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노소, 연령 불문하고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주점은 일본식 선술집이라 할 수 있는 ‘이자까야’입니다. 때문에 이자까야 프랜차이즈 브랜드 또한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한국형 이자까야’로 큰 성공을 거둔 CEO가 있습니다. ㈜청담이상의 이정욱 대표입니다. 그가 이자까야로 성공하기 까지 어떠한 노력이 있었는지 MBN '정완진의 The CEO' 제작진이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이정욱 대표는 작은 형 밑에서 장사를 했던 경험을 살려 25세에 맥주 전문점을 창업했습니다. 아직은 젊은 나이, 가진 거라곤 열정 밖에 없었기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하는 것 뿐 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도 쉬지 않고 가게에 나와 청소부터 손님 접대 등 모든 일에 앞장섰습니다. 또한 가격 대비, 푸짐한 양의 안주를 제공하면서 단골손님을 늘려나갔습니다. 이정욱 대표는 이 기세를 몰아 2개의 맥주 전문점을 추가로 오픈했습니다.
“세 개의 가게에서 매달 수천 만 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젊은 나이에 큰돈을 벌다 보니 ‘내가 하면 뭐든지 잘 될 거야’ 라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있었습니다. 그때마침 서울 전역에 조개구이를 파는 식당이 하나, 둘씩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학로에는 그런 곳이 없었기 때문에 조개구이를 팔면 대박이 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맥주전문점 하나를 정리해 조개구이 식당을 오픈했습니다.”
그는 추가로 스티커 사진 전문점까지 개업했습니다. 스티커 사진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티커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들었고 세 번째 사업마저 성공을 거두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위기가 닥쳤습니다.
“당시 빚까지 져가며 무리하게 스티커 사진기를 구매했습니다. 때문에 매달 대출이자를 갚아야만 했죠. 더군다나 가게 임대료까지 내야 했기 때문에 막상 저에게 떨어지는 수익은 얼마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다른 스티커 사진 전문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손님들이 분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손님이 줄어들자 결국 적자가 발생했고 조개구이 전문점도 손익 계산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장사를 한 탓에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정욱 대표는 맥주 전문점에서 발생한 수익으로 조개구이 식당과 스티커사진 전문점의 적자를 메꾸어 나갔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에 부딪쳤습니다. 많은 가게를 운영하다보니 맥주 전문점 관리에 소홀하게 되어 매출이 급격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운영하고 있던 모든 매장의 문을 닫게 됩니다.
“빚을 갚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했지만 장사만 했던 저였기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공사판 인부부터 기름을 배달하는 일까지 온갖 막노동을 해가며 조금씩 빚을 갚아나갔습니다. 제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주위 사람들은 돈을 빌려 줄 테니 장사를 다시 시작하라고 했습니다.”
이정욱 대표는 그렇게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소주 전문점을 창업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장사 원칙이라 할 수 있는 ‘박리다매’ 전략은 그때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수지타산을 생각하지 않고 서비스를 제공하지는 않았습니다. 조개구이 식당을 운영하며 과도한 서비스 때문에 적자가 났던 경험을 통해 장사를 함에 있어 수지타산이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를 팔면 손해를 보고 얼마를 팔아야 이익이 남는 지를 정확히 계산해가며 가게를 운영해 나갔습니다. 그러니 곧 빚을 청산하게 되었죠. 점점 경영자의 마인드가 갖춰지는 것이 저 스스로도 느껴졌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장사를 해보자’ 라는 생각이 꿈틀거렸습니다. 그때 당시 우리나라에는 일본식 선술집인 이자까야가 큰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창업 트렌드에 발맞추어 이자까야를 운영해보기로 했고 초기 창업의 위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이자까야 프렌차이즈 가맹점을 오픈했습니다.”
그렇게 3년 동안 가맹점을 운영하면서 이정욱 대표는 이자까야 운영 노하우와 손님들을 끌어 모으는 비법에 대해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맹점이 아닌 자신만의 이자까야 프렌차이즈를 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인테리어 소품 하나하나부터 건물 외형까지 한국인의 정서를 반영한 한국형 이자까야를 추구했습니다. 차별화 요소가 있어야 손님들의 눈길을 끌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일본의 이자까야에 한국의 정서를 녹여 서래마을에 ‘창담이상’ 1호점을 오픈했습니다.
“기대와는 달리 처음에는 장사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서래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그 지역에 오래 거주한 사람들이라 폐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가게가 생겨난다 하더라도 기존에 자신들이 다녔던 곳을 가지, 새로운 곳을 방문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손님을 모으기 위해서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우는 방법밖에 없었고 수입맥주를 제가 들여오는 가격보다 더 저렴하게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반응은 예상보다 빠르게 나타났습니다. 가게 안은 저렴한 맥주를 마시기 위해 몰려든 손님들도 붐볐고 푸짐한 음식에 반해 저렴한 가격, 한국 전통의 분위기가 풍기는 색다른 인테리어에 반한 손님들은 계속 그의 가게를 찾게 되었습니다. 점점 손님이 많아져 월 매출은 1억을 달성하게 되었고 이정욱 대표는 그 기세를 몰아 청담동에 청담이상 2,3호점을 연달아 오픈했습니다.
“직영점이 잘 되다보니 가맹문의가 잇따랐습니다. 이왕 하는 거면 확실히 준비한 후 가맹사업을 하자는 생각에 프랜차이즈 박람회까지 참가하며 준비 했습니다. 그렇게 철저한 준비 끝에 가맹점을 오픈했고 그 덕분인지 가맹점들도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서서히 직영점과 가맹점을 늘리기 시작해 지금은 5개의 직영점과 6개의 가맹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정욱 대표는 열 개의 점포를 여는 것보다 한 곳의 폐점을 막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할 정도로 매장관리를 최우선시합니다. 이러한 경영 원칙을 고수
이처럼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 성공하는 7전 8기 오뚜기 인생, 이정욱 대표의 이야기는 2월 15일 ‘정완진의 The CEO’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