 제네시스 BH380은 최고출력 334마력(ps), 최대토크 40.3kg·m로 동급 최고 수준의 동력 성능과 연비를 확보했다. 기존 제네시스에 장착된 람다MPI 엔진보다 출력은 15.2%, 토크는 10.4% 향상된 수치다.
반면 변속기 단수가 높아질 경우 기어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고 중량도 무거워진다는 단점이 있다. 가격도 다소 비싸졌다. 2012년형 제네시스 판매가격은 최소 4310만원(BH330 그랜드 기준)에서 최대 6260만원(BH380 로얄VIP 기준)에 달한다.
김영배 책임연구원은 “자동변속기를 생산하고 있는 기업이 출원한 선행특허를 피하기 위해 수십 명의 엔지니어가 계속해서 설계를 바꿔야 했다”고 어려움을 토로하며 “전륜 전용 변속기를 개발한 기존 노하우를 바탕으로 개발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이번 후륜 8단 변속기를 개발하기 위해 현대자동차가 4년간 투입한 개발비는 모두 635억원. 현대자동차는 향후 8단 자동변속기를 에쿠스, 모하비 등에 순차적으로 적용할 계획이다. 올해 8단 자동변속기 예상 생산량은 3만~4만대 안팎. 참고로 지난해 제네시스, 에쿠스, 모하비의 국내 시장 판매량은 5만여대였다.
현대자동차는 8단 후륜 자동변속기 개발에 이어 4륜구동 자동변속기를 개발해 향후 승용 세단에 적용할 계획도 있다. 김영배 책임연구원은 “제네시스와 에쿠스 등 대형이 아닌 차종에 적용할 4륜구동 자동변속기를 현재 자체적으로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어떤 의미 있나
현대자동차의 엔진 기술은 세계적 수준에 근접했다. 그렇지만 변속기에서 현대자동차는 글로벌 업체들에 비해 기술력이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아무리 엔진의 성능이 좋더라도 파워트레인이 받쳐주지 못한다면 자동차의 성능은 한계가 있다. 파워트레인은 엔진의 크랭크축에서 종감속장치, 액슬축, 휠, 타이어까지 엔진 동력을 전달하는 일련의 장치를 말한다. 특히 변속기는 파워트레인의 핵심이다.
실제로 그간 국외 업체들이 주도하던 변속기 기술 경쟁에서 현대자동차는 다소 밀려나 있었다. 7단 변속기는 메르세데스-벤츠가 7G-트로닉을 발표하면서 최초로 선보였다. 이후 도요타가 렉서스 LS 모델에 8단 자동변속기를 장착했고, 독일의 변속기 회사 ZF사가 8단 변속기를 출시하면서 유럽과 일본 업체들 위주로 고단 변속기 경쟁이 이어졌다. 2000년대 초반 4단 변속기를 탑재하고, 2002년경 NF쏘나타, 로체 등에 5단 변속기를 도입한 현대자동차는 그간 유럽과 일본 부품업체들이 개발한 변속기를 사용했다. 제네시스 기존 모델과 에쿠스 역시 ZF사와 일본의 AW아이신사가 만든 후륜구동용 6단 변속기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 8단 변속기 개발로 현대자동차는 지금까지 수입하던 변속기를 모두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자동차는 국내 최초로 8단 자동변속기 시대를 개막했을 뿐 아니라, 자동변속기 국산화까지 성공했다. 또한 8단 자동변속기 양산은 현대자동차가 전 차종의 변속기를 자체 생산하는 자동차 메이커로 성장했다는 의미도 있다. 김성환 현대자동차 국내마케팅실장은 “새 파워트레인을 탑재한 제네시스는 동급 수입차보다 성능과 연비가 더 높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의 8단 자동변속기 양산은 국내 부품업체들에도 희소식이다. 8단 자동변속기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가 지분의 100%를 보유한 변속기 전문기업 현대파워텍이 생산한다. 하지만 8단 자동변속기 부품 중 유압 솔레노이드 밸브는 유니크사가, 토크컨버터는 나라엠앤디사가 만든다. 유압 솔레노이드 밸브는 기어변속이 자동으로 이뤄지도록 클러치나 브레이크에 압력을 공급하는 장치이며, 토크컨버터는 엔진 구동력을 변속기에 전달하는 부품이다. 300여개에 달하는 변속기 부품을 납품하는 국내 부품업체는 100여개 이상이다.
김영배 책임연구원은 “기존 제네시스와 에쿠스는 외국 업체로부터 변속기를 수입했기 때문에 유로화와 엔화 등 환율 리스크가 발생할 경우 수익성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며 “이번에 8단 자동변속기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는) 변화가 기대된다”고 언급했다.
■ 현대차 ‘제네시스 12MY’ 시승기
안락하지만 성능은 다부진 ‘장군’
새로 출시된 제네시스 12MY BH380에 탑승해 영종도 을왕리해수욕장 인근 카페 오라(ORA)에서 인천 연수구 송도동 117번지 잭니클라우스 골프클럽코리아까지 편도 62km를 주행했다.
세단이라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제네시스의 순간가속력이었다. 차량에 탑승해 가속페달을 밟자 힘차게 땅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현대자동차에 따르면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h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인 제로백은 6.1초다. 참고로 8단 변속기를 장착한 렉서스 LS460의 제원상 제로백은 5.7초다.
람다3.8GDi엔진의 구동력도 돋보였다. 가속페달을 밟을 때마다 주변 차선을 달리는 차량들이 진공청소기에 빨려들듯 휙휙 뒤로 빨려나가는 느낌이었다. 신형 제네시스의 최고출력은 기존 모델보다 44ps 높아진 334ps다.
핸들링과 안정성 역시 나쁘지 않았다. 고속도로에서 S자 곡선주로를 통과할 때도 무리 없는 주행이 가능했다. 코너 구간에서 120km/h로 달리면서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지만 흔들리는 정도가 과히 나쁘지 않을 정도로 코너링이 좋았다. 80km/h로 S자 도로 구간에서 대시보드(dashboard)에 캔커피를 세워봤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다만 시속 145km/h 이상으로 주행할 때 차량이 좌우로 흔들리는 롤링을 체감할 수 있어 롤링 억제 장치를 보완할 필요가 있었다.
노면의 충격을 흡수하는 장치인 서스펜션(suspension)은 지나치게 부드러운 느낌이다. 물론 고급감을 높이기 위해 무른 서스펜션을 적용했지만 체감속도를 지나치게 흡수해 운전의 재미를 반감시켰다.
제네시스의 정숙성은 렉서스에 견줄 만큼 만족스러웠다. 수동 8단 모드로 인천대교 내리막길에서 160km 속도로 주행했지만 제네시스는 정숙성을 유지했다. 주행 당일 꽃샘추위였고 바닷가에서 주행했기 때문에 강풍이 불었지만 제네시스 내부는 풍절음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빨리 달려도 속도감을 못 느낄 정도로 정숙해 과속하더라도 이를 인지하기 어려웠다. 제네시스는 연료를 실린더에 직접 분사하는 GDi엔진을 사용했고, 토크컨버터에 엔진 진동을 감소시킬 수 있는 터빈 댐퍼를 적용해 진동과 소음을 줄였다.
외관 디자인은
[문희철 기자 reporter@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